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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예지 Sep 06. 2024

이제 엄마는 더 이상 김을 굽지 않는다

<그리운 날엔 사랑을 지어 먹어야겠다> 에서 발췌

<그리운 날엔 사랑을 지어 먹어야겠다> 에서 발췌



이제 엄마는 더 이상 김을 굽지 않는다.


엄마의 요리 사전에 '포기'라는 단어는

쉽게 올라오지 않는데, 두 번째를 넘어

세 번째 허리가 부러진 이후로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오래도록

부루스타 불빛에 의지해 맨 김을 판판하게

굽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엄마의 '할 수 없는' 목록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마음 저편에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묵직하게 가라앉는다.


이제 나도 예쁜 밑반찬 몇 개쯤은

거뜬히 만들어낼 수 있는 정도가 됐건만,

들기름 김 굽기는 차마 엄두가 나지

않는 건 왜일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 것 같다.

내가 기어이 이해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를.


그건 바로 조금 전의 서운한 기억일랑

새까맣게 잊어버린 천연한 얼굴로

고춧가루 한 주먹 슬슬 뿌려 알타리를

힘껏 버무리는 엄마여야 할 것이라고.


딸의 입 속에 맛있는 거 한 가지를

더 넣어주기 위해

부러진 허리뼈를 곧추세운 채

끝내 엉덩이로 기어서라도

부엌을 전력 질주 중인

내 앞의 엄마여야 할 것이라고.


밥을 지어 먹는다는 건 어쩌면

끝내 사라져버릴 내 안의 한 사람을,

저 알타리를 씹듯

단단하게 껴안는 일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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