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비크이뮈르달(Vik)
내가 그동안 여행한 도시들에 대하여 글로 기록해보기로 했다. 문장으로라도 그 여행길을 다시 밟고 싶어서이다. 내가 걸어온 그곳들. 여러 도시들이 생각났지만 첫 글감으로 떠오른 도시는 '도시'라고 하기도 힘든 북유럽의 한 작은 마을, 비크(Vik)였다.
나의 이 선택에 매우 당연히 고개를 끄덕일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내 남편. 내가 남편과 공유하고 있는 기억 중 가장 큰 공감과 그리움으로 포개질 수 있는 장소는 바로 이곳이라고 확신한다. 신혼여행으로 떠난 이곳에서 우리는 생애 첫 오로라를 만났다. 낯선 풍경을 보며 새로운 생각을 하고자 떠나는 게 여행이라면 내 여행의 정점에는 두말할 것 없이 '오로라'가 있다.
"와 이게 뭐야?"
밤하늘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처음 봤다. 이따금 별이 파르르 반짝이는 것은 봤지만 하늘은 언제나 정적으로 펼쳐진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 공간이 거칠고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지금 지구에 두 발을 딛고 서있는 게 맞나 의심스러웠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나와 똑같은 의심을 하며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한 남자가 내 옆에 서 있었다. 이제 막 나의 남편이 된 남자였다. 그동안 살면서 오로라를 실제로 목격한 적이 없으니 내 눈앞에 펼쳐진 이게 도대체 오로라가 맞는지 "와 이게 뭐야?"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비크에서 만난 첫 번째 오로라는 제대로 사진으로 남아있지도 않다. 너무 벅차고 당황스러웠으며 어떻게 우주가 우리에게 오로라와의 만남을 허락했는지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이 지구 상의 그 어떤 영상 스크린도 밤하늘만큼 넓고 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밤하늘에 아주 크고 매우 고운 초록색 비단이 춤추듯 넘실거린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크기이다. 지금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그저 눈물만 날 것 같다. 여러 생각들을 비집고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나같이 하찮은 인간이 이런 걸 볼 자격이 있을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함 앞에서 나는 마냥 작아진다.
곧 결혼 5주년이 되는 우리는 요즘도 집에 앉아 오로라 앱을 켠다. 비록 우리 머리 위의 하늘에는 오로라가 피어날 리 없지만 지금 현재 이 지구 상 어느 지역에 오로라가 가장 강하게 뜨는지 검색한다. 어떤 모습으로 밤하늘에 피어나 번지고 있을지 상상한다. 그렇게 그리움을 달랜다.
30년을 넘게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 부부이지만 이 그리움에 대해서만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너무나 같을 것이다. 가끔 이 사실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 만약 내가 내일 당장 비크로 떠나자고 해도 우리 남편은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매우 기쁘게 그러자고 할 사람이다. 그래서 위안이 된다.
비크를 떠나 다음 도시로 향하면서 우리는 이미 다음 아이슬란드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직 끝나지도 않은 여행길 위에서 다음에 또다시 여기 올 기약을 한 것이다. 뒤돌아선 풍경들이 이미 그리워졌고, 앞으로의 장면들도 그리워질 예정이었기에.
반드시 다시 가 볼 비크,
오늘 밤 그곳이 부쩍 더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