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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만 Feb 05. 2022

질병과 함께 춤을

오늘도 책을 읽었습니다



질병과 함께 춤을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마침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목이 아프고 팔과 손끝이 저려서 정형외과에 갔다. 그렇게 나는 목과 어깨에 주사 세방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목 보호대를 착용했다. ‘대체 올해 얼마나 좋으려고 이러나!!!’라고 생각하며 이건 액땜이고, 더 크게 다치기 전에 병원에 온 나는 운이 참 좋다고 일부러 생각했다.


나는 아플 때마다 자책감이라는 감정을 자주 갖곤 했다. 나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허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플 때도 ‘이정도면 아픈건가’라는 생각으로 미루다가 항상 끝을 봤던 것 같다. 언제부터, 왜 이래왔던 걸까.


‘질병과 함께 살아가지 않는 건강한 사람’이 되길 우리 모두 원하지만 사실 모두가 안다. 불가능하다는 걸 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누구에게든, 어느순간 질병은 찾아온다. 나이 듦 때문 일 수도 있겠고, 직장과 집에서 바쁘게 노동하며 쉼과 운동 역시 테트리스처럼 시간을 쪼개어 자기개발 마냥 이뤄내야 하는 현실 덕분이기도 하다.


[아프면 낙오되어야 할까, 그러면 될까?]라는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하고 싶지 않고, 이 답만을 강요하는 사회가 아니길 바란다. 엮은이의 말처럼 ‘더 이상 아픈 것 때문에 또 다른 아픔을 얻지 않기를’ 바랄 수 있었으면 한다. 아픈 몸이어도 그 나름대로의 일상을 잘 영위할 수 있도록 아파도 괜찮은 사회이길 바란다. 아프다고 삶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p.40

2013년 1월, 난소의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집도할 의사의 설명을 듣는 자리에 아빠가 같이 있었다. 아빠가 “수술해도 아이 낳을 수 있지요?”라고 물었다. 순간 뒷목이 빳빳해지면서 가슴 속이 싸늘해졌다.


p.62

우리 사회는 아프면 관리를 잘하지 못했다고 개인을 탓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렇게 만들어진 믿음이 아픈 사람에게 어떤 폭력을 가하는지 알면서도 이를 버리지 못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이나 나 자신에게는 더욱더 이런 믿음을 강요하기도 한다.


p.172

의료 기기는 ‘정상’이라 말하는 몸에 맞춰진 검사 기구다. 나처럼 몸이 많이 틀어지고 휘고 구축된 사람들에겐 소용없을 때가 있다. … 질병에 맞는 적절한 의료 치료는 몸의 형태와 상관이 있다. 일반적으로 ‘정상’이라 말하는 몸과는 ‘다른 몸’은 어떻게 검사해서 진료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의료검사기로 진단을 받을 수 없어서 어려움을 겪을테니 말이다.


p.219

조한진희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 따르면, 성폭력과 데이트 폭력 피해 경험과 질병의 인과관계에 대해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 경험을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인식하고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가 피해자들로 하여금 그 경험과 함께 살아가기 어렵게 만든다.” 나의 경우도 그러했다. 일부는 자신을 비관하거나 탓하면서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자신에 대한 비난을 내면화하듯, 자기를 공격하는 과정은 면역 질환의 증상과 닮았다.


p.241

면역질환이 여성들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여성이 겪는 차별이나 폭력 등의 경험을 중심으로 재해석해볼 필요가 있다. 의사들은 여성 면역질환자들에게 “예민한 사람들에게 발병하는 경우가 많아요”, “스트레스를 받지 마세요”라고 손쉽게 이야기한다.


p.271

우리 모두는 아픈 몸이거나 아플 몸이다. 사회는 약자를 기준으로 설계할 때, 모두에게 좋은 사회가 된다. 잘 아플 수 있는 사회에서는 아픈 몸이 기본 몸이 되고, n개의 표준의 몸이 존재하며, 누구나 서로를 돌보는 것이 책임이자 즐거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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