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브랜드의 리브랜딩을 통한 생존 전략
- 에비앙을 마시던 아기는 어느새 어른이 됐다
- 에비앙은 '브랜드 변곡점'에 있다
- 밀레니얼이 주도하는 블루 워(blue war)
- 어른이 된 에비앙, 어떤 식으로 브랜딩 할까?
*아무런 대가 없이 작가의 관심에서 시작된 글입니다.
이번 달 9일 에비앙은 새로운 광고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에비앙은 주로 병을 앓던 귀족이 알프스 빙하 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는 스토리 마케팅과 순수를 브랜드 속성으로 하여 이를 직관적인 이미지로 대상화한 베이비 마케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이번은 전혀 다르다. 광고 어디에도 알프스는 물론, 아기를 찾아볼 수 없다. 변하지 않은 건 광고 모델인 마리아 샤라포바뿐이다.
이번 광고가 놀라운 점은 이뿐이 아니다. 세계 시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미국 시장에 선점적으로 선보였다. 2015년 기준 미국 시장은 세계 최대 생수 시장이다. 2015년 미국 생수 소비량이 440.8억 리터로, 세계 생수 소비량 2380억 리터 중 18%에 해당되는 수치다. 즉, 에비앙은 완전히 새로운 컨셉의 광고를, 세계 최대 시장에서 선점적으로 시작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에비앙이 세계 최대의 시장에 이전과 전혀 다른 마케팅을 시작한 이유는 '브랜드 변곡점'에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변곡점이란 브랜드 경험을 통해 구축한 브랜드 자산이 내재적 혹은 외재적 변화로 인해 그 생명력이 다해가는 시점을 뜻한다. 즉, 에비앙은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에 따라 도전을 한 셈이다. 본격적으로 에비앙을 다루기 앞서, 브랜드 변곡점을 이해하는 데 주의사항 몇 가지를 알아보자.
하나는 브랜딩을 통한 브랜드 자산의 축적이라는 관점에서 작성됐다는 점이다. 브랜드에 속한 개별 제품이 아닌 제품과 해당 제품 브랜딩의 총합이다. 다른 하나는 브랜드 수명 주기가 결코 시간의 흐름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한때 노키아는 세계 1위 핸드폰 브랜드였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 후, 눈 깜짝할 사이에 핸드폰 브랜드 노키아는 소비자에게 잊혔다. 따라서 브랜드 수명 주기는 시간의 흐름이 아닌 브랜드 자산-소비자 인식의 관계와 내재적/외재적 변화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이제 다시 브랜드 수명주기에 적용한 에비앙으로 돌아오자.
에비앙 브랜딩의 시작은 스토리 마케팅이다. 유럽은 스위스와 북부 유럽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토양이 석회질이다. 때문에 물에 석회가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다. 지금은 정수시설이 있지만, 그렇지 못했던 1789년에 프랑스의 귀족인 레세르 후작이 석회로 인해 신장결석에 걸렸다. 레세르 후작은 알프스의 조용한 휴양지로 알려졌던 에비앙을 찾게 되었고, 거기서 나오는 빙하 지하수를 마시면서 병을 치료했다. 이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프랑스 약학회에선 효능을 지닌 약으로 에비앙 물을 인증했다. 심지어 처방전에 에비앙 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프랑스 정부는 에비앙을 중요 수원지로 여겨 보호구역으로 정하고 환경보호에 힘썼다. 그러던 중 1859년에 에비앙은 생수로 상품화됐다. 이처럼 최초 에비앙은 물보다 약으로 알려져 있었다. 알프스 빙하 지하수라는 깨끗한 물의 이미지에 뛰어난 효능을 가진 약 스토리로 사람들은 에비앙에 매료됐다.
에비앙은 'Live young' 캠페인의 첫 번째 시리즈로 스케이팅 편(2009)을 공개했다. 이후 서퍼 편, 댄싱 편 등 아기를 활용한 다양한 광고를 내놓았다. 알프스 빙하는 분명히 순수한 천연의 수원지다. 하지만 동시에 추상적인 관념이다. 선명하지 못한 이미지는 소비자 인식에 각인되지 못한다. 때문에 에비앙은 이런 추상적인 관념을 대체할 직관적인 이미지로 '아기'를 사용했다. '있는 그대로' 자연의 물을 추구하는 에비앙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아기의 관점은 서로 닮았다. 때문에 에비앙은 '있는 그대로 본연의 순수한 속성'을 매개로 아기라는 상징을 통해 차별화했다. 소비자 반응도 뜨거웠다. 에비앙 스케이팅 편의 경우, 공식 홍보 채널이 아님에도 무려 조회수 130만 회를 기록했다. 한발 더 나아가 에비앙은 '있는 그대로'의 순수를 넘어 내면의 순수로 '순수'라는 브랜드 속성을 계속 확장했다.
