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미술을 처음 시작할 때 학원에서 신입생에게 제일 먼저 시키는 일은 바로 4B 연필로 명암을 표현하게 하는 연습이다. 이는 손의 힘을 조절해 가면서 서서히 명암의 단계를 늘려가는 것인데 처음 시작은 5단계부터다. 맨 왼쪽은 흰색, 맨 오른쪽은 검은색으로 미리 정해 놓고 조금씩 색을 덧칠해가며 어둡고 밝음의 단계를 네모 칸에 채워 나가는 것이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쉽다. 하지만 “선생님, 다 했는데요.”를 마치자마자 서서히 단계가 늘어나다가 결국 30단계까지 가게 되면 깨끗하기만 했던 하얀 종이는 거의 그냥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 된다. 학생의 머리속도 거의 비슷한 상황이다. 어째서인지 10단계 이상 넘어가면 양옆의 색이 모두 비슷해 보이는 착각에 빠져 아무리 힘 조절을 하면서 색을 채우려 해도 그 색이 그 색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연습은 앞으로 있을 무엇인가를 ‘그린’다는 행위를 하기 위한 가장 기본 중의 기본. 기초 중의 기초이기에 섣불리 대충 넘어갈 수 없다. 물체의 다양한 색감을 표현하기에 앞서 명암의 단계를 세분화시킬 수 있는 관찰력이 우선인 미술 분야에서 이 능력을 키우는데 이만한 연습은 없다. 이를 알고 있는 선생님은 학생이 아무리 어려워 해도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생각보다 기초 단계인 이 과정도 넘어가지 못하고 중도포기 하는 학생들도 존재한다. 그만큼 빛을 여러단계로 나누는 능력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림 초보자들에게도 이 명암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연습은 그림 실력이 느는데 큰 도움이 된다. 30단계까지는 아닐지라도 종이에 5단계 정도로 명암을 표현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아주 미세하게 밝고 어둠을 느끼고 손끝의 힘을 조절해 그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 연습의 가장 핵심은 바로 앞의 명암의 단계에서 아주 조금 더 색을 덧칠해 어두움을 표현하는 손끝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관찰력과 조절력은 어느 분야에서나 중요한 포인트이기는 하지만 특히 미술 분야에서 이 능력은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점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