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공여사 Aug 05. 2022

제주를 깔고 앉아 멸치 똥이나 따며 보내는 여름휴가

제주 첫여름 휴가

5월부터 끙끙대며 썼던 웹소설 완성본을 8월 1일 드디어 출판사에 넘겼다. 그리고 피드백이 오기로 한 날짜까지 남은 시간은 딱 일주일.


야호! 휴가다! 그것도 제주를 엉덩이에 깔고 앉아 보내는 첫여름 휴가.


.... 근데 덥다. 


지구가 더워져서인지, 제주가 원래 더운지, 원고 끝내느라 내 몸의 자율신경이 균형을 잃어선지, 


하여간 무지 덥다. 


남편이 친절하게 묻는다. 

"어디 가고 싶은 데 없어?"

"응. 없어."

"그래,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

"...."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나에겐 제일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Human being이라는데, 난 여전히 Human doing 진행형이다. 


가만있지 못한다. 소파에 2분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마당에 잡초 뽑으러 간다. 우지직 눈에 보이는 탐스러운(?) 잡초를 손으로 건져올린다. 한참을 뽑다, 반바지 속까지 죽을힘을 다해 쑤셔 박은 모기 침 때문에 미치도록 여기저기가 간지럽다. 빡빡 긁다 그제야 포기하고 안으로 들어온다. 


남편은 마당에 강아지풀이 기어올라와 눈앞에 흔들거려도, 설겆이가 부엌에 산더미만큼 쌓여있어도(설겆이는 온전히 남편 몫이다), 방바닥이 이사가는 날만큼이나 어지러져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근데 난 안 그런다. 못 그런다. 


병이다. 


그래도 휴가잖아. 그것도 남들은 비행기 표 못 끊어, 혹은 머물 숙소가 하나도 없어 못 온다는 제주.


제주를 엉덩이에 깔고 앉아, 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딱 일주일 휴가를 보내야 한다. 


조금 있다 보니, 난 시원한 에어컨 틀고 소파에 이러고 앉아 있다. 

나만의 휴가를 보내는 방법

입으로는

뉴욕에서 동생이 보내온 최고급 원두를 남편이 손수 갈아 바친(?) 시원한 냉커피가 들어오고.


눈과 귀로는

요즘 우리 부부가 흠뻑 빠져있는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3번과 리스트 초절기교를  들으며.


손으로는

그래도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무의식적인 위로를 겸해, 친정에서 보내온 멸치 똥을 하염없이 따며.


난 제주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이렇게 만족스러운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저녁을 대강 먹고, 까뭉이가 하루 종일 기다리는 산책 시간. 남편과 까뭉이 함께 제주 바다로 저녁 산책을 나간다. 

바다로 가는 길

조금만 나가면 바다가 이렇게 보인다. 

시원한 제주 여름 바다


매일 다른 하늘과 매일 다른 구름과 매일 다른 바다를 보여준다. 


제주에 살면서 맞이하는 여름 첫 휴가.


남들은 못 와서 안달이라는 제주를 엉덩이에 깔고 앉아, 낮에는 시원한 냉커피 마시며 임윤찬의 피아노를 들으며 멸치 똥을 딴다. 저녁나절엔 까뭉이와 남편과 매일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바다를 찾는다. 


살아온 인생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돈도 하나 안 들이고,

아무하고도 긴장 타지 않아도 되는,

오감이 즐거운 나만의 휴가를.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동네 울뜯이와 과묵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