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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오십 홀로서기 Jun 24. 2020

자취생의 로망-집꾸미기

자취방 꾸미기 

나는 자취에 대한 로망이 강했다.

자취를 하게 된다면 '이렇게 꾸며야지, 이렇게 생활해야지'라는 나만의 로망이 가득했다. sns에 올라오는 집 꾸미기 사진들을 보면서 나만 보기로 공유를 해놓고 저렴하게 인테리어 소품을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들을 즐겨찾기에 추가해 놓았다. 특히, 라탄이나 우드로 따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고 이렇게 꾸며야지 라며 다짐하고 다짐했다. '원룸이더라도 공간은 꾸미기 나름이니까 난 잘할 수 있을 거야!, 난 절대 게을러지지 않고 나만의 공간을 이쁘게 만들어야지!' 라며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이상과 다른 법. 

자취를 시작하고 1년 6개월이 되는 이 시간 동안 난 의도치 않게 미니멀 라이프를 시현하고 있다. 생각보다 짐 정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처음 자취를 시작한 한 달 동안은 본가에서 서울로 짐을 옮기는 데에 시간을 섰다. 이제 집 좀 꾸며볼까 했더니 회사일이 너무 바빠졌고 혼자 밥을 챙겨 먹는 거에도 버거웠던 나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집 꾸미기 사진들이나 사이트들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허물을 벗고 밥을 먹고 몸에 쌓인 먼지를 씻어내고 잠자리에 들기 급급했다.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에 도망칠 수 있는 본가로 달려가 침대에 붙어 잠만 잤다. 그렇게 한두 달씩 흘러갔고 집 꾸미기는 나와 멀어져 갔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돌아봤다. 

내가 생각했던 예쁜 라탄 수납장도 거울도, 1인용 소파도, 호텔식 뚱뚱한 이불도, 자수가 수놓아져 있는 커튼도, 나무 소재의 테이블과 의자도,  은은한 스탠드 조명도 인테리어 소품이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허한 공간에 프레임 없는 침대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그 위에 이불이 어지럽혀져 있으며, 옷걸이인지 의자인지 의심스러운 의자 하나와 밥 먹을 수 있는 식탁 하나, 화장대 겸용으로 쓰고 있고 책상 하나, 전자레인지 위에 쌓은 영수증과 머리끈 등 잡동사니, 구석에 쌓인 먼지와 머리카락, 조명이라곤 천장 전등이 다인 공간. 그 외 세탁기, 화장실, 텔레비전, 와이파이 공유기, 리모컨, 에어컨, 인덕션, 신발장, 옷장 등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딱 있는. 그 이상 군더더기 없는 그런 곳. 


괜스레 눈물이 났다. 나 말고는 어떤 생명도 없는 이 공간이 너무 삭막하고 생기 없어 보였다. 이런 공간에 내가 있다니,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다니. 밖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가 더 나를 고립시키는 기분이었다. 사는 게 바빠 정작 내 공간을, 나를 전혀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울었다. 외로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난 이 곳을 사랑한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타향살이에 유일하게 내가 맘 편히 울 수 있는 공간이다. 결코 편할 수 없었던 바깥 생활에 유일하게 허물을 벗고 편히 있을 수 있던 곳이었다. 소리 내 크게 울 수 있었고, 전화할 수 있었고, 편한 옷을 입고 돌아다닐 수 있었고, 정리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공간.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반겨주는 이 한 명 없이 침묵만 있었지만 나만이 들어갈 수 있고 오로지 나만이 있을 수 있는 곳. 나를 맘 편히 받아주는 곳. 돌아올 수 있는 곳. 돌아갈 곳. 


예쁜 인테리어 소품 하나 없어도 난 내 공간이 좋다. 엉망진창인 나를 그대로 받아주는 곳.

창문에 들어오는 햇살이 장점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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