사실 에비앙의 베이비 마케팅은 굉장히 오래된 마케팅이다. 베이비 마케팅은 1935년에 처음 시작되어, 무려 80년 이상 유지됐다. 브랜드 속성인 순수를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해왔고, 이런 관점의 시도는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만들었다. 때문에 가격이 높다고 한들 높은 브랜드 충성도를 확보했으며, 프리미엄 생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뛰어난 성과를 보였던 아기를 제외하게 된 '브랜드 변곡점'은 어떤 변화 때문에 찾아왔을까?
세계 생수 시장은 매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시장 성숙도가 높은 미국에서도 최근 3년간 연 5% 이상 성장을 거듭했다. 그 이유는 생수뿐 아니라 모든 시장 전반에서 주 소비층이 된 밀레니얼 세대*덕분이다. 게다가 중국이나 동남아처럼 신흥 성장국가들도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생수 시장의 규모가 매해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세계 인구 중 20%가 거주하지만 담수는 7%로 마실 물 부족을 겪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15년에 생수 수입량 세계 1위에 올랐다. 이처럼 세계 곳곳 생수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생수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한마디로 푸른 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블루 워 시대다. 그렇다면 블루 워 시대가 세계 1위 프리미엄 생수 브랜드인 에비앙에 어떤 영향을 가져왔을까?
타겟 변화에 따른 욕구의 변화 : 베이비 세대에서 그 자녀인 밀레니얼 세대로
카테고리 본연의 한계에 따른 경쟁사간 제한된 포지셔닝 : 수원지를 통한 순수 포지셔닝 경쟁
생수 시장뿐 아니라 거의 모든 시장에서 밀레니얼 세대가 주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들로, 어느 세대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상황에서 성장했다. 교육 수준 또한 높다. 따라서 이에 맞춘 소비자 욕구의 재해석이 필요하다. 이를 연구한 이브 폴*에 따르면, 매슬로우 욕구 5단계는 3단계로 재구성할 수 있다. 이브 폴은 왜 이렇게 재구성했을까?
우리는 점점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있다. 페이스북의 캠브리지 애널리티카나 우리은행 해킹 사례처럼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뿐 만 아니라 넘쳐나는 정보들과 신기술로 변화의 흐름에 따라가기도 벅찬 현실이다.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는 삶의 안전과 제어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먹거리만큼은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한 범위에 있다. 청결과 순수를 강조하는 생수 시장 외 에도 유기농이나, 비 GMO식품처럼 많은 식품들이 삶을 제어할 수 있는 제품/서비스들이 있다.
커피 대신 스타벅스를 마셔라. 사랑과 소속감에 대한 욕구는 커피 대신 스타벅스를 마시는 이유와 비슷하다. 우리가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는 단순히 기능적인 효용을 구매하는 게 아니다. 그 물건이 그 브랜드가 제시하는 효용은 물론 가치/철학을 구매하는 것이다. 때문에 소지품 하나하나는 개인의 페르소나가 반영된 소유물과 같다. 재밌는 건 이런 소유물을 사진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공유한다는 점이다. 이런 행동은 인정을 받기 위한 또는 관심을 받기 위한 행동이다. 따라서 소유물의 가치가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러쉬나 자동차의 폐가죽과 천을 재활용하는 프라이탁처럼 사회적이라면 그 소속감과 사랑도 배가 된다.
마지막으로 삶의 의미다. 이 욕구가 상품화된 게 바로 경험이다. 하위 단계의 두 욕구가 제품의 기능적 혜택과 사회/감성적인 메시지에 해당된다면, 삶의 의미는 하위 두 욕구가 실제적인 경험과 연결된 걸 뜻한다. 전 단계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수용했다면, 이 단계에선 메시지를 공유한 이들과 연대를 이뤄 실제 경험을 체험하는 것이다. 실제적인 경험이라는 면에서 미각, 촉각 같은 오감이 중요해진다.
