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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영 Jun 19. 2023

영국 여성 조각가 바바라 헵워스 전시

A sculptor who sculpted her life herself


2023. 4. 30 ~ 2023. 5. 1 세인트 아이브스 여행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에 내가 영국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가 정은채의 런던 브이로그에서 본 테이트 모던이었고 역시 런던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도심 강변에 있는 위치도 참 좋았다. 이후에는 그렇게 영국을 그리워하다가 한 번도 가본 적 없었던 잉글랜드 남부 해변지역 세인트 아이브스에도(St.Ives) 테이트 갤러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곳이 정말 가고 싶어졌다. 부산에 있는 동안 여행지이자 바닷가 근처에서 사는 것이 주는 즐거움과 해방감을 맛봄과 동시에 바다를 보고 있다 보면 느껴지는 멜랑콜리함 혹은 둥둥 뜨는 공허함을 알았고 그런 감정 안에서 나에게 집중할 때에 느낄 수 있는, 파도가 밀려오고 나가는 것같이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변함없는 삶의 소중함 같은 것을 느꼈다. 마침 올해 영국에서 있었던 시간에 대한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영국을 그리워하던 중 세인트 아이브스 테이트 갤러리에서 그 지역에서 생애 대부분을 지낸 영국 조각가 바바라 헵워스의 전시를 한다는 것을 보았고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사람이 그곳에서 지냈던 시간을 몸소 느끼고 직접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에게 그곳에 갈 수 있는 자원과 시간을 허용하기로 했고 떠났다.


세인트 아이브스 바다가 보이는 창


기차 안에서 보는 흔들리는 순간의 연속이 좋다



런던에 도착한 다음날 유스턴에서 세인트 아이브스까지 기차 2번을 갈아타고 6시간이 걸려 도착하였고 시차적응이 덜 되어 기차 안에서는 진짜 가고 있는 건지 꿈을 꾸는 건지 모르게 기절했다가 깨었다가를 반복하며 갔다. 기차 여행을 좋아하지만 시차 적응을 하기도 전의 편도 6시간 이동은 아무래도 무리가 아닌가 하면서 스스로의 무리한 일정을 탓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지막 여정 15분 간의 이동 중에 창밖으로 마주한 수평선과 모래사장의 색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의 흰모래사장과 어쩐지 공허하게도 보이고 쳐져 보이기도 했던, 그런데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진 바다를 직접 보았다.



버지니아 울프가 <등대로>를 쓰며 바라보았을 바다 같았다. 흐리고 멀어 아득하지만 힘들 때 바라보게 되는 그런 바다
이 거리 코너에서 베이스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돈을 바라지도 않고 연주하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바다에 영감을 받은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 갤러리


도착한 날에 기절하듯이 숙소에서 잠이 들고 나서 다음날 일어나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갤러리로 갔다. 갤러리로 가는 길은 내가 영국 영화에서 보던 남부 해안 마을의 길거리의 분위기와 똑 닮았고 교환학생 때에 당일치기 혹은 며칠의 여행으로 떠났던 영국 국내 여행 때가 떠올랐다. 낯선 동네에서 혼자 자고 깨는 일이 익숙한 사람은 아니지만 혼자서 새로운 곳을 천천히 파악해 가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아침의 카페 풍경. 가득한 스콘과 파운드 케잌들을 보면 안먹어도 마음이 꽉찬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와 소세지롤. 바삭한 패스츄리에 짭쪼름한 소시지가 단순하지만 든든하고 맛있다. 완벽하다.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에 도착해서는 아직 다 개지 않은 아침 구름이 끼어있는 바다를 보며 드디어 왔구나 싶었다. 몇 년 전 리버풀에 가서 테이트 갤러리 입구에서 안내원분들과 이야기 나누던 감각이 떠올랐고 이번에도 똑같이 그랬다. 갤러리 자체가 등대처럼 생겨서 입구부터 바바라 헵워스 전시장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세인트 아이브스 지역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들에 몰입할 수 있었다. 보면서 바다는 새삼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옛날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영감을 주었구나 싶었다. 분명 다른 바다이지만 내가 작년에 부산에 살던 때의 주말 해운대 바다 앞에서의 산책과 커피, 한여름 바닷 앞에서 읽었던 책들이 떠올랐다.



마침내 바바라 헵워스의 전시장을 마주했고 당일이 전시 마지막날이었어서 진행되었던 큐레이터의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큐레이터분은 오늘이 해당 전시의 마지막날인데 자신이 헵워스의 작품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또한 큐레이터마다 그 작가와 작품에 대해 관심 있는 부분이 다른데, 자신이 주로 관심 있는 주제들을 다루어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진심으로 바바라 헵워스의 작품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큐레이터를 보는 것이 작품을 보는 것만큼이나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또한 내가 오늘 이 순간, 이 전시에 와있음을 계속 떠올리고 감각하며 압도되기도 했다.


