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여행 1편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찾아 한국 밖으로 나섰다. 캄보디아, 태국, 카타르를 지나 출장지였던 스페인까지 21일간 만난 각국의 기관, 학교와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지속가능한 삶과 환경교육의 관점에서 대화 형식으로 연재한다. 참고로 외국 친구들에게 내 이름은 ‘준jun’으로 불린다.
첫 번째 편에 등장할 아야Aya는 캄보디아 시엠립 야시장에서 11번가 상점을 운영하는 30대 초반의 당찬 여성이다. 아야는 어린 시절 톤레사프 호수의 쓰레기 소각장 마을에 살았다. 그로 인해 그녀와 그녀의 딸은 환경 질병을 얻었다고 한다. 지금도 계속되는 두통으로 그들은 매일 약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녀의 딸 역시 그 고통으로 중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무늬만 무상교육인 캄보디아지만 그래도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발견한 크메르인의 붉은 열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2월 30일
나 : 아야~ 쑤어스데이 안녕, 가족 모두 잘 지냈어? 작은딸은 다 나았어?
아야 : 쑤어스데이, 너무 오랜만이야. 부모님도 건강하시지?
나: 너 하는 일은 잘돼?
아야 : 네가 알다시피 시엠립에 관광객이 계속 줄고 있어서 난 너무 걱정이야.
나: 음, 솔직하게 말하자면 캄보디아 정부가 잘못하는 게 있어. 관광객에게 입국비자를 30달러나 받지, 앙코르 유적지 입장료를 1일 37달러를 받지, 시내버스가 없으니 관광객은 계속 툭툭 택시를 타야 하고, 나 같은 여행객은 재방문을 꺼리는 게 사실이야.
아야: 그래도 연말인데 행복한 생각만 하자. 그나저나 내일 시엠립 펍스트리트에서 신년 파티가 열리는 데 같이 놀러 갈래?
나 : 무슨 파티인데?
아야 : 응, 시엠립에서 신년파티는 가장 큰 나이트클럽 파티야. 펍스트리트의 사찰에서 매년 우리를 위해 준비해줘. 아마 이 동네 사람들 여남소노 모두 야시장에 모일 거야.
나 : 그래, 그럼 내일 우리 다시 만나.
12월 31일
아야 : 준, 사람 많으니까 나만 잘 따라와.
나 :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거지?
아야 : 시엠립 신년파티 어때, 신나지?
나 : 이렇게 시끄럽고 화려한 신년파티를 사찰에서 준비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한국에선 서울 보신각에서 타종하고 아침에 뜨는 해를 보며 경건한 새해를 맞이해.
아야 : 준, 거리의 무대가 잘 보이는 이쯤에서 우리도 맥주 한잔 마실까?
나 : 아야, 저기 무대를 봐. 사찰에서 여는 신년파티라지만 비어 라오Beer Lao 후원 행사잖아. 이름만 사찰에서 내건 맥주회사의 PPL인 거야. 시엠립의 젊은 친구들은 다 모인 거 같아. 너무 시끄럽고 거리가 완전 나이트클럽이야. 저기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은 누구야?
아야 : 캄보디아에서 아주 유명한 가수야. 그리고 지금 여기에 노인도 많아.
나 : 내가 보기엔 노인은 별로 안 보이는데?
아야 : 캄보디아는 기대수명이 60세야. 저기 저 사람들이 노인 축에 속해, 그래도 내가 보기엔 시엠립의 거리는 너무나 젊었고, 나이트클럽은 있지만 갈 수 없는 현지인들은 이렇게 새해가 되면 맥주회사가 차려주는 신년파티를 고맙게 즐기고 있었다. 마치 2002년 월드컵을 응원하던 우리의 거리처럼 말이다.
나 : 기대수명이 60세밖에 안 된다고?
아야 : 응, 우리에겐 의료보험제도 자체가 없어. 그냥 아프다가 갑자기 죽는 거야. 정부가 의료복지를 안 해주니까 최근에 외국계 AIA 같은 민간보험 회사 두 곳이 들어왔어. 그것도 돈 있는 사람들이나 가입하지 우리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꿔.
