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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찰언니 Jan 15. 2016

화상과 성폭력의 치명적인 유사점들

정말.. 순식간이었다.

옆을 보고 대화하는 사이에 8개월 아기가 뜨거운 죽그릇을 잡아 당겨 쏟아버린 것을 보는 순간 화상을 입었구나 하는 생각에 앞뒤 볼 것 없이 동치미 국물에 손을 담궈버렸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소아과로 그리고 외과로 거기에서 다시 중급병원 응급실로 갔다. 식염수로 손의 열을 빼는 사이 손의 겉껍질이 벗겨져 빨간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손가락 전체에 습윤드레싱 테이프를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신다. 울다 지친 아기는 잠이 들었다.

이제 시작이구나. 이 녀석의 손에 흉터를 안남게 하려면 열심히 소독하고 드레싱해주고 물이나 오염물질이 안들어가게 신경써야 할 것이다.


아기가 자는 동안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화상전문병원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전국이 손꼽힐 정도로 숫자가 몇개 안되는 화상만을 제대로 다뤄주는 병원이다. 똑같은 약을 써도 뭔가 다른 느낌이라는 평가가 있다. 여기구나!!


 하루가 지났지만 아기를 들춰업고 서울로 갔다. 손을 보더니 이틀에 한번 오라고 하며 손가락 하나하나 드레싱을 해주기 시작한다. 크림을 덕지덕지 발라 주먹쥔채로 붕대를 감아버려 문어 머리를 만들어버린 일반외과와는 다르다. 손가락을 쫙 편 상태로 붕대감는것까지 완성된 걸 보니 펼쳐 말린 오징어 머리처럼 손바닥 모양이 납작하다. 왠지 금방 나을 것 같은 기분이다. '역시 전문 병원이야'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


생각해보니 화상은 우리주변에서 쉽게 겪는 상처중 하나다. 그러나 상처가 잘 아물지 않고 크던 작던 꼭 흉터를 남긴다. 거기다가 전국에 몇 안되는 전문병원에 가기까지 시행착오를 거치기까지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왠지 성폭력과 화상이 비슷한 느낌이다.


둘다 깊은 흉터를 남긴다. 보기 싫어도 그 흉터를 볼 때마다 잊고깊은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이식수술을 하고 성형수술을 해도 새로운 종류의 흉터가 남을 뿐이다. 지우려고 애쓸 수록 더 눈덩이처럼 다가온다.


초동조치가 쉽다. 그러나 처음 겪는 그  순간에 적절히 초동조치 하는 것은 처음 겪는 사람들에겐 생각보다 어렵다. 어렵다기 보다는 당황한 나머지 무엇을 해야할지 잊어버리는게 사실인 듯하다. 화상의 기본은 흐르는 찬물에 다친 부위를 대고 화기가 빠질때까지 30여분동안 찬물샤워를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당황스러운 나머지 얼음을 갖다 대거나 된장을 바르거나 하는 민간요법을 쓰게 된다. 그러면 상처가 오염되어 흉터가 커지거나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성폭력의 경우도 경찰에 신고를 하려면 증거 확보를 위해 목욕을 하지 말고 속옷도 갈아입지 말고 바로 오시라고 안내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2-3일 지나서 마음이 좀 진정된 후에 이성적으로 판단이 될 때쯤 찾아와 신고를 한다. 그때쯤엔 증거물은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수사기간과 재판기간동안 말로만 치열한 공방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더 상처받게 되는건 피해자다. 초동조치를 잘 하지 못해 불필요한 상처를 더 얻게 되는것이다.


큰 이익이 나지 않아 전국에 몇 안되는 화상전문병원.. 그러나 정작 처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숙련된 전문분야 의료인들이 가까이에 없다는게 아쉽기만 하다. 화상과 일반 상처가 다른것처럼 화상에 맞는 치료를 할때 빨리 낫고 덧나지 않을 수 있다.

 원스톱지원센터, 성폭력과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전문가들이 모여 의료,법률,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증거채취와 진술녹화등이 가능하여 수사기관에 별도로 방문하지 않고도 조사와 치료 그리고 상담까지 가능하다.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유사한 사례 경험을 통해 아픈 피해자에게 2차 3차의 상처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곳이다.


주의하고 조심하는게 첫번째 방책이고,

어쩔 수 없이 발생했다면 더  깊은 상처가 되고 흉터가 남는걸 방지하는게 차선의 방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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