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시험에서 떨어졌다.

근데 왜 또 공부는 안 하고

by 수험생

탈락했다. 정말 예상하지 못했나?라고 한다면 아니. 시험이 다가올수록 직감했다. 탈락할만한 수준이었다. 몇 달 전 패기 있는 시작과 달리 갈수록 의지가 떨어지고 공부 양은 줄었다. 의지야 떨어질 수 있지만 그래프가 가팔랐다. 공부가 재미없는 건 아닌데 책상 앞에 앉아 멍 때리는 시간이 늘었다. 직전엔 불태웠지만 벼락치기로 메꾸기엔 공백이 컸다. 합격률이 폭락했다지만 붙을 사람은 붙었다. 난이도 탓을 하고 싶진 않다.

 최종 합격과 1차 합격. 목표는 있었지만 체화하질 않았다. 진입과정부터 1차 시험 당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여전히) “노무사 시험을 왜 준비하나요?”에 대한 대답은 “취업”이었다. 돈도 벌고 사회인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가진 스펙은 어디에도 들이밀 수 없었다. 이것저것 한 건 많았는데 이력서에 쓸만한 게 없었다. 그러던 차에 수험이 눈에 띄었다.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도 할 수 있고, 경로와 골인지점도 상대적으로 명확하니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만만하게 본 건 아니다. 합격률은 단 자리고 난 비전공자인데 미치지 않고서야. 관심도 있었다. 교재에 쓰인 판례를 보고 몇 년 전 방문했던 투쟁현장의 결과를 그제야 알게 되어 너무 부끄럽기도 했다. 그럼 뭐가 문제였을까. 자만했나? 이건 현상에 가깝다. 수험을 잔소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만 여겼나? 그 정도로 양심 없진 않다. 수단으로 쓸 수 있는 시험도 아니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취업이라는 목적. '취업'은 성질은 추상적인데 성격은 현실적이다. 어떤 때엔 행위를, 어떤 때엔 상태를 가리킨다. 우리는 그 두 글자 만으로 한강의 기적부터 코로나 불황까지의 경제사와 일자리, 스펙˙열정페이˙무한경쟁사회˙압박면접 등 잊을만하면 뉴스에 나오는 ‘고질적인' 한국사회의 문제점들, 경력직만 뽑는 회사들을 비꼰 TV프로그램, 숱한 부정채용 기사들, 혹은 대학동기, 앞집 둘째 딸, 건너 건너의 지인, 누군가의 우울, 좌절, 슬픔 등 개인의 얼굴부터 사회의 부조리까지 현실의 면면들을 떠올린다.

 현실적이다 못해 구질구질한 성격 탓에 '취업'은 추상의 답변으로 자주 쓰인다. 나도 그랬다. 하고 싶은 게 뭐니? 취업이요. 목표가 뭐니? 취업이요. 꿈이 뭐니? 취업이요. 틀린 말은 아니다. 질문의 의도도 잘 파악했다. 다만 모호하다. 취업은 너무 많은 맥락을 품고 있는 탓이다.

가령 저녁으로 뭘 먹고 싶니?라고 물어본다 치자. 나는 생선구이요라고 답한다. 생뚱맞지 않고, 적절히 응하는 답변이다. 그렇지만 그 생선구이가 1시간 후 내 입안으로 들어와 형체를 잃을 따뜻한 고등어를 뜻하진 않는다. 취업은 생선구이다.

 물론 ‘삼거리 버거킹 옆 밥집에서 오늘 13번째로 굽는 생선구이'라 답할 순 없다. 대신 ‘고등어구이’ 라고는 말할 수 있다. 여전히 1시간 후 먹고 있을 생선을 지칭하진 않지만 좁혀진 카테고리는 새로운 논의를 연다. 어느 식당에 갈지, 오늘 날씨와 고등어구이가 어울리는지, 플랜비로는 삼치와 가자미 중 뭐가 좋을지. 웨이팅이 있다면 최대 얼마나 기다릴지도 생각해 본다. 고등어구이와 점심시간을 저울에 올려보는 거다. 나의 패착은 생선의 종류도 제대로 고르지 않은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시험을 생선종류로 착각했다. 연탄이냐 숯불이냐를 골라놓고.


 지금쯤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이래서 떨어진 거 같은데..

맞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무 생각 안 하고 그냥 했다는데 나는 단어 하나에 크으 취업이란 이러쿵저러쿵 떠들며 공부를 슬쩍 미뤄뒀다. 타자를 치며 몇 번 멈칫했지만.. 마침표를 찍어두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끝도 없이 뻗어나가 2078년 한국사회의 로봇규제법규에 이르러 정신을 차릴 테니 이 편이 낫다.


또는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변명이 장황하네

.... ㅠ

한 김에 더하자면 나는 생선의 종류를 골라야 하는지도, 고르는 방법도 몰랐다. 고등어구이 삼치구이 다 지나치고 '숯불생선구이' 써놓은 집만 찾아다니며 헛발질했다. 결국 제풀에 지쳐 식욕을 잃고 점심을 굶는 바보 같은 결말을 맞았다.

왜 골라야 하는지도 몰랐냐고 묻는다면 꿈이나 장래희망, 하고 싶은 일 같은 걸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그랬다. 여기에도 할 말이 있지만 이래 보여도 수험생이라.. 말을 줄여야겠다.


전패위공보단 아장아장에 가까운 수험일기.

잘해보고 싶어서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썼다.

엄마아빠는 보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