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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Oct 12. 2021

비크, 생애 첫 오로라의 기억

아이슬란드 비크이뮈르달(Vik)


내가 그동안 여행한 도시들에 대하여 글로 기록해보기로 했다. 문장으로라도 그 여행길을 다시 밟고 싶어서이다. 내가 걸어온 그곳들. 여러 도시들이 생각났지만 첫 글감으로 떠오른 도시는 '도시'라고 하기도 힘든 북유럽의 한 작은 마을, 비크(Vik)였다.


나의 이 선택에 매우 당연히 고개를 끄덕일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내 남편. 내가 남편과 공유하고 있는 기억 중 가장 큰 공감과 그리움으로 포개질 수 있는 장소는 바로 이곳이라고 확신한다. 신혼여행으로 떠난 이곳에서 우리는 생애 첫 오로라를 만났다. 낯선 풍경을 보며 새로운 생각을 하고자 떠나는 게 여행이라면 내 여행의 정점에는 두말할 것 없이 '오로라'가 있다.


호픈(Hofn)에서 만난 두 번째 오로라 - Northern Lights


"와 이게 뭐야?"


밤하늘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처음 봤다. 이따금 별이 파르르 반짝이는 것은 봤지만 하늘은 언제나 정적으로 펼쳐진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 공간이 거칠고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지금 지구에 두 발을 딛고 서있는 게 맞나 의심스러웠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나와 똑같은 의심을 하며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한 남자가 내 옆에 서 있었다. 이제 막 나의 남편이 된 남자였다. 그동안 살면서 오로라를 실제로 목격한 적이 없으니 내 눈앞에 펼쳐진 이게 도대체 오로라가 맞는지 "와 이게 뭐야?"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비크에서 만난 첫 번째 오로라는 제대로 사진으로 남아있지도 않다. 너무 벅차고 당황스러웠으며 어떻게 우주가 우리에게 오로라와의 만남을 허락했는지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이 지구 상의 그 어떤 영상 스크린도 밤하늘만큼 넓고 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밤하늘에 아주 크고 매우 고운 초록색 비단이 춤추듯 넘실거린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크기이다. 지금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그저 눈물만 날 것 같다. 여러 생각들을 비집고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나같이 하찮은 인간이 이런 걸 볼 자격이 있을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함 앞에서 나는 마냥 작아진다.


평생 '오로라 헌터'로 살아갈 우리 부부


곧 결혼 5주년이 되는 우리는 요즘도 집에 앉아 오로라 앱을 켠다. 비록 우리 머리 위의 하늘에는 오로라가 피어날 리 없지만 지금 현재 이 지구 상 어느 지역에 오로라가 가장 강하게 뜨는지 검색한다. 어떤 모습으로 밤하늘에 피어나 번지고 있을지 상상한다. 그렇게 그리움을 달랜다.


30년을 넘게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 부부이지만 이 그리움에 대해서만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너무나 같을 것이다. 가끔 이 사실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만약 내가 내일 당장 비크로 떠나자고 해도 우리 남편은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매우 기쁘게 그러자고 할 사람이다. 그래서 위안이 된다.


비크를 떠나 다음 도시로 향하면서 우리는 이미 다음 아이슬란드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직 끝나지도 않은 여행길 위에서 다음에 또다시 여기  기약을  것이다. 뒤돌아선 풍경들이 이미 그리워졌고, 앞으로의 장면들도 그리워질 예정이었기에.


반드시 다시 가 볼 비크,

오늘 밤 그곳이 부쩍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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