나 : 나 갑자기 한국이 고마워졌어. 그런데 우린 뭐가 더 아플까 걱정하여 추가로 온갖 민간보험도 가입하고 있어.
나는 맥주와 음악 그리고 조명에 취해 고개를 들어보니 무대가 있는 건물 옥상엔 AIA 생명 광고판이 거리에 모인 우리를 붉은빛으로 비추고 있었다.
1월 1일
평소 일출을 못 볼 만큼 아침잠이 많은 나였지만 이곳에선 아주 자연스럽게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주 빨갛게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침대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전에 아야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야 : 준, 오늘은 뭐해?
나 : 나는 이번 여행에서 아무런 계획이 없어. 그냥 쉬러 온 거야.
아야 : 그럼 새해니까 우리 집에서 밥 먹자.
나 : 나야 좋지. 고마워.
아야 집에 초대받은 나는 얼른 가게에서 집들이 선물로 세제 한 봉지를 샀고, 잠시 후 아야는 나를 오토바이에 태워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아야 : 엄마, 내 친구 준이 왔어요.
나 : 안녕하세요, 어머니. 초대 감사합니다. 한국에선 집들이에 초대받으면 세제나 휴지를 사서 방문해요. 어머니 오래 행복하셔야 해요.
아야 :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먹어 준.
나 : 우와, 이 생선구이 정말 맛있다. 이 생선은 어디에서 잡은 걸까?
아야 : 시엠립의 생선이나 해물은 거의 톤레사프 마을에서 잡아.
나 : 아, 메콩강 물이 들어가는 그 유명한 맹그로브 숲 말이지? 로컬푸드라 정말 맛있네.
아야 : 밥 먹고 일몰 구경하러 톤레사프 호수의 맹그로브 숲에 놀러 갈래? 나는 오늘 1월 1일이라 저녁에 가게 문을 열거든.
나 : 그래그래, 근데 캄보디아는 몇 시에 학교가 끝나?
아야 : 나도 힘든 게 저녁까지 가게를 해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아침 7시까지 학교에 가야 해서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해야 해.
나 : 정말 일찍 가는구나. 그럼 몇 시에 끝나는데?
아야 : 오전 11시면 끝나.
나 : 왜 그렇게 일찍 끝나?
아야 : 급식이 없거든. 집에서 밥 먹고 논이나 가게에서 일하라는 뜻이지.
나 : 캄보디아는 고1까지 무상교육 아니야?
아야 : 공립학교는 무상교육이라는 데 사실 이 동네에서 공립학교는 찾기 힘들어. 그래서 결국 돈을 내는 사립학교에 가야만 해.
나 : 무늬만 무상교육이었군.
아야 : 참, 캄보디아는 이번부터 기후환경 과목이 필수 과목으로 생긴대.
나 : 어, 나도 뉴스로 들었어. 한국도 언젠간 시작하겠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와 아야는 시엠립 시내에서 20분을 달려 아야의 고향인 톤레사프 수상마을인 캄퐁캇에 도착했다.
아야 : 준, 여기가 내가 어린 시절 살던 곳이야.
나 : 우와, 오후가 되니 정말로 붉은 태양, 붉은 토양, 붉은 사람들이 어울리는 시간이 되었구나. 근데 잠깐만, 저 집은 무얼 계속 태우는 거야?
아야 : 어, 이 동네 사람들은 물고기도 잡고, 농사도 짓지만 쓰레기도 태워서 돈을 벌어.
나 : 쓰레기를 태워서 돈을 번다고?
아야 : 응, 시엠립 여행자 숙소의 쓰레기를 정부에서 다 수거를 못 해.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이 호텔에서 돈을 받고 쓰레기를 가져와서 태워 없애는 걸 부업으로 하고 있어.
나 : 혹시 아까 먹은 생선구이도 이 마을에서 잡은 거야?
아야 : 응.
나 : 혹시 이 마을에 아픈 사람 많아?
