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차 베테랑 농부이자, 프로 모임러 베리를 아세요?!
홍성에 내려와 살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됐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다가 '우리는 왜 도시가 아닌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물음을 갖게 됐습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나만의 답을 찾아가고자 [우리는 이렇게]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찬바람 불어오는 계절이 돌아오면 손님들이 꼭 찾는 메뉴가 있다.
딸기 젤라또(소르베)는 꼬마 손님들의 최애 메뉴이자, 겨울부터 여름이 오기 전까지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이다. 겨울을 대표하는 과일인 ‘딸기’. 홍성의 많은 농가에서도 딸기를 생산하고 있다.
[홍성 딸기는 394명의 재배 농가가 146ha 면적에서 연간 28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 - 홍주일보
맛있는 딸기를 찾는 일, 젤라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젤라부 ‘딸기 소르베’는 원재료 함량이 높기에 맛있는 딸기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맛있는 젤라또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홍동에 있는 ‘베리네팜’의 설향 딸기를 사용하고 있다.
'베리네팜'을 운영하고 있는 정재영(애칭: 베리)과 첫 만남은 기억나지 않지만, 지역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종종 이야기 나누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단순히 홍성에서 ‘딸기 농사짓는 청년’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 이야기를 나누다가 ‘딸기 농사 9년 차’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앳돼 보이고 소년미 가득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농부의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청년 농부이자 다양한 활동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베리, 그는 어떤 이유로 홍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을까? 베리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홍동면에 있는 베리네 농장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전문적인 요리사를 꿈꿨는데요. 부모님의 권유로 요리의 시작점인 ‘식재료’를 생산하는 농사에 관심을 두게 됐죠.”
‘요리사가 되려면 식재료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부모님 권유에 중학생이었던 베리는 ‘농업고등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에 위치한 농업고등학교(애농학원농업고등학교) 입시시험을 봤는데, 합격하는 바람에 일본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진학하며 농업에 대한 배움을 이어갔다. 여전히 요리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대학 졸업 후 할아버지의 호출에 홍성에서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홍성에 계셔서 명절 또는 가족 행사할 때 가끔 들렸죠.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고요. ‘홍성에 땅도 있고 기반도 다 있으니 농고, 농대 나온 네가 뭐든 한번 해봐라’ 그렇게 2013년에 홍성으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웠던 것과 환경도 땅도 아주 달랐어요. 농사 1년 차에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죠.”
농사 1년 차,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은 후 작은 아버지의 권유로 딸기 농사를 시작했다.
“딸기가 다른 작물에 비해 가격변동이 없다는 말에 본격적으로 딸기농사를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농업을 전공했지만 양계와 논. 밭작물 위주로 공부했기에 딸기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었죠. 시작할 때 기술이 없어서 논산에 있는 농장까지 찾아가 교육을 받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연구도 하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농사도 농사지만,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놀고 싶었던 혈기 왕성한 20대. 베리는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사람들과의 만남, 활동이 홍성에 정착하게 된 큰 계기가 됐다.
“농사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죠. 당시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다양한 지원사업도 참여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아요. 솔직히 말해서 농사를 그만두고 홍성을 떠날 기회는 아주 많았어요. 그런데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곳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홍동이라는 마을이 좋아지게 됐죠. 자연스레 나도 여기에 뿌리내리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베리는 농부이면서 프로 모임 참석러이자 행사 기획자이다. 마을에서 만화방, 영화 소모임, 보드게임방 등을 운영하기도 하고 아카펠라, 케이팝 댄스, 필사, 뮤지컬, 클라이밍 등 다양한 소모임에 참여하기도 한다. 지방에 놀거리가 없다는 이야기는 베리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 말이다.
“청년들이 농사를 짓다가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판로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고, 그다음으로는 주변에 취미생활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또래가 없다는 것이죠. 저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저는 ‘왜 이런 게 없지? 그러면 내가 만들어야지!’하고 하나둘 하다 보니 지금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됐네요.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이 좋을 때 그 과정에서 얻는 뿌듯함이 큰 것 같아요.”
덜컥 홍성으로 내려와 생활한 지 9년, 베리는 이제 홍성 사람으로서 더 재미있는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아직 농사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죠. 홍성이 아니더라도 잘 살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제 생각과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농가주택으로 이사해 나만의 공간, 나만의 집을 꾸미며 홍성에서 잘 정착하고 싶어요.”
맛있는 딸기를 선보이기 위해 매일 농장을 돌보며 수확부터 포장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베리의 모습에서 농부의 정성과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농장에 하얗게 핀 꽃이 달콤한 딸기로 결실을 맺기까지 농부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듯,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에 베리도 홍성에 쉬이 정착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베리가 베테랑 농부이자 프로 모임러로서 홍성에 피어나는 꽃들에게 따스한 온기를 나눠주는 농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베리네팜' 홈페이지에서 베리가 키운 딸기를 구매할 수 있고, '베리네팜' 인스타그램을 통해 농장에서 일어나는 일, 딸기수확 체험도 예약할 수 있습니다.
(1)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나만의 놀이터를 만드는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