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
유럽의 성은 뭔가 특별하다. 동양의 성채가 주변과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면 그네들의 성은 하나의 공간을 둘로 뚝뚝 나누는 것처럼 느껴진다. 단순히 그 모습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까. 뾰족한 창 끝 모양의 지붕부터 매끄러운 시멘트풍 벽 둘레까지 모두 한국의, 혹은 동양의 성들에서는 찾기 힘든 요소들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뿐은 아닌 듯하다. 단순한 겉모양의 차이를 넘어, 두 공간 사이에는 실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성은 어디까지나 전시용이었다. 혹시 모를 내란과 외환에 대비하는 장소, 그리고 싸움이 벌어지면 거점이 되어 사람과 재산을 지키는 수단이었다. 물론 유럽의 성을 떠올릴 때에도 그런 이미지는 똑같이 생각난다.
다만 평상시를 생각해보면 다른 점이 느껴진다. 그들에게 성은 누군가'만'을 위한 삶의 공간이기도 했다. 평범한 다수의 시민들과는 모든 면에서 다른 삶을 즐기던 소수의 사람들 - 아마 귀족, 혹은 영주들 - 은 성 안에서 일상을 영위했다. 그들에게 성은 자신들만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었고, 그들의 세계를 평범함의 세계와 구분 지어주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 속에서는 소위 양반이라는 사람들도 부(富)의 차이는 있어도 같은 공간에서 일상의 순간들을 공유했다. 어우러짐과 구별 짓기, 공유와 단절.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서구와 한국의 지난날에는 지금만큼이나 미묘한 차이가 곳곳에 잔뜩 존재하나 보다. 그것이 내가 노이슈반타인 성을 올려다보며 느낀 감상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유럽 여행을 떠났다. 퓌센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독일로 향하기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였다.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만 죽이다 급하게 계획 짜기에 나섰던 나와 친구들은, 동네 책방으로 향해 각종 여행 서적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독일 여행 책자들이 권하고 있던 장소, 그것이 바로 퓌센이었다.
마침 뮌헨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참이었다. 한 도시를 다 둘러 보기에 나흘이란 시간은 과도하게 충분했다. 그런 참에 발견한 근교의 동화 같은 마을은 잔뜩 기대감을 품기에 충분해 보였다. 애초에 처음 유럽의 성채를 직접 관광하는 여행이었다. 그런데 그 성이 디즈니(Disney)의 모티브가 된 성이라면, 그보다 더 흥미로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떠나 도착한 겨울의 퓌센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마을은 사진으로 보았던 것처럼 조그마하지만, 곳곳을 빼곡히 채운 넓은 풍경과 그곳에 그림처럼 지어져 있는 건축물들이 자연스레 감탄사를 지어내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특히 눈이 내린지 얼마 안 되어 모든 시야가 하얗게 뒤덮인 모습은 고향에서는 물론이고 여타 여행지에서도 쉽게 즐길 수 없는 매력이었다. 눈이 맑아지는 기분에 잠겼다.
마을을 방문한 모든 관광객들은 직접 퓌센의 자랑,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입장해 볼 수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을 체험할 기회이다. 직접 그 안으로 발을 디뎌본 이들은 공감하겠지만, 색다르다. 겉으로는 그저 무뚝뚝해 보이고 조용해 보였던 성이지만 안은 너무나 화려하고 동시에 푸근했다. 물론 관광객들을 위해 여러 물건들을 각 방마다 전시해 두는 등 관광지의 특징들은 분명 성 내부에 짙게 배어있다.
하지만 그런 인위스러움이 와 닿지 않는 방의 구석구석과 복도, 천장, 그리고 올라온 길과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창 틀 속 풍경들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성에 살던 이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 정도로 마을에서 바라보는 노인슈반타인 성과 안에서 느끼는 기분은 상당히 달랐다. 신기했다. 같은 장소인데, 마을과 성에서 제공되는 시선이 전혀 다르다니.
그런 신기함 속에서 창 아래로 마을을 내려다보며, K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K는 성에 들어가고 싶었다. 카프카의 이야기다. 카프카는 특이하다. 그가 남긴 세 편의 장편소설, 그 모든 작품들의 주인공이 같다. 정확하게는 'K'라는 명칭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같다. K.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카프카 그 자신의 이름이 K로 시작하기는 한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는 자신의 창작물들에게 모두 같은 명찰을 붙였던 걸까.