그렇게 큰 조각들, 매끈하고 팽팽하게 연결된 실과 마블들이 전시장 안에서 각각의 생김새에 맞게 전시된 풍경을 보고 있으니 그냥 내가 살아 있어서 좋았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닥쳤던 힘들었던 시기를 통과하면서 이런 조각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들으며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낼 수 있는 방식은 조각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음을 생각했고 그 조각들을 보는 것이 그 사람의 존재를 보는 것임을 깨달았다. 여성 조각가를 거의 처음 알게 된 동시에 그렇게나 큰 규모의 작업을 스스로에게 허락했다는 점만으로도 앞으로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될 것임을 깨달았다. 사실 그 사람의 작품을 보면 앞으로 내 작업에 어떤 영감을 줄까, 어떤 점이 내가 레퍼런스 삼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런 의식적인 부분들은 다 소용이 없었다. 그 사람의 삶과 작품 자체가 흔들리고 쉽게 부러지는 내 마음에 기운을 불어넣어주었다. 작품의 크기가 다는 아니지만 큰 작업을 하는 것은 보이는 것을 크게 하는 것이고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고 없고를 쉽게 자기검열하기 쉬운 여성 창작자들에게는 특히나 대단한 레퍼런스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크고 다작을 해온 여성 예술가에게 왜 그렇게 크게 만들어야 하는지, 왜 계속 만들어야 하는지 의심하게 하는 질문 한마디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면 그 사람의 생애 자체가 메니페스토 같았다.


나 자신에게 떳떳하지 않았던 시기에 여행을 떠나서 내가 여행을 최상으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혹은 내가 그곳에 있을 자격이 있는지 싶은 생각에 괴롭기도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다녀왔어야 했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곳에 그 시간에 내가 발 딛고 존재할 수 있어서 기뻤고 살아있어서 감사했다.



전시를 다 본 후에 바바라 헵워스의 정원 박물관으로 넘어가기 전에 테이트 갤러리의 카페를 이용했다. 남부 해안의 바다와 함께 커피와 스콘을 즐기는 것은 전시관에서의 오감을 만족시킨다. 먹을 것과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천국이었다.


갤러리 앞의 바다 모래를 움켜쥐어보았다. 자세히 보면 제각각 색을 지닌 알갱이들이 보인다.
박물관에 가는 길. 돌길을 보면 옛날 길 그대로와 똑같을테니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테이트 갤러리와 함께 표를 구매할 수 있었던 바바라 헵워스 뮤지엄. 그가 작업한 스튜디오와 정원이 그대로 보존되어 정말 아름다웠다. 1층에는 그의 삶에 대한 보다 자세한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자신의 삶을 조각하는 것이라는 말을 남긴 조각가의 삶을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니 갤러리와는 또 다른 압도되는 감이 들었다.


“I, sculptor, am the landscape. I am the form and I am the hollow, the thrust, and the contour."


자기 자신이 곧 그가 만들어낸 조각 하나하나의 부분이라고 선언한 글을 읽으니 눈물이 났다. 그렇게 말하기까지 필요했을 마음의 단단함이 무엇인지 알 것 같기 때문이었다.


박물관과 정원을 둘러보고 충분히 감상한 뒤에 런던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바닷가의 모습을 보았다. 어느새 하늘이 완전히 개어 바다가 투명하고 시릴 만큼 파랬다. 햇살은 투명한 창을 통과하며 뿌옇게 빛났다. 아름다웠다.


버지니아 울프가 보았던 등대




여유로웠던 식당 내부 분위기에 여독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코를 자꾸 푸니까 건내주었던 냅킨이 생각난다.


버섯크림리조또와 애플주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골목골목들




런던으로 다시 돌아갈 시간이었다.

파란 바다를 눈앞에 두고 돌아가야 한다니 야속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런던에서 다음날 볼 소중한 나의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아쉬운 마음보다는 설레고 힘찬 마음으로 조금은 외롭기도 한 해안 마을에서의 혼자 여행을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언제나 편하기만 하거나 즐겁기만 하지는 않다. 혼자 다니다가 만나는 뜻밖의 인연들과의 만남이 있기에 더욱 빛난다. 이번에는 나의 교환학생 시절 친구가 한걸음에 런던으로 달려와준다는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세인트 아이브스로 떠나기 전 패딩턴역에서 친구와 나눈 통화에서 나의 인연이 이 땅에 있다는 것을 느끼며 감격스러웠다. 그래서 외롭지 않았다. 이젠 혼자라고만 생각하는 시절은 지나갔다. 혼자서의 모험을 더 용기 있게 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음을 안다.


돌아가는 기차 안. 저녁 노을이 핑크빛으로 물들며 기차 안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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