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밥상에서 내가 배운 것들
그래도 사람 마음이 다 똑같아. 못 받아먹으면 또 그것대로 서운하고, 못 해주면 또 그것대로 안타깝고. 너도 너랑 똑 닮은 자식 하나 낳아봐야 엄마 마음 좀 알아줄 텐데. _p.34
문득 그랬다. 딸내미가 좋아하는 반찬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다고. 찬찬히 늙어가는 엄마를 배 아파 낳은 내 딸인 듯 보살피고 싶어지는 마음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_p.49
그날은 이상하게 바싹 구운 삼겹살 한 점 올라가지 않았는데, 쌈만으로도 저녁 밥상이 풍요로워진 기분이었다. 케일의 물기를 탈탈 털어 갓 지은 뜨끈한 밥 한 숟가락을 담고, 그 위에 달짝지근한 쌈장을 올려 입안 가득 욱여넣었다. 바작바작 소리 내어 씹으며 한 입 꿀꺽 삼키자, 거짓말처럼 눈가에 맺힌 눈물이 쏙 들어갔다. _p.95
이제 엄마는 더 이상 김을 굽지 않는다. 엄마의 요리 사전에 ‘포기’라는 단어는 쉽게 올라오지 않는데, 두 번째를 넘어 세 번째 허리가 부러진 이후로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오래도록 부루스타 불빛에 의지해 맨 김을 판판하게 굽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들기름 김은 이제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반찬의 대열에 올라서고 있다. _p.104
‘오리지널’ 타령할 때나 영어를 쓰는 엄마는, 어쩌다 이역만리에서 태어난 첫째 미국인 사위와 또 어쩌다 아침을 따로 챙겨 먹지 않는 삶 속에서 살아온 막내 사위를 얻게 되었을까. 자식 넷을 먹이고 입히는 것도 모자라 그 자식이 데려온 남의 새끼까지 두루 돌본다는 건 어떤 일일까. 어떤 운을 타고나면, 대식구의 먹을거리를 거둬들이는 삶을 살게 되는 걸까. _p.124
문득 엄마는 저녁을 실컷 먹었던가 헤아려보니, 우리가 소고기육개장 한 그릇을 허겁지겁 비우는 동안, “얘들아. 내일 저녁엔 뭐 먹을래? 제육볶음 해줄까?” 하며 다음 끼니로 무엇을 해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 끼를 해치우기도 전에 다음 끼니를 고민해야 하는 사정, 그것만큼 세상 피곤한 일이 있을까. _p.157
엄마도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만 같을 때 갱시기죽을 끓여 먹던 그 옛날의 그리운 기억을 소환해본 것은 아닐까? 비록 몸은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았던 시절 속 음식을 지어 먹는 일만으로도 텅 빈 가슴을 흐뭇하게 채우는 일 같아서 말이다. _p.181
엄마가 굳이 우리에게 배추적 만들기를 시키지 않은 이유. 그건 배추적 부치기가 어려워서만은 아닐 거라고. 그저 배추적만큼은 가장 나중까지 손수 부쳐 자식의 입에 직접 넣어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미뤄서라도 배추적의 맛만큼은 오래오래 가족에게 전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_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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