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여행 2편
나는 지난해 여름 친구가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태국 꼬창 섬의 왓클롱손 초등학교에 강의를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Trash Hero팀을 만났다. Trash Hero는 태국의 환경단체로 전국에서 약 8만 명이 매주 수요일에 플로깅을 한다. 플로깅(plogging)이란 스웨덴어 플로카업(plokka upp, 줍다)과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운동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것이다. 그들이 플로깅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용한 플라스틱이 돌고돌아 우리에게 결국 도착하기 때문이란다. 나도 그날은 Trash Hero가 되어 커다란 봉투를 어깨에 메고 해변에서 아름다운 달리기를 했다.
이후 나는 섬을 나와 북쪽 빠이 마을로 향했다. 태국인이 꼽는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가 바로 빠이 마을이라고 한다. 빠이 마을은 느리게 사는 공정여행이 알려져 있다. 태국의 북쪽 도시 치앙마이에서 762개의 굽은 산길 136km를 자동차로 3시간을 달려야 비로소 빠이를 만날 수 있다. 빠이는 태국인이 꼽는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자, 세계 배낭 여행자들에게도 매우 인기가 높다.
이곳의 온천과 캐년, 숲속의 사원, 넓게 뻗은 논과 딸기밭, 농장과 함께하는 커피숍, 신나는 라이브 카페, 수공예품을 만드는 예술가들 그리고 야시장의 다양한 먹을거리와 소수민족의 공연들은 세계 여행자들을 붙잡기에 충분하다. 실제 마을 남쪽의 캐년에는 일출과 일몰을 보기 위해 많은 여행자들이 찾고 있다.
20여 년 전 빠이에는 고산족들이 물물교환을 하고 있었다. 이때 마을에는 잠시 스치는 유랑자들만 다녀갈 뿐, 여행자를 위한 숙소도 없었다고 한다. 히피 성향의 세계 배낭여행자들이 점점 빠이로 모여들면서 게스트하우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카페도 점점 늘어났으며, 재산권 마찰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원주민과 이주민 약 2,300명 모두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뭉쳤다. 주민들은 리조트를 마을에서 떨어진 외곽에 지었다.
빠이 마을의 농부들은 달팽이와 반딧불 등을 보존하기 위해 농약 사용을 줄였다. 어느날 밤엔 호롱불을 든 야간 투어 가이드에게 “왜 손전등을 사용하지 않나요?" 물어보니 "전기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적인 방법이 아니라서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자연환경이 가장 소중한 자원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시장의 가게들은 보통 오후 10시면 문을 닫는다. 사람들은 친환경 상품을 만들고, 일회용 컵이 아닌 대나무컵에 음료를 담아 준다. 처음 구매 때에는 대나무컵 보증금을 포함하여 1000원을 지불한다. 이후에 컵을 챙겨 재방문하면 300원에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이 대나무컵은 마을의 상징이자 여행자의 기념품이 되었다. 빠이 리퍼블릭은 느리게 가는 엽서를 보내기 위해 여행자들이 많이 찾고 있어 이제는 마을의 명소가 되었다. 빠이 주민들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IA)에서 I와 A의 순서를 바꿔 유토빠이(UTOPAI)라 부른다.
스튜디오 포엠의 예술가 문트리(Moontree)는 여행자들에게 "코끼리 바지만 사지 말고 마을의 수공예품에도 관심을 가져주세요. 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취미로 여행자들의 셔츠에 초상화도 그려 드립니다. 당신들이 여행에서 이곳에서의 고요함과 진정한 쉼을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부탁의 말을 전한다.
캐년을 가는 길에 전망이 아름답게 펼쳐진 컨테이너 하우스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차 한잔의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 빠이> 저자인 노동효는 "숲과 폭포, 온천과 강, 논과 딸기밭으로 둘러싸인 빠이에서 홍대 거리의 분위기를 느꼈다. 다양하고 조화로운 빠이는 오래된 홍대 골목이자, 제주도의 분위기를 닮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평온하던 빠이에도 대위기가 찾아 왔다. '치앙마이에서 빠이까지 762개 굽은 길 대신에 직선 터널을 뚫자! 치앙마이 도시와 1시간 대로 가까워지면 현대 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게 될 것'이라며 개발을 유혹하는 토건업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느린 삶을 추구했던 빠이 주민들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생명을 죽일 수는 없다며 저항했다. 타이 국왕도 힘을 보탰고, 결국 토건업자들은 두 손을 들었다.
야시장에서 3R숍을 운영하는 누이스(Nuis)는 "간판을 달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나는 더 많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 내 시간이 정작 줄어들게 된다. 나는 고양이 쿤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3R(Reduce, Reuse, Recycle) 제품을 만들고 이용하는 것이 나와 우리 모두의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누이스의 상점에선 한국에서 넘어온 플라스틱 비닐로 에코백을 만들고, 치약 튜브로는 동전 지갑을 만들어 판매한다.
