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봄을 보내며
눈에 보이는 균열들을 모른 채 하며 진짜 진실을 찾기를 유보하며 살아가는 일을 나는 언제부터 해왔나?
예전엔(어릴 때) 내가 느끼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것만 믿느라 나를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고 외롭게 했는데, 이제는 내가 틀릴 수 있고 내가 보는 게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사니까 이젠 나를 믿지 못해서 외롭다. 내 마음을 내가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혹은 정말 세상일과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해서 그런건지 이젠 모르겠다.
두려움이 몰려올 땐 두려움 안에 존재하라는데,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두려움을 뚫고 통과하는 건지 아니면 두려움을 외면하며 극복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으면 그건 어떻게 하나? 이걸 깨달은 뒤에 내 마음은 누가 돌봐주나? 내가 혼자 해야할 일이 되고 말테니 불안한 것이다.
얼마 전에 일교차에 대해 얘기하며 지금이 봄이라고 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선, 내가 그동안 너무 자연스럽게 지금은 기후이상으로 인해 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닌 그저 여름 비슷한 어떤 시간이라 생각하고 그걸 핑계로 지금 시기를 삶을 유예하는 시간처럼 여겼음을 깨달았다. 내가 봄을 지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또 드는 생각은 이제 봄밖에 안지났다니. 그런데 일년 중 반에 도달하고 있는 것도 맞다. 도대체 뭘까?
이번 봄엔 아주 많은 일들을 한 것 같다. 작년부터 미뤄오며 때를 기다렸던 나의 옛날 시간을 마침내 엮어 사람들에게 보이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시간을 일궈냈고, 바깥으로 나가 사람들을 찍었고, 내 몸과 마음을 움직이고 달래가며 프랑스어를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익혔다(진짜 마지막은 아니다). 이 일들은 모두 아무도 나에게 하라고 시키지 않았는데도 할 수 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얘기하려다가,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누가 해달라고 해야 하는 일들로만 이뤄지는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도 싶다. 그런데도 이 세상에선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이 더 좋아보이는 것이 된다는 것이 새삼 이상한데 그걸 끊임없이 갈구하는 내 자신도 이상하다. 사실 나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하는 일들이 부끄러웠다. 그런데도 할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수치를 넘어서는 사랑이 있었으니까.
지금 창 밖에는 밤공기가 흐른다. 나를 봐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요즘이다. 나 스스로도 타인을 볼 때 내가 정말 그 사람을 보고있나? 싶은 날들이 있으니 할 말은 없다. 오늘이 지나면 이젠 솟아나는 봄의 에너지와 화창함에 숨을 수 있는 날은 다 간다. 오늘 점심에 회사 근처 천을 걷는데 한낮의 내려앉는 햇빛과 그늘 사이의 명암이 주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걷고 생각하고 온도를 다 이겨내야만 하는 여름이 오고 있다. 그러니 이제 다시 돌아와야할 때다. 내가 있던 곳으로, 내가 있어야할 곳으로. 그곳이 진흙탕이라 발 딛는 때마다 더러워지더라도 걸으며 지나갈 수 밖에 없는 곳. 어쩌면 도달이 없는 곳. 그곳이 내 집이다. 오늘에서야 집의 안락함과 확실함을 느낀다. 이곳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말할 수 있고 무엇이든 사랑하고 무엇이든 걷어낼 수 있다. 난 영원히 이곳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살게 될 것이다. 지난 날들에 꿈꿨던 완벽한 탈출은 없음을 이제는 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있어야할 곳에 있음을 권태롭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