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도현이
도현이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줄곧 걔에 대한 글을 쓸 기회를 노리다가 걔가 인화해준 내 사진을 보고 이 글을 쓴다. 도현이는 작년 여름에 새로 사귄 친구다. 성은 배 씨고, 나보다 2살 많고, 목소리가 크다. 목소리가 크다는 특징은 내 생각이 아니라 아마 사실일 것이다. 걔랑 음식점이나 카페에 갔을 때 종종 가게 주인에게 혼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걔랑 말하기 시작하면 자꾸만 옆자리 눈치를 본다. 인간의 시야 범위가 160도나 되는 덕에 도현이의 웃는 얼굴에 집중하면서도 다른 손님들이 화들짝 놀라며 쳐다보는 것을 느낀다. 물론 나에게는 그저 발랄하고 듣기 좋은 웃음소리다.
걔를 처음 본 날을 기억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모인 사람들이었다. 저 마다 비슷하고도 다른 이유들로 모인 40명의 사람들 중에 우리는 같은 조가 되었다. 나는 처음 도현이를 만난 순간 좋은 느낌이 들기보다 사실 경계심을 느꼈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책상을 옮겨야 했는데 걔가 옮기는 시늉만 했기 때문이다. 살짝 잘생긴 척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왜 책상을 옮기는 척만 했냐고 요즘에도 따져 묻는데 그 이야기는 할 때마다 웃긴 그 애의 첫인상이다. 내가 완전히 걔를 오해했기 때문에 더욱 우습다.
“허어어어!”, “맞아 맞아”, “진짜…” “내 말이!” 류의 말들이 도현이가 하는 말의 7할쯤 되는 것 같다. 어쩔 때는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맞다고 한다.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맞장구를 치는지 모르겠지만 걔의 맹목적인 비호가 너무도 말할 맛을 나게 해서 나도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가끔 걔의 편애가 너무 웃기고 어이가 없어서 걔의 공감 폭격에 반기를 드는데 “작위적인 놈! 억지스러워!” 라거나 “진짜 공감될 때만 말해!”라는 말을 한다. 그때마다 도현이는 크게 웃는다. 니 공감은 진짜 공감이 아니라고 공격하는 말에 또다시 공감을 해주는 사람. 이렇게 내편만 들어주는 리액션을 본 적이 있나 싶다.
배도현의 취향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도현이는 본인의 취향이 아주 별나기를 갈망하고 어떤 면에서는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도현이에게) 유감스럽게도 나는 걔를 매우 경솔하지만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걔가 한창 폴라로이드에 빠졌을 때는 SX-70이라는 아주 불편하게 생겼고 필름도 단종되어 한 장에 4000원씩이나 하는 카메라를 샀다. 이걸 왜 샀냐는 물음에 그 카메라를 만든 회사의 직원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너 이거 곧 되팔 것 같다고 예측했고 대대로 물려줄 거라 단언하더니 얼마 안가 그것을 팔았다. 그걸 판 돈으로는 롤라이 필름 카메라를 샀다. 그냥 필름 카메라 말고 <롤라이> 필름 카메라. 그리고 그 롤라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반드시 망우삼림이라는 현상소에서 뽑는다. 을지로에 위치한 철학 있는 현상소다. 백팩 하나를 사더라도 그 백팩을 만든 사람이 어느 고장의 장인이라는 각주를 달아 자랑한다.
도현이식 취향의 정점을 찍은 사건은 최근 도현이의 포르투갈행이었다. 20대 초반을 대의에 불타 제 한 몸을 불사 지른 도현이는 이제 그런 일 말고 에그타르트를 먹고 싶다고 했다. 왜 하필 꽂힌 것이 에그타르트인지 (약간) 안타깝지만 에그타르트 이야기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포르투갈로 떠났다. 포르투갈이 에그타르트의 본고장이므로 그냥 갔다. 그리고 떠난 지 6주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도현이가 떠난 순간부터 걔를 예측하며 많은 걱정을 했다. 매우 외롭고 탈이 많을 것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걔가 혹시 무리하며 괜찮은 척을 하거나 본인의 결정을 무르는 것을 주저할까 봐 자주 말했다. “너 혹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들면 꼭 말해! 10년 치 놀림감이긴 하지만 안 놀릴게! 꼭 말해!” 나의 말이 효력이 있었다기보다 도현이가 내 예측보다 더 용감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도현이는 정말 주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나... 돌아가려고…’ 하는 도현이의 말을 전화기 너머로 듣자마자 엄청나게 깔깔대며 빵 터졌지만 사실은 도현이의 고백이 너무도 반가워서 웃음이 나왔다. 너의 복귀가 좌절 비스무리한 심각한 일이 결단코 아니라는 것을 내 웃음으로 증명하고 수호해주고 싶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도현이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오버하면서 내 말을 듣고, 또 약간 현실성이 떨어지는 걔 취향의 다음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금은 이 글을 어서 올리기를, 당장 공유하고 난리 칠 거라면서 또 과장되게 기대해주고 있다. 과장. 도현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이다. 도현이식 과장이 전혀 비호감적이지 않은 것은 그의 과장 속에 왜곡되지 않은 진실과 다정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과장이 매우 달콤하고 오래 듣고 싶은 것이어서 괜히 그를 비난하며 계속 말을 건다. 그런 내 친구를 너무 자랑하고 싶어서 이 글도 걔에 대해 과장되게 좋게 쓴다. 걔만큼 능숙하게 과장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