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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May 11. 2023

아침을 책임지는 냉장고 필수품

숲 속의 버터 아보카도

빵, 달걀, 그리고 아보카도는 내 아침을 여는 삼위일체였다. 특히 별다른 조리가 필요 없는 아보카도는 빈속으로 나가는 내 발걸음을 몇 번이고 붙잡아 주었다. 공룡알 같은 껍질에 칼을 꽂고 가운데 씨를 따라 돌린다. 양손으로 틀었을 때 저항 없이 회전하는 손맛이 일품이다. 멍든 부분이 있을까, 없을까. 그날의 운세를 확인하듯 조심스레 쪼개어본다. 깔끔하게 잘린 단면이 주는 쾌감. 껍질을 벗겼을 때 떨어지는 과육 없이 매끈한 표면을 띄면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빵이 토스트 되는 동안 잘 익은 아보카도 과육을 숟가락으로 퍼내어 그릇에 담는다. 마늘 반 알을 잘게 다져 넣는다. 레몬을 손바닥으로 굴리고 즙을 짠다. 포크의 등으로 마구마구 으깨준다. 그릇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으깨다 보면 먹음직스러운 녹색의 페이스트가 완성된다. 노릇노릇한 토스트를 접시에 놓고 으깬 아보카도를 골고루 펴 올린다. 손가락 끝으로 눈송이 모양의 바다소금을 부숴가며 솔솔, 끝으로 고춧가루를 한 꼬집 뿌리면 '아보카도 토스트'가 만들어진다.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면 점심때까지 든든하다. 


아침으로 요거트를 먹는 요즘도 아보카도 토스트는 단골 점심식사다. 달걀노른자가 살아있는 써니-사이드-업(sunny-side-up) 프라이를 한 장 부쳐 올린다. 달걀노른자와 아보카도의 조합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 포크를 토스트까지 푹 찍어 한 조각 썰어먹으면 입 안에서 고소함, 상큼함, 크리미함, 짭조름함, 아삭함이 한데 어우러진다. 아보카도를 다룰 땐 조미를 간단하게 한다.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과 버터 같은 풍부함, 달달한 끝맛을 살리기 위해서다.



아보카도 토스트




















아보카도 하면 호주 셰프 빌 그랜져 Bill Granger가 떠오른다. 그는 아보카도 토스트를 처음 선보여 '아침 식사의 왕'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1993년 호주 시드니에 문을 연 그의 레스토랑 빌즈 bills는 서울에도 두 곳의 지점이 있다. 두 해 전 런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겸손하게 말했다. "지금은 무척 유명한 음식이 되었지만 사실 아보카도 토스트는 무척 간단한 음식입니다. 분명 누군가가 먼저 시도했을 거예요. (웃음)" 사실 옥수수칩을 찍어 먹는 멕시코의 과카몰레(guacamole)와 큰 차이가 없지만, 토스트에 올려 하나의 식사로 격상시킨 덕분에 세계적으로 아침식사와 브런치의 대명사가 됐다. 그의 요리책 <호주 음식 Australian Food>을 봐도 단일 식재료 중 아보카도를 이용한 레시피가 가장 많다. 


아보카도는 밥이랑도 잘 어울린다. 생 아보카도를 고추냉이, 간장과 곁들여 먹으면 밥 한 그릇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뉴욕에 살던 일본 친구 스구루가 '아보카도 스시'라고 부르던 반찬이다. 이 조합을 조물조물 버무려 넣은 삼각김밥은 손쉬운 도시락이자 간식이 된다. 얇게 썬 아보카도와 두부를 겹쳐 놓고 다진 마늘, 간장, 참기름, 참깨 등을 섞은 양념장이나 유자가 들어간 일본식 초간장 폰즈(ポン酢)를 끼얹어 먹는 것도 좋아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아보카도, 명란, 참기름 몇 방울을 넣고 비벼 먹는 맛도 일품이다. 



아보카도와 두부 샐러드




















날로만 먹던 아보카도를 조리하면 어떤 맛일까, 문득 궁금해진 날이 있다. 쉽게 으깨져 볶음 요리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반을 갈라 씨앗 주위를 넉넉하게 파 내어 공간을 만든 뒤, 조심스럽게 달걀을 깨 넣으니 크기가 딱 맞았다. 소금 간을 하고, 기울어져 달걀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라메킨에 올려 고정한 뒤 200도로 예열된 오븐에 넣었다. 15분 정도 지나니 달걀과 아보카도가 알맞게 익었다. 기대 이상의 맛이었다. 특유의 버터리함이 한층 풍성해졌다. 역시 달걀과 아보카도의 조합은 완벽해.



오븐에 구운 아보카도와 달걀




















칼로리가 높아 자주 먹기 망설여지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꽤 건강한 음식이다. 노폐물 배출을 돕고 신경기능을 조절하는 칼륨,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을 낮추는 불포화지방, 포만감을 주는 식이섬유, 뇌 기능에 긍정적 역할을 하는 엽산이 풍부하다*. 의외로 내장 지방을 감소시키는 효과기 있다는 기사도 여럿 눈에 띈다.  


아보카도의 익은 정도는 단단함과 색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덜 숙성된 것은 확실한 단단함이 느껴진다. 껍질의 색도 선명한 초록색을 띤다. 상온에 보관하고, 빨리 숙성시키고 싶으면 사과나 바나나 등을 함께 놓는다. 잘 익은 아보카도는 눌렀을 때 부드럽다. 바로 먹지 않을 거라면 냉장고에 하루 이틀 보관이 가능하다. 너무 익은 것은 껍질에서 특유의 윤기가 사라지고 검은색이 된다. 아보카도의 꼭지도 숙성도의 가늠자가 된다. 초록빛을 띈 꼭지는 덜 숙성된 것을 가리킨다. 꼭지 근처에 곰팡이가 펴 있다면 사망 판정이다. 아차 하는 사이에 완숙에서 과숙으로 넘어가 버리니, 조금 덜 숙성된 것을 구입해 상온에서 며칠 익혀 먹는 것이 마음 편하다. 



이리도 먹고 저리도 먹는 아보카도 활용 내맘대로 요리들

*이미나, "아보카도, 지방 덩어리인 줄 알았는데… 반전 효능", 한경 라이프, 202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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