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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오십 홀로서기 Mar 22. 2020

자취생의 소소한 하루 밥상

자취생 요리 라이프


자취를 시작한 지 1년 하고도 2개월이 더 지나가고 있다.

타향살이를 혼자 시작하면서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이었다. 부모님의 그늘 안에서는 항상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것이 존재했고, 내가 메뉴를 고민하지 않아도 챙겨주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내 끼니를 챙길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냉장고는 텅텅 비어 있었고 뭘 먹어야 하나가 항상 고민이었다.


이십 년이 넘도록 나는 아침을 걸러본 적이 없었다. '아침은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우리 집의 문화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 새벽같이 등교하는 날에도, 아무리 바쁜 아침에도 나의 아침을 챙겨주시는 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취를 하면서 이십 년 넘게 몸에 배어있던 식습관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 내렸다. 아침을 챙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바쁜 아침 출근길에 아침이 웬 말인가, 그나마 그 와중에, 옷을 챙겨 입고 나가는 내가 대견스럽기까지 한 상황에서 아침을 먹는 것은 엄청난 사치이자 노력이 필요했다. 


자연스레 점심시간까지 난 공복을 유지했다. 13시부터 점심시간이었던 회사였는데, 내 하루 첫끼는 늘 13시였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지옥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런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밥을 챙겨 먹을 생각조차 하는 게 버거웠고, 먹는 행위 자체가 그저 피곤하게 느껴졌다. 편의점에서 때우거나, 간단한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웠다. 먹는다기 보단 때우기 바빴고, 먹는 즐거움을 잃어갔다. 그렇게 난 자연스레 간헐적 다이어트를 실현하고 있었다.


살은 참 볼품없게 빠져갔다. 주말에 본가에 가면 가족들이 항상 걱정 어린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끼니를 챙겨 먹을 여유가 그때는 없었다. 그러다 몸이 점점 약해지고 있음이 느껴졌고 결국, 심한 스트레스와 좋지 않은 생활습관의 연속으로 크게 몸이 아팠다. 


그렇게 크게 아프고 나서 난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했다. (다른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크게 아프고 나니 건강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아도 내가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의미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계기였다.


더 이상 나를 방치하지 않기 위해 퇴사를 하고 난 후 많아진 시간을 이용해 조금씩 요리를 시작했다. 한동안은 배달음식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기도 했고 메뉴를 아무리 바꿔도 바깥 음식 맛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 올라오는 자취생 간편 요리를 따라 했다. 먼지만 쌓여있던 인덕션에 기름이 묻기 시작했고, 프라이팬에 흠집이 났고, 그릇에는 생활 기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스팸 덮밥, 된장찌개, 스파게티 등등 내가 살면서 요리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 했는데 내가 한 요리가 생각보다 맛있음을 느끼면서 난 요리를 점차 즐기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떠 '오늘은 뭘 해먹을까?'나의 첫 고민이다. 이런 사소한 고민들이 주는 행복감이 있다. 무사히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날 위해 요리를 할 여유가 있다는 것. 자취생활 요리를 시작하면서 난 하루의 소소한 행복들을 찾아갔다.


아직은 레시피를 보지 않고는 요리를 할 수 없다. 뭐든 조금씩 천천히 발전해 나가겠지. 먹고 싶은 요리의 레시피를 찾아보고 필요한 재료를 구매하고 레시피를 따라 만들고 보고 먹으면서 타향살이의 하루를 풍족하게 꾸며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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