아야 : 나도 그렇고 내 딸 역시 평생 두통을 달고 살아.
나 : 쓰레기를 태우고 매일 내리는 빗물이 다시 톤레사프로 흘러 들어갈 텐데 거기서 수확한 쌀과 생선, 해물들이 시엠립 전체에 팔린다는 거네?
아야 : 응, 맞아. 어쩌겠어. 우린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는걸.
삶, 교육 그리고 문화의 충격에 난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나 : 아야. 내가 대신 미안해. 관광객이란 이유로 그동안 시엠립을 즐길 줄만 알았지. 현실이 이런 줄은 몰랐어.
아야 : 그래. 한국 정부는 국민에게 잘해준다고 알고 있어. 아마 나의 이번 생은 망했나 봐. 우리 삶엔 정부가 안 보여. 국민 각자 알아서 열심히 살아야 해. 그래서 나 같은 상점 운영자에겐 관광객의 소비가 절대적인 수입원이야. 우리 정부의 이런 점은 너에게 미안해.
나: 알겠어. 근데 상점에선 가격을 60~70%나 더 부르니 정가로 물건을 구매하는 한국인에겐 비싸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야. 한국인 대부분이 영어도 잘 못 하니 물건값을 제대로 깎을 수도 없고…….
아야 : 그 상점에서 일하는 알바생의 하루 일당이 얼만지 알아?
나 : 글쎄.
아야 :여기선 물건값을 비싸게 잘 파는 게 알바들의 능력으로 평가돼. 그 능력을 인정받아야 그 일도 계속할 수 있는 거고. 여성이나 어린이, 청소년은 하루 일당이 1.25달러약 1500원야.
나 : 갑 건물주, 을 상점주의 소득을 위해 병인 알바생이 고생하는 건 여기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네.
1월 2일
오늘도 붉은 일출로 아침을 맞이하고, 앙코르 와트 3일권을 끊고 마오 기사의 툭툭 택시로 일몰이 아름다운 쁘레룹 사원으로 향한다. 오늘의 여행 파트너는 한국에서도 만나기 힘든 내 친구 영리다. 그녀는 서울에서 지구촌 전등 끄기 캠페인을 나와 함께 기획했고, 서울시청 에너지시민협력과에서 근무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서울보건환경원에서 미세먼지 대응 홍보팀을 맡고 있다. 이곳에서 그녀와 어린 딸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페이스북은 우리를 연결하고 있었다.
마오 : 안녕하세요. 한국인이죠?
나 : 어떻게 알았어요?
마오 : 시엠립엔 한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아요. 한국인을 많이 봐서 이제 쉽게 구별할 수 있어요. 쁘레룹 사원으로 갈 거예요?
나 : 네, 일몰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 들었어요.
마오 : 맞아요. 다들 앙코르 와트만 가는데 쁘레룹도 정말 예뻐요.
나 : 근데, 시엠립 공기가 정말 맑아졌어요.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이죠?
마오 : 아, 네. 신규 툭툭 택시는 가스만 허가가 납니다.
나 : 지금 보니 2년 전보다 먼지 나던 디젤 툭툭 택시가 엄청나게 줄었어요. 이건 캄보디아 정부가 잘하는 일이네요. (한국도 이제 디젤차 그만 타야 하는데……) 근데 저는 왕복해야 할 것 같은데, 쁘레룹 사원에서 2시간 기다려 줄 수 있어요?
마오 : 물론이죠.
나 : 영리, 우린 정말 한국에서도 만나기 힘든 사이인데, 여기서 만나다니 너무 반가워.
영리 : 그러게, 너 신용승 원장서울보건환경원이랑 잘 아는 사이야?
나 : 아니, 잘 아는 사이는 아니고 몇 번 일로 마주친 정도야. 근데 딸이랑만 여행 온 거야? 딸은 몇 살이야?
영리 : 얘는 이제 네 살이야. 남편은 바빠서 휴가를 같이 못 냈어. 안타깝지만 그도 벌어야지.
