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취향도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 May 08. 2019

우리 엄마 목소리

엄청시리 강력한 위로템

   올해 백상 예술대상에서 배우 김혜자는 대상을 받았다. 수상 소감을 대신하여 그녀가 출연했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한 대목을 읊었다. 나이 지긋한 배우의 애틋한 위로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받아 눈을 붉혔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를 처음엔 유쾌하게 봤는데 중간엔 애틋해졌다. 나중엔 차라리 편하게 보게 됐는데 이 모든 힘은 배우 김혜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우는 모습에 나 자신이 애틋해졌고, 그녀가 토닥이는 손끝에 위로도 받았다. 드라마를 보면서 참 많이도 울었는데, 역시 마지막에 김혜자가 담담하게 읊어주는 목소리에 아주 마음 놓고 울었다. 그런 위로를 그녀가 상 받는 자리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해주는데 또 울컥.   


      

   드라마가 끝난 시점에 일기장에 기록해 두었던 위로의 글을 소리 내서 읽어 보았다. 읽다가 문득 우리 엄마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해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종이를 내밀며 부탁했다. 

   “나한테 말한다~ 생각하고 한 번 읽어줘요. 녹음 좀 해놓게.”

   “내 목소리가 좀 그런데... 뭐 이런 걸 하라 그라노."   

하시며 종이를 챙겨 가신다. 안 보이는 어디선가 연습하시겠지. 우리 엄마는 사투리를 쓰고, 부산 토박이 특유의 발음을 구사한다. 그냥 읽기만 하는데도 어쩜 이리 어색한지. 당신의 발음과 목소리가 안 좋다고 연신 “우짜노, 우짜노.”하신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준비됐다시며 슬그머니 나오신다. 부스럭 거리는 종이를 들고 서툰 솜씨로 읽고, 스마트폰에 어설프게 녹음하는 모녀는 이런 경험들이 괜히 즐거웠다. 녹음이 다 끝나고

   “딸, 이런 경험 하게 해 줘서 고맙다.” 

라는 엄마의 말에 순간 울컥했다. 밤새도록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실 우리 엄마는 더 많은 위로를 해주는 사람이다. 곁에 있어주었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처음 보는 요리를 해주었고, 못 본 척 자리를 피해주기도 했다. 같이 걸어주었고, 등을 밀어주었다. 웃어주었고, 울어주었다. 안아주었고, 예쁘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요란하지 않았고, 드러나지 않았다. 위로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엄마가 주었던 모든 것이 위로였고, 힘이었다.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 엄마랑 나누고 싶은 구절이 나오면 읽어 달라고 해야지, 그리고 간직해야지, 생각했다. 엄마의 목소리를 남겨 놔야겠다. 엄마의 모습 몇몇을 동영상으로 저장해놓고 한 번씩 보고 있다. 쎄시봉 시절의 팝송을 숟가락을 들고 노래하는 모습이나 휴지를 쓰레기통에 골인하며 환호하는 모습(수십 번 끝에 성공한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어 놨다. 엄마의 더 많은 모습을 담아놓고 싶다.          


   나중에, 정말 생각도 하기 싫은 나중에 내가 나이가 더 들어도 외롭고, 힘든 어느 날에 오늘의 엄마 목소리를 들어야지. 눈부시게 지금을 살아가라고 말해주는 우리 엄마에게 위로받아야지. 

   어느 날엔 또 우리 엄마 노래하며 춤추는 동영상을 꺼내 봐야지. 그때의 엄마의 웃음소리와 내 웃음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서 깔깔 웃어대야지.      

   딸이 왜 이리 이기적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살다 보면 위로든 짐이든 강력한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쓸 수 있는 나만의 무기를 장착하는 건 괜찮은 것 같다.    

 

   어제 지금 딱 필요한 엄청시리 강력한 ‘위로템’을 획득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편의점계의 얼리어답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