<성> 속 K는 밤 중 눈길을 헤치고 힘겹게 목적지인 한 마을에 도착한다. 그렇게 스토리의 막이 오른다. 그는 도착한 마을 위에 위치한 성에 고용되어, 그곳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먼 곳에서 떠나온 인물이다. 문제는 바로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 중 누구도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며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를 거부한다.
당황한 K는 '성'에 연락을 취하지만, 애매한 답만을 손에 쥘 뿐이다. 그에게 성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본래 살던 곳을 떠나 온몸, 그에게는 갈 곳이 없다. 이런 혼란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목적지인 성으로 다다르고자 K는 투쟁한다. 그리고 그것이 <성>의 전체 이야기를 구성한다.
답답했다. 여느 카프카의 글과는 다른 종류의 답답함이다. 이제껏 카프카를 볼 때면 늘 그 복잡한 은유들을 이해할 수 없음에 힘들었다. 하지만 <성>은 다르다. 내가 K가 된듯한 그 기분, 거기에서 답답함이 온다.
왜 K는 성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인지,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지, 그들은 왜 K를 모른 채 하는 것인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또 왜 성에 굴종하는지.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책을 덮은 뒤에도 독자들에게 남겨진 힌트는 없다. 카프카의 문학이 언제나 그렇듯이.
이유 없는 배제. 그것이 K가 마을에 도착해서, 끝날 때까지 마주할 수 있던 유일한 반응이었다. 이야기의 끝에서 그는 숨을 멈춘다. 내리는 눈을 맞으며, 성에 끝내 들어가지 못한 채로. 성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그대로 말이다. 그는 마을에서만 살다가 떠나갔다. 그런 스토리기에, 눈으로 가득 찬 유럽의 마을과 겨울의 성곽에서 한번 떠오른 K와 그의 성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멈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노인슈반타인 성에는 퓌센의 풍경과 주변의 전경을 멀리 바라볼 수 있는 망원대가 있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의 풍경은 분명 좋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우월함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바라보는 성, 그리고 성에서 바라보는 마을은 저마다 달랐을 뿐이다. 그 모두는 나와 친구들 같은 여행객들에겐 똑같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는다.
K가 끝내 들어가 보고 싶어 했던 성은 어땠을까. 그곳엔 마을에서는, 그 밖에서는 얻을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을까. 노인슈반타인 성에 들어서기 전, 나는 디즈니 성에 들어간다는 두근거림과 수백 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 온 장소에 발을 딛는다는 스릴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발을 들여놓고 나면, 그런 것은 한순간에 사라질 뿐이다. 망원 렌즈 속 마을 풍경은 색달랐지만, 매달려야 할 대상은 결코 아니었다. K가 지향하던 성은 달랐을까.
유럽의 귀족들이 성에서 내려오게 된 것은 대혁명 이후이다. 그때부터 그들은 서서히 나머지 9할의 사람들과 같은 발판에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성은 점차 모든 사람들의 발길을 허용하는 공간이 되어갔고, 오늘날에는 먼 타국에서 온 평범한 시민에게도 길을 내어주고 있다. 중세 시대 백성들에게는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그 장소가 오늘날 사람들에겐 그저 한 순간의 재미이다. 그렇지만 과거의 성은 분명 필사적으로 세계를 둘로 나누었고, 한쪽 세상의 풍경을 독점해 왔다.
만약 K가 오늘날 퓌센에 오게 된다면, 그리고 아무런 제재 없이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어떤 기분에 잠길까.
카프카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었다. 오스트리아는 당시 독일에 지배당했다. 동시에 그는 유대인이었다. 유럽 어디에서나 유대인은 소수자였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유럽인이 되고자 하는 동화주의자였다. 결국 카프카는 유대인들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의 삶은 끝없는 거부의 연속이었을 테다.
K를 통해 그가 표현하고 싶던 것은 그의 그러한 개인적 삶에 연관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밀려왔다. 카프카를 읽어내는 방법은 많고 시선은 그만큼이나 다양하지만, 나는 학문적 탐구 따위에는 흥미가 없었다. K가 발버둥치며 살아갔을 마을에 발을 딛은 상황에서, 카프카가 전달하고 싶었을 감정 자체를 느끼고 싶었다.
마침 우리 일정에는 프라하, 카프카의 고향이 있었다. 혹시나 그곳에 가면 그를, K를 이해할 수 있게 될까 - 그런 호기심을 품은 채 퓌센을 떠나 다시 뮌헨으로 돌아왔다. 비행기 탑승 전 뽑아두었던 오스트리아행 기차표를 확인했다. 이틀 뒤 체스키를 건너 프라하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