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산타페(Santa Fe)
길 위에서 그림자를 따라 태양을 찾아본다. 초여름의 바삭거리는 태양을 좋아한다. 정면으로 마주하기에는 어쩐지 용기가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고개를 조금 들어본다. 나뭇잎 사이에 레이스 커튼처럼 찰랑거리는 태양을 바라본다. 숨지 않았는데 마치 숨은 것 같다. 태양이 술래이다. 태양이 이리저리 고개를 기웃거리며 나무 아래에 작게 서 있는 내 눈을 찾는다. 찾았다.
눈.
파란색 눈동자였다. 서늘한 밤바다의 파도가 치고 있는 푸른 눈동자였다. 레이스 커튼 사이로 산타페의 바삭거리는 태양이 그녀의 눈을 비추자 성난 파도가 에메랄드빛 물결로 잦아든다. 그곳에 빛나는 윤슬을 발견하며 낯선 여행자의 마음에도 이내 안심이 찾아든다.
호스텔 주인이 내어 준 딱딱한 빵에는 쥐똥이 묻어있다. 모르고 준 것이겠거니 그 부분만 떼어내고 천천히 빵을 씹어본다. 그런 나를 푸른 눈동자의 인디언이 계속 쳐다본다. 나도 푸른 눈동자를 쳐다본다. 흑발을 가진 두 명의 이방인이 산타페의 한 호스텔에 앉아있다.
그녀는 내 눈동자에서 어떤 파도를 만났을까. 나를 바라보는 그 인디언의 머리카락은 무척 까맣고 어쩐지 모르게 푸른빛이 돌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서늘한 밤바다의 파도 같았다는 내 기억은 어쩌면 그녀의 긴 머리카락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오늘 이 태양도 지구 반대편의 그녀를 찾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