누이스의 상점에선 비닐봉지 대신 택배용 뽁뽁이나 포장비닐을 수거한 뒤 끈을 매달아 물건을 담아준다. 또한 여행자들은 아트샵 빠이의 몬타리(Montalee) 작가가 판화로 만든 기념품인 에코백으로 비닐봉지를 대신한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씨엔 갤러리의 사카우(Sakaw) 작가는 고사리와 꽃잎을 말려 붙인 엽서와 코끼리똥 공책을 전시하고 판매도 한다.
자연의 개발과 플라스틱의 습격도 막아선 사람들, 자신의 집이 지구 공동의 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런 빠이 마을의 중심에는 농경을 기반으로 한 자급자족 광합성의 지혜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환경적, 사회·문화적,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마을은 바로 여기가 아닐까.
태국 정부는 미세 플라스틱, 캡씰, 생분해성 플라스틱 사용을 지난해 금지했고 올해는 비닐봉지, 스티로폼, 플라스틱 컵과 빨대 사용도 금지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학교 중학생들과 플라스틱 히어로(plastic hero) 팀을 만들어 학교에서 플로깅을 시작했고 광화문광장에서 캠페인도 펼쳤다. 그리고 지금 환경교사모임에선 노 플라스틱(no plastic) 챌린지를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 가을엔 내가 소속된 환경교사모임을 만나러 태국에서 3명의 교수가 찾아왔다. 3명의 교수님들과의 대화를 태국에서 온 편지로 소개한다.
저는 킹몽쿳 기술교육대 농업교육과 교수, 파카퐁입니다. 동행한 분들은 마하사라캄대 농업교육과 아디삭, 쁘래윤 교수입니다. 저희는 학교에서 농업과 환경을 가르칩니다. 교원 임용 제도는 한국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태국 학교엔 환경과목이 없습니다. 따라서 농업교육과 졸업생들은 농업이나 생물과목으로 시험을 봅니다. 이번에 제가 한국을 찾은 이유는 한국의 환경과목, 환경교사, 환경교육제도, 환경NGO가 궁금해서입니다. 이번에 서울시청, 원전하나줄이기정보센터, 서울에너지드림센터. 노을공원시민모임을 연결해주시어 한국환경교사모임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태국을 소개해 드리자면 한국과 같은 시기에 IMF를 겪었습니다. 당시 국왕이 농업과 물가를 꽉 쥐고 있었죠. 물가상승의 위협이 적어 한동안 국민의 삶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물가는 가파르게 올랐고, 세계의 관광객은 상대적으로 물가가 낮게 느껴지는 태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여행객을 통한 생활 물가의 상승,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쏟아지는 관광객들과 빠른 정보화 속 외국의 문화들이 무분별하게 확산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이젠 태국의 어린이들이 동요 대신 케이팝을 즐겨 부릅니다. 청소년들은 한국 드라마에 빠져 있고요. 그들이 성인으로 진입하는 시기의 태국의 일자리는 더 낮은 인건비를 받는 주변 라오스, 캄보디아, 버마의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로인해 20대들은 자국에서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지자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본, 한국, 싱가폴, 말레이시아에서 최소 10년 이상을 일하고 돌아옵니다. 이때 20대의 결혼 적령기를 놓쳐 버리는 거죠. 그들은 귀국해서도 결혼을 하지 않고 개인의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결국 태국은 인구노령화를 맞이했고, 현재 고령화의 인구 변동이 한국과 비슷한 패턴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태국 정부는 2012년 11차 국가경제사회개발계획부터 문화자원 존중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었습니다. 이건 교육의 추구방향과도 동일합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태국 전통문화가 사라질까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농업과 자연개발은 그동안 정부가 꽉 쥐고 있던 상황이라 가장 급한 우선 순위를 문화자원으로 한 겁니다.
11차 계획의 다음 순위로는 자연자원, 인적자원, 사회적자원, 물리적자원, 재정조건입니다. 이전의 경제개발 방식에서는 다문화와 경제 불균형의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났기 때문인거죠. 선진국의 플렌테이션 농업의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농업의 기준도 다시 정립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100평의 토지를 소유한 농부는 단일 작물만을 재배할 수 없습니다. 100평의 토지에는 논, 밭, 목축의 비율이 최소 기준으로 다양하게 재배되도록 기준을 정해져 있습니다. 농업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생존의 문제이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후기
지구여행 1편에서 소개한 캄보디아 시엠립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야시장이 3개월 동안 문을 닫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태국은 현재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고 포장, 배달 서비스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밤 10시-오전 4시까지는 통금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 독자분들 그리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건강하길 바랍니다. 다음편엔 스페인 교육 탐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숭문중학교 환경교사
환경교사모임 대변인
신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