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슬 May 30. 2022

서점을 어떻게 서점으로 만들까

북카페 말고, 서점과 카페


서점 운영에 대해서만큼은 그동안 일해왔던 모습과 다르게 힘을 쫙 빼고 느슨하게 해보자는 생각이 컸다. 돈을 중심에 놓고 매출과 양적 성장만 추구하는 일에서 벗어나 가치와 의미를 다루는 일을 하고 싶다고 시작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오래' 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쉽게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나의 일상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작은 규모로 시작해보자는 계획으로 이어졌다.


'서점 뮈르달'은 '카페 비크'와 한 공간에 만들어질 예정이다. 물리적인 공간의 크기로 보자면 카페가 중심이 될 것이며, shop-in-shop 형태로 서점을 조성한다. 그래서 아마도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 북카페구나.’ 생각할 것이다. 양가 부모님들도 우리 계획을 간단히 들으셨을 때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라고 인지하셨다가 '책을 파는 서점'이 조성된다는 것을 들으시고는 꽤 의아해하셨다. 여기에서 나의 고민이 시작된다.

 

이곳을 어떻게 '서점'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야 할까.


먼저, 옛날 책 대여점을 연상시키는 ‘책방’ 말고, 책을 판매한다는 어감이 조금 더 강한 ‘서점’을 상호명에 넣기로 했다. 그리고, 책- 주로 어떤 책을 소개하며 우리 서점의 색깔을 만들어 나갈지 계속해서 고민 중이다. 일단 작은 서점답게 약 150종 정도의 책만 들여놓을 생각이다. 최대 200종은 넘지 않도록 장서량을 유지하자고 마음먹었으나 다른 서점지기들의 말처럼 책 욕심이 자꾸 불어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책장의 90% 이상은 '여행의 시간'과 관련된 책으로 채울 것이고, 그때그때 필요시 나(그리고 대중)의 취향으로 추천하는 (여행책 제외) 책을 약 10% 이내 비치할 예정이다.


(샌프란시스코 시티라이트북스토어 구매담당자) 야마자키가 책을 판단하는 기준은 이러하다. ‘서가에 놓인 이 한 권의 책이 이 서점을 대표할 수 있는가? 독립적인 사고를 거친 결과인가?’
- 리룽후이, <미래의 서점>


'서점 뮈르달'은 크지 않은 서점이라 책장의 한 권, 한 권이 더 뚜렷하게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야마자키 씨의 이 기준이 작은 서점에는 더더욱 강하게 지켜져야 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내가 지금(처음) 생각한 서점의 색깔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책장에 놓일 책들에게 “이곳을 대표해라!”라는 거창한 임무까지는 아니라도 각 책들이 여기, '서점 뮈르달'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꼭 알려주려고 한다. 그래야 책들이 더 당당한 모습으로 독자들을 맞이할 수 있을테니까.


그다음은 ‘공간 구성’ 측면인데, 공간이 좁은 편인 데다가 카페 공간도 함께 고려되어야 하니 이게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매일 수십 번 (머릿속에서) 인테리어를 했다가 철거했다가 그러고 있다.


그러다가 언젠가 외출할 일이 있어 꽤 오랜 시간 운전을 한 날이 있었다. 어김없이 머릿 속에서는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운전하는 내내 ‘차라리 공간이 좀 더 넓었다면 더 쉬울 텐데,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자유로를 타고 킨텍스 IC로 진입하는 순간, 생각났다. 킨텍스 전시회에 참가하는 무수한 1부스 참가기업들이 생각난 것이다. 3평도 채 안 되는 1부스짜리 작은 공간을 멋지게 채우는 수많은 참가기업들을 봐왔다. 크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 해 많은 전시회에서 목격했다. 전시회의 색깔은 전시장 맨 앞줄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크게 꾸며놓은 대기업들이 아닌, 전시장을 촘촘히 채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의 콘텐츠에 달려있다고 후배들에게 여러 번 알려주기도 했다. 결국엔 나만의 콘텐츠와 그걸 잘 표현하는 컨셉, 이것이 중요한 건데 내가 잠깐 잊고 있었다. 이것에 더 집중하자. 책.


공간의 크기에 대한 불만은 어느정도 해소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점에서는 인테리어에 대한 생각도 멈출 수 없는 현실이다. 책을 돋보이게 하고 사람들이 더 머무르고 싶어하는 아늑한 분위기도 중요하다. 이 와중에 나는 ‘셀프 인테리어’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다행히 남편이 나를 적극적으로 말렸다. 애들 육아도 버거워 허덕이는 내가 셀프 인테리어까지 한다면 아마 그 스트레스가 매우 거대해질 것이며 그 화살이 고스란히 어디로 향할지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고자 인테리어 미팅을 진행 중에 있다. 일전에 첫 미팅에 앞서 참고할만한 사진들을 찾아보고 있는데.. 와아, 세상에는 정말 힙한 공간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런 멋진 공간들을 한참 동안 보다가 갑자기 심장이 쪼그라들고 머리가 지끈거려서 ‘에라이 모르겠다, 책이나 읽으러 가자.' 뛰쳐나갔다.


우리 부부는 힙스터라고 하기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아마도 사람들의 눈이 돌아가는 그런 힙한 공간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대부분은 그냥 스쳐 지나갈지도 모른다. 여러 사람에게는 오히려 흔하디 흔한 모습의 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라도 특별하게 남는, 그런 공간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리고 오래 남을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잘할 수 있을까. 힘을 빼겠다고 해놓고서는 또 이런 걱정에 빠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마음에 오로라가 뜨는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