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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Jul 03. 2022

껄로에서 인레호수까지, 별에서 우주까지

미얀마 파투빡(Pattupauk)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별을 봤다.
밤하늘에는 별이 박혀 있는 게 아니라,
밤하늘 자체가 구김지 펄 종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걸 봤으니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별똥별 2개에 소원도 빌었다.

눈Snow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아프리카인이 눈을 봤을 때 이런 기분일까.
이번 트래킹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기분을 몰랐을 것이다.
아까 낮에 하염없이 걸으며 내 20대의 모든 여행들을 떠올렸다.
그 여행들은 '경험'이었다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나의 DNA에 켜켜이 쌓인 것 같다.
 
나의 30대는 더 아름다울 것이다.

- 2012년 12월 7일, 미얀마 파투빡 마을에서




이번 달 글방 자기소개의 주제는 "내 장례식에 놀러 올래요?"이다.


이 주제를 받아 들고 당연히 '죽음'을 떠올렸다. 사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5년 전부터 나는 자주 죽음에 대해 떠올린다. 내 존재에 큰 역할이 생기면서 동시에 '나의 부재'에 대한 걱정도 커졌다. 지구와 달이 서로의 존재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름달의 얼굴을 한 나의 두 아이와 나는 영원히 연결된 궤도 속에 있다. 어느 한쪽만 남겨지게 되는 날이 온다면 만유인력의 법칙이 깨지듯 정말 우주가 흔들리는 충격이 아닐까. 더 이상 상상하고 싶지 않다.


'글은 내일 쓸까' 하면서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눕히고 눈을 감았다. 밤하늘 같은 어둠이 보인다. 별이 하나 둘 뜨기 시작한다. 미얀마의 밤하늘이다. 그것을 올려다 보던 그가 떠오른다. 빛나는 밤하늘을 보며 '이대로 죽어도 좋다'라고 생각한 그, 그리고 작은 아이의 보드라운 발을 만지며 '이 아이만 남겨두고 떠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지금의 나. 이 둘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도록 낯설다. 침대에서 일어나 그 시절의 일기장을 꺼내 읽었다.


그때 나는 미얀마 여행을 떠났다. 20대의 마지막 생일에는 껄로(Kalaw)부터 1박 2일을 꼬박 걸어 인레(Inle)호수에 도착했다. 20대에서 30대로 가는 날 밤, 파투빡(Pattupauk) 마을 민가에서 1박을 했는데 그날 밤에 본 밤하늘이 아직도 생생하다. 밤하늘의 검은 배경보다 더 빼곡히 차 있는 하얗고 빨갛고 파란 별들을 보며 나도 우주 속 저 별 하나와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 별 하나, 둘이 희미한 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별똥별이었다. 나도 저 별똥별처럼 지금 사라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별이 아니다. 누군가의 우주이다. 나는 이 세상 유일한 두 아이에게 우주와 같은 존재이다. 별똥별 같던 나를 큰 우주로 만들어준 이 두 아이 덕분에 나의 30대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돌아보면 그저 아름다웠다고 부를 수 밖에 없을 여러 시절들을 지내고, 두 아이가 점점 더 큰 궤도를 그리며 나에게서 벗어날수록 시간은 더 빠르게 흐르겠지. 그 우주는 점점 더 팽창하며 마침내 작은 별 하나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별이 허공에서 사라지며 별똥별이 되는 순간, 남겨진 사람들이 내 장례식을 찾는다. 그때가 온다면, 미얀마 파투빡 마을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20대 청년의 일기를 빌려 내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오늘을 함께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내일은  아름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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