나 : 아빠도 이제 아이의 교육에 관심을 보여야겠다. 네 딸은 지적 욕구가 충만한 네 살이야. 봐봐, 지금 굉장한 질문들을 쏟아내고 있잖아.
영리 : 그러게, 그래야 하는데 아이 아빠가 너무 바빠서 혼자 양육하고 있어.
나 : 너도 바쁠 텐데, 하여튼 대단하다.
마오 : 가족이 너무 잘 어울리네요. 저도 이만한 아이가 있어요.
우리가 가족으로 보였나 보다. 참고로 전 한국에서 결혼 파업 상태인데.
나 : 영리, 올 한 해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
영리와 난 아름다운 일몰과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함께 나누고 올해 서로의 행복을 기원한다.
1월 3~5일
한국 서쪽의 붉은 나라 캄보디아 시엠립, 붉은색 흙먼지가 날리는 비포장도로, 붉은색 일출과 일몰 그리고 그 붉은 노을을 닮은 크메르인들, 고르게 가난하기에 행복한 사람들! 마오 기사와 난 4일 연속 같은 시간에 쁘레룹 사원을 방문했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사진과 그림에 담았다. 그리고 습지의 달 2월을 주제로 칼럼 한 편을 써서 신문사에 보냈다.
1월 6일
아야 : 준, 오늘 기분은 어때?
나 : 나야 항상 행복하지. 근데, 네 가게의 물건들은 다른 곳들이랑 좀 달라. 수제로 만든 지역 상품이 참 많아. 이건 누가 만드는 거야?
아야 : 사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 더 있어. 팜유 농장에서는 어린이와 여성들을 너무 혹사하거든. 그들의 하루 일당이 1.25달러라고 했잖아. 그래서 난 팜유 농장에서 독립한 어린이와 여성들을 그들을 돕는 NGO와 연결하는 역할을 해. 그들이 만든 수제 물건인 공정무역 상품을 판매하고 얻은 이익이 그들에게 갈 수 있도록 말이지.
나 : 너 생각만큼 참 멋진 사람이다.
아야 : 그러니 너도 이제 여행 오면 공장에서 만든 코끼리 바지 좀 그만 사고, 수제 상품을 사 줘. 다른 한국인에게도 이건 꼭 말해주고.
나 : 알았어. 아 참, 나 내일 태국으로 넘어가. 빠이에 있는 3R 스토어 누이스를 만나려고.
아야 : 그래. 나도 누이스 알아. 페이스북 친구라서. 만나면 누이스에 안부 전해주고. 태국, 스페인 여행도 건강히 잘 마치고 너의 부모님 건강도 기원할게. 시엠립에 다시 올 때 꼭 연락하고.
나 : 알았어. 너도 건강하고 딸의 건강이 나아서 올핸 부디 중학교에 다닐 수 있기를 바라. 너와 시엠립 사람들에게 어꾼 감사해.
캄보디아에서의 9일은 나에게 너무나 행복했다. 내가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캄보디아에서는 안경이 그들 월급의 절반 값이라고 한다. 난 중학생들과 한국의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는 안경을 모아 캄보디아에 전달할 것이다. 이 캠페인은 ‘안아주세요’ 시민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다. 여러분도 잠자는 안경과 선글라스를 모아 전달해주시길! 그리고 다음 편에서는 아시아에서 플라스틱 퇴출에 가장 앞서고 있는 태국의 지속가능한 마을 탐방기를 소개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캄보디아를 여행할 때엔 현지 화폐인 리엘을 사용하길 권한다. 한국보다 화폐 가치가 너무 낮아서 오히려 달러와 원화가 더 통용된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1000리엘(약 300원)의 주스도 메뉴판엔 최소 화폐 기준인 1달러(1200원)라고 쓰여 있다. 대게 관광객들은 1달러면 싸다고 생각하여 기꺼이 지출하지만 사실은 1000원 단위가 절삭되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다. 물론 관광객이 많이 지출해주는 만큼 현지인의 삶이 좋아질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계속 달러가 유통되면 현지인의 물가가 올라 그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숭문중학교 환경교사
환경교사모임 대변인
신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