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길은 나를 부른다

– 산티아고로 향한 마음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산티아고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어느 아침이었다.
매일 받아보던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실린 한 구절,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다녀오겠다’ 하는 문장,
그리고 그 길이 ‘버킷리스트’의 상징처럼 소개된 내용이
이상하리만큼 내 마음을 오래 머물게 했다.


그날 이후, 내 안에서 조용히 어떤 울림이 자라났다.
‘나도 언젠가 그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그 막연한 바람이 결국 현실이 되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오직 ‘산티아고’라는 한 단어로 이어진 사람들.
그들은 나처럼 각자의 이유로 이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는 회복을 위해, 누군가는 용서를 위해,
그리고 나는, 내 안의 침묵을 듣기 위해 길 위에 섰다.


14박 15일의 여정 동안
우리는 때로는 무리를 지어 걷고,
때로는 길게 줄지어,
또 어떤 날은 나란히, 혹은 혼자가 되어 걸었다.
길 위에서 함께 걷는다는 건
서로를 이해하지 않아도 마음이 닮아가는 일이었다.


걷는 동안 만난 스페인은 생각보다 깊고 넓었다.
오늘의 스페인을 만든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흔적을 따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 섰을 때, 나는 오래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완성되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배웠다.


빛을 잃어가던 도시를 다시 살려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되살릴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책 속에서만 보던 명화들이 내 앞에 살아 숨 쉬었다.
그 순간, 오래된 시간 속에서 나 또한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낯선 언어, 낯선 하늘,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내 물통을 들어주었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내 걸음에 맞춰 걸어주었다.
그렇게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인연이 되었다.


산티아고의 하늘 아래, 나는 알았다.
길은 결국 나를 부르고 있었음을.
비로소 멈추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내 안의 나에게로 돌아오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 길에서 나는
‘걷는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 임을 배웠다.
그리고 오늘도 또 다른 길 위에서,
그때의 나를 조용히 떠올린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