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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Feb 12. 2019

편의점계의 얼리어답터

“셀럽이 되고 싶다면 연락해~”


오늘도 어김없이 편의점을 들러 시찰을 시작한다. 일단 라면 코너부터 훑어본다. 그러고는 음료로 넘어간다. 

앗! 저게 뭐야! 처음 보는 거다. 일단 집고 본다.


TV에서 보던 캐릭터. 종류도 두 가지. 현란한 색깔. 이정도면 유혹하기 충분하다. 

무슨 맛인가. ‘기묘한 노란맛’과 ‘신묘한 빨간맛’ 이란다. 그렇다면 호구되기 충분하다.

얼마 전 출시된 새로운 컵라면을 만났을 때랑 똑같다. 평소 그다지 많지도 않은 호기심이 이럴 때 발동한다. 편의점에서 처음 보는 아이템을 발견하면 은근한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편의점에는 언제나 새로운 상품들이 쏟아진다. 그 많은 것들 중에 내 관심은 라면, 음료수에 한정하여 (나름의)‘얼리어답터’로서의 본분을 다한다. 나의 이런 행보에 몇 번 길들여진 가까운 편의점에선 알바생들도 “요거 새로 나왔어요.”라고 넌지시 정보를 준다. 그러면 나는 또 그걸 넙죽 받아먹는다. “그래요? 어떤 거?”라며.    


내가 처음부터 이런 (나름의)‘얼리어답터’는 아니었다. 그 시작은 그저 편의점에 들러 배고픔을 해결하려고 고른 당일 출시된 컵라면을 잡은 것이다. 며칠 후 친구들과 편의점에 들렀다가 “야, 요거 맛나더라.” 한 마디 한 것이 다였다. “오~” “빠른데~ 벌써 먹어 본거야?” “예전 거랑 달라?” 라며 눈이 커지고 동그란 입으로 이런 반응이 돌아오자 당황했다. 편의점에서 특이하거나 예뻐서 고른 음료를 가져가면 주위에서 또 “오~” “어머, 이게 뭐야?” “처음 보는데?” “역시 빠른데~”라고 하이 데시벨로 말한다.

희한하게도 그다음부터는 뭐 색다른 게 없는지 훑어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름의)‘얼리어답터’ 대열에 들어섰다. 


사실 나는 편의점을 자주 가는 사람이 아니고, 매번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이 아니며, 무엇보다 유행이라는 것에 그렇게 민감한 사람이 아니다. 어느 순간 주위의 호응이 웃기기도 하고 재밌어서 자칭 '편의점 계의 얼리어답터'로서 은둔 활동을 할 뿐이다. 유유상종이라고 내 주위에 나 같은 사람들만 모인 탓에 단지 우리끼리의 리그에서만 그렇다.     

최근엔 실제로 SNS상에 공개적인 활동을 하고 있어서 사진도 잘 찍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보를 주는 ‘편의점 얼리어답터’ 들이 많다. 그들이나 그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보면 한참을 비웃을지 모르겠다. 저게 뭐라고... 하면서. 

그런데 호구면 어떻고, 유치하면 또 어떤가.


내 친구들도 다 안다. 내가 아직 접하지 않은 것을 가져와 새끼손가락을 세우고 들고 있는 친구를 보면 “오~” “셀럽! 셀럽!” 해준다. 우리는 그렇게 그 순간에 요란한 감탄사를 서로 남발하고 뻑적지근하게 웃어젖히는 것이다.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순간을 만들고 아무것도 아닌 친구의 캐릭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감탄사가 좋아지고, 리액션이 즐겁다. 내가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재밌다. 나는 요즘 이런 시간이,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걱정과 고민으로 주름지며 모였던 얼굴이 이런 감탄사로 확 펴지는 순간이. 그리고 그 순간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나’한테만 필요한 게 아닐 것이다. ‘요즘’에만 필요한 건 또 아닐 거다. 


나는 이렇게 뭣도 아닌 것을 보고도 매번 입을 동그랗게 모으며 “오~” 해주는 친구들과 요란한 감탄사와 표정들을 주고받으며, 우리만의 리그를 만들며 늙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 과정 속에 살고 있는 나는 오늘도 편의점에서 하이에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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