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토박이, 지역 청년, 예술가로 살아가는 방법...채정옥 작가
홍성에 내려와 살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됐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다가 '우리는 왜 도시가 아닌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물음을 갖게 됐습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나만의 답을 찾아가고자 [우리는 이렇게]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젤라부에서는 젤라또를 즐기는 다양한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젤라또 자체만으로도 달콤하고 맛있지만 에스프레소, 올리브오일 등 서로 다른 매력의 맛이 얽히고설키면 새로운 풍미를 만들어낸다.
최근 서울에서는 젤라또와 위스키, 와인을 캐주얼하게 즐긴다고 한다. 평소 위스키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젤라부에서도 소개하고자 서둘러 물품을 준비했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연출하고 싶어서 컵 코스터를 구매하려는 찰나, ‘홍성에 재주 많은 작가분들이 많은데, 제작을 의뢰하면 더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평소에 친분이 있던 ‘채정옥 작가’에게 코스터 제작과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 흔쾌히 그녀의 공방으로 초대를 받았다.(코스터는 직접 만드는 것으로 계약체결)
2018년 홍성에 내려온 직후 ‘홍성 청년들 잇슈’ 모임을 통해 채정옥 작가를 만났다. 그 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녀와 가깝게 지냈다고 생각했던 지난 7년의 시간이 새삼 무색하게 느껴졌다. 그녀 특유의 수줍고 부끄러워하는 모습과 달리, 지역 청년이자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홍성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 덕분에 그녀는 어릴 때부터 자연과 가깝게 지냈다. 자연과 공감하고 채취한 것들을 표현하기 좋아했기에 특기를 살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대학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홍성으로 돌아와 미술학원에서 근무했습니다. 저에게 미술은 재미있는 작업인데, 아이들에게 주입식 교육도구로 사용되는 모습에 회의감을 느꼈어요. 이때 진로에 대해 방황을 하다가, 다양한 경험을 쌓고자 말레이시아로 어학연수를 떠났습니다. 이어서 캐나다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했죠. 여러 문화권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는 일상이 좋아서 이민까지 생각했었죠.”
해외생활이 채정옥 작가를 한층 더 성장시켜 줬지만, 고향이 품어주는 안정감이 그녀를 홍성에 머무르게 했다.
“캐나다 생활을 마치고 홍성 집에 도착했는데, 따뜻한 밥이 담긴 밥솥을 보고 울컥했어요. 아무래도 해외에서 의지할 곳 없이 혼자 생활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었나 봐요. 홍성에서 느끼는 안정감에 다시 일자리를 구하고 저만의 터전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죠.”
지역 토박이였기에 다시 돌아온 홍성에서 보다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지역과의 강렬한 연결고리, 어렸을 때는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큰 힘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지역이 좁다 보니 어딜 가나 꼭 지인을 만나게 돼요. 늘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 같아서 행실을 더 조심하는 편이죠. 이 연결고리가 저희 부모님까지 이어지다 보니 조금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죠. 지금 남편과 연애할 때 혹시라도 나쁜 소문이 날까 봐 7년 동안 비밀연애를 했어요.(웃음) 하지만 성인이 되고 홍성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이 연결고리가 저에게 큰 힘이 됐어요. 지역이 주는 소속감과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홍성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그녀의 전공 분야는 아니었다. 우연히 청운대학교 청년 창업가들로 구성된 ‘홍성 청년들 잇슈’ 모임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직장생활만 잘하면 될 줄 알았는데, 지역에서 청년 창업가들이 재미있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일일 찻집, 청년 페스티벌 등 청년들에게 필요한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저 자신도 성장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평소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편인데, 함께 하는 친구들의 응원 덕분에 자신감도 높아지고 다양한 기회가 찾아오고 작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현재 채정옥 작가는 한국화 작가로서, 가죽공예가로서 전시, 교육, 강의,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쉬운 길은 아니지만, 처음 시작하는 작가들에게 긍정적인 마중물이 되어 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여러 지역에서 예술가들을 위한 레시던시 프로그램과 다양한 지원사업이 운영되고 있어요.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기 때문에 입문하는 작가들에게 레퍼런스와 자존감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활동하다 보면 경제적으로도 다양한 기회가 찾아오기도 하죠.”
그렇지만 예술가로서 지역에 정착하는 문제는 다른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지방에서 생활은 도시와 완전히 달라요. 대중교통도 부족하고 저녁 9시만 돼도 온 마을이 고요해지죠. 지역에서는 심심한 일상을 좋아해야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가끔 일상이 무료해지면 도시에서 놀고 온답니다.(웃음) 예술가로서 이름을 알리기에는 여전히 도시에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것 같아요. 작품활동을 위해 지역으로 이주하기보다는 빡빡한 도시보다 조금은 여유롭고 한적한 생활을 하고 싶을 때 지역으로 내려오라고 권유하고 싶네요.”
홍성에서 태어나 30년 넘게 지역에 머물면서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내포신도시가 조성되고, 대규모 글로벌 바비큐 페스티벌이 진행되고... 지역도 그녀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채정옥 작가는 오랜 시간 홍성을 바라본 청년으로서 지역의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 ‘진정한 어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역 청년으로서 ‘맨땅에 헤딩’하며 살아가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어요. 많은 청년들이 홍성에서 다양한 꿈을 그려나가기 위해서는 바탕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역의 매력과 특징을 계속 발견해 주고, 외지에서 온 청년들이 홍성에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이에 필요한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는 등 사회적, 정치적으로 눈치 보지 않고 든든한 기반을 만들어주는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저 또한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죠.(웃음).”
자연과 예술, 그리고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채정옥 작가는 홍성이라는 작은 지역에서 큰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예술가로서의 열정과 도전, 그리고 지역 공동체와의 끈끈한 연대가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가는 그녀의 모습은 지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는 이들에게 따뜻한 영감을 전한다. 앞으로도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날 아름다운 작업들이 홍성과 그 너머에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할 것을 기대한다.
'옥이쓰 공방' 인스타그램에서 채정옥 작가의 작품과 전시소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나만의 놀이터를 만드는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