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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비어있는 걸까?

by 박은영


어제 대구 팔공산 자락에 있는 사유원을 다녀왔다.

세 명의 퇴직 전 직장 후배들과 함께.


나름 산속 길들을 다듬어 놓았더라.

의식적인 손길이 닿은 잘 차려진 밥상을 보는 것 같았다.

사람의 발길은 있으나 손이 닿지 않은 험한 길이 더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그들의 수고가 안쓰러워 여서일까!


한 달이 넘도록 이래저래 많이 아프다.

그 어떤 더위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내가

어제는 나 혼자 진땀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머리와 옷이 다 젖었는데, 보기에 민망하였다.


현직에 있는 그들의 고민과 어려움의 말들은 은퇴한 나에겐 남의 일이 되었음을 새삼 느꼈다.

제법 진지한 그들을 보며 지나고 나면 하찮은 것들이라고 허공에 소리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그건 아직 젊음이라는 걸거라며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요즘 들어 딱히 부족함은 없으나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것이 있는 듯함이 나를 어지럽힌다.


엊그제 은퇴 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새로운 일을 찾은 사람의 책을 읽었다. 그 작가의 삶에 대한 생각은 지금 60~70대의 여느 사람들처럼 일이 없으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바쁠 것 같은 미래가 그에게는 행복인 듯했다.


은퇴를 하고 심하게 아팠던 그래서 하루들이 온전치 않았던 10달을 빼고는 바쁘지는 않지만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러니 은퇴 후에도 일이 없어서라거나 사회와의 단절을 두려워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 듯한 불안감은 계속 나 자신을 벼랑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를 떠났던 그 작가는 순례를 다녀온 후 일을 찾아 삶의 의미를 찾았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모든 일을 다 접고 산티아고 길을 걸어볼까?

길을 다녀온 후 일을 찾은 사람과 뭔지 모를 무엇을 찾기 위해 모든 일을 접고 떠나는 나?


고통의 길을 걷고 나면 무엇이 보일까?


육체는 떠남을 허락해 줄까?

청력을 잃어버린 오른쪽 귀, 시력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두 눈, 예전 같지 않은 지구력. 게다가 수시로 저려오는 두 다리.


경험치로는 이든 저든 무엇이든 시작을 해야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답이 아닌 것을 지워가다 보면 답이 보일까.


그렇다면 뭐부터 시작해 볼까?

그만두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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