밀레니얼의 욕구 : 삶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통제, 기능을 넘어 사회/감성적 메시지, 메시지에서 비롯된 오감의 경험
*이브 폴 : a taste of generation 'YUM'의 저자로, 푸드 산업에서 밀레니얼 관련 연구자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돼 이브 폴의 인터뷰 영상
두 번째 변화는 '순수'를 향한 여러 브랜드의 경쟁 과열이다. 생수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증가하리라는 기대가 높아지면서, 많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생수 브랜드를 런칭했다. 브랜드라 하면 '차별화'를 중요시하지만, 생수 브랜드들은 재밌겠도 하나같이 수원지를 통해 순수함을 강조한다. 차별화를 택하는 대신 '순수'를 택한 이유는 생수가 갖는 본연의 한계와 희석효과로 인한 차별화의 효율성 때문이다.
수원지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브랜딩을 시도한다면, 분명 소비자의 이목을 끌 것이다. 하지만 브랜딩은 소비자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탄산수처럼 소비자가 그 차이를 직접 느낄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생수이기에 차별화가 힘들다. 때문에 생수시장에서 하이엔드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전하는 기업들은 생수 포장용기 디자인에 심미적인 기능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하이엔드 프리미엄 생수 브랜드의 디자이너가 갖는 그들만의 철학은 있겠지만, 소비자가 알기 원하는 건 디자인의 기능적인 철학이 아닌, 브랜드의 철학 또는 제품 자체의 기능이다. 감성 쓰레기라고 여겨지는 프라이탁도 디자인적 우수함도 있지만, 그 업사이클링이라는 프라이탁만의 철학이 존재했기에 성공했다.
희석효과는 주로 단일 브랜드가 브랜드 확장을 시도할 때 나오는 효과다. 희석효과란 너무 많은 마케팅 메시지의 범람으로, 소비자의 관심이 분산되어 차별화가 약화되는 현상을 뜻한다. 과거 간장을 만드는 샘표가 커피를 내놓은 사례가 있다. 검은 물이라는 공통된 속성을 갖지만, 음식 소스인 간장과 기호식품 커피는 완전히 다르기에 샘표 커피는 그 이미지가 희석되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생수도 마찬가지다. 위처럼 차별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무리하게 차별화를 꾀하면 샘표처럼 실패한다. 따라서 생수 시장에서 많은 기업들은 에비앙처럼 수원지로 차별활를 꾀했다. 결국엔 거의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황에서 차별화 가능한 건 가격뿐이다. 즉, 가격경쟁의 치킨게임이 시작된 셈이다. 심지어 미국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 기사에서 말하는 프리미엄 생수들이 정말 '프리미엄 생수' 일까?
베이비붐 세대에서 밀레니얼로 주 소비층의 변화와 유사 브랜드 포지셔닝의 난립으로, 블루 워의 시대에 에비앙이 내놓은 캠페인 'IWAANA'는 어떻게 전개될까? 우선 이번 캠페인에서 에비앙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알아보자.
에비앙은 이번 'I WANNA' 캠페인에서 순수한 열정을 전달하려고 한다. 직장에선 직장인, 가정에선 부모 등 밀레니얼은 맺고 있는 인간관계 수만큼이나 여러 역할을 갖고 있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모델, 샤라포바도 테니스 선수, 사업가 등 여러 가지 역할을 갖고 있다. 즉, 에비앙의 이번 캠페인 메시지는 다양한 역할에 열정을 갖고 열심히 수행할 수 있게 돕는 순수한 물이라는 메시지이다. 또한 기존 캠페인이자 브랜드 메시지인 "live young" 은 그대로 가져간다고 한다. 에비앙의 브랜드 오리지날리티는 유지하되, 소비자/트렌드에 맞춰 브랜딩을 시도하는 걸로 풀이된다. 글 처음에서 말했듯, 단지 아기라는 직관적인 이미지만 사라졌을 뿐이다.
live 'young'이었다면 이젠 'live' young이다
이번 캠페인은 이브 폴이 제시한 욕구 5단계 재구성 가운데 '삶의 의미'를 충족시키기 위한 캠페인이다. '삶의 의미'는 밀레니얼들의 욕구 가운데 최상위의 욕구다. 이미 물이 아닌 약으로 시작됐다는 스토리 마케팅과 알프스 빙하 수라는 특성은 1 욕구인 '안전과 제어'를 충족시켜준다. '사랑과 소속감'이라는 욕구는 그간 직관적인 이미지의 베이비 마케팅으로 쌓아온 프리미엄 생수 브랜드로 이미지로 충족시켜준다. 따라서 감각적인 오감을 의 경험 이번 캠페인에서 진행되리라 보인다. 앞으로 어떤 경험을 에비앙이 제시할지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