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오 May 18. 2023

아침 뭐 드세요?

한국 식문화를 접한 타 문화권의 사람들이 놀라는 점이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식탁 구성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 밥과 국, 메인 반찬, 각종 사이드 반찬으로 수놓아진 식탁에 앉고 아연실색한 얼굴을 여럿 봤다. 촌스러운 질문도 해댄다. "아침부터 밥(rice)을 먹어?"


든든한 밥심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네 철학과 달리 단출한 아침식사를 즐기는 나라들이 많다. 귀리와 우유, 꿀 등을 넣고 만든 죽 포리지(porridge), 프렌치토스트, 오믈렛 등. 간단한 요리들로 보통 아침에만 먹는다. 압도적인 구성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는 예외지만. 세계의 많은 식문화, 특히 서구권에서 달걀은 아침을 상징하는 식재료다. 단백질과 지방을 골고루 포함하고 포만감도 높아 아침식사의 주역이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스크램블 에그다.



런던을 대표하는 레스토랑 중 하나인 더 울슬리 The Worseley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보통 훨씬 양이 많고 기름진데 정제된 버전을 선보인다. (이미지 출처: Pl



아침 식사 하면 즉각 머리에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주방에서 접시에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컨, 케첩을 담고 계신 어머니. 사람을 미치게 하는 베이컨 냄새. 파블로프의 개처럼 흐르는 침. 한동안 고기를 먹지 않으며 자연스레 베이컨은 탈락됐지만, 스크램블 에그는 여전히 아침 식사의 대명사다. 호텔 조식에 스크램블 에그가 없으면 허탈할 정도다.


스크램블 에그의 매력은 간결함이다. 고소하면서 풍성하다. 달걀 특유의 풍미를 잘 간직하고 있다. 튀지 않는 맛으로 접시 위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튀르키예에선 토마토와 양파 등을 넣은 스크램블 에그인 메네멘(menemen)을 아침식사로 즐긴다. 나도 간혹 시금치를 넣는다. 미리 버터에 볶아 숨을 죽이고 물기를 뺀 시금치를 더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귀찮아 그냥 넣는다.  


가장 선호하는 짝꿍은 베이크드 빈(baked beans)이다. 하인즈 Heinz 브랜드의 통조림으로 친숙한 음식. 구운 콩이라는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토마토소스 등에 뭉근하게 끓인 음식이다. 시큼한 사워도우(sourdough) 빵을 슬라이스 하고 그 위에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크드빈을 올린다. 소스가 스며든 빵의 속살이 달걀과 콩의 부드러운 식감에 보조를 맞춘다. 여기에 타바스코 소스와 숙성된 영국 체다 치즈를 강판에 갈아 뿌리면 고소함, 산미, 매콤함과 감칠맛이 폭발한다. 쪽파라도 송송 썰어 올리면 아삭한 상큼함까지 더해진다. 하나 더 만들어 먹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부드럽고 촉촉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달걀과 버터만 있으면 된다. 식용유를 쓰면 보풀이 일고 푸석푸석한 스크램블 에그가 되기 십상이다. 달걀이 익으며 흰자의 단백질들이 촘촘한 결합을 이루고, 단단하고 고무 같은 식감을 만들기 때문. 버터의 지방은 단백질을 감싸 결합을 억제한다. 부드럽고 크리미 한 텍스쳐의 비결이다. 달걀 프라이를 부칠 때도 버터를 이용하면 잘 안 눌어붙는다.


달걀 두세 개를 그릇에 푼다. 흰자와 노른자가 잘 섞이는 것이 중요하다. 팬을 달구고 버터를 녹인다. 팬에 얇게 두르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달걀 두세 개 당 15-30g 정도의 버터가 들어가야 맛있고 촉촉해진다. 따로 녹여서 섞을 필요 없이 바로 팬에서 녹인다. 약불에서 서서히 녹이는 쪽이 좋다. 버터가 다 녹으면 달걀물을 붓는다.



버터 20g. 옆에는 티스푼.



스크램블 에그에 정석은 없다. 약간의 물이나 우유, 크림을 넣는 사람도 있다. 우유를 넣으면 식감에 오히려 방해가 되고 원하지 않는 맛이 난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달걀과 버터만으로 만든다. 익힐 때 센 불을 피한다. 천천히 익히는 쪽이 훨씬 맛있는 스크램블 에그가 된다.


댤걀이 익어가는 동안 계속 휘저어주는 게 포인트인데, 원하는 식감에 따라 방법이 조금 다르다. 자주 빠르게 저어주면 보다 고운 스크램블 에그가 되고, 적당히 덩어리 진 것을 원하면 그 빈도와 속도를 낮춘다. 고든 램지가 한 인터뷰에 출연해 스크램블 에그를 맹렬히 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 번 시도해 봤는데 귀찮아서 포기했다. 아침과는 안 어울린다.



거품기나 스패출라가 없으면 젓가락



소소한 두 가지 팁. 소금은 달걀물에 넣는 대신 거의 다 된 스크램블 에그에 직접 뿌리는 것이 낫다. 소금의 작용으로 달걀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완성되기 전에 불에서 내리는 편이 좋다. 팬에 남은 열기가 달걀을 계속해서 익히기 때문. 조금 일찍 불을 끄고 계속 저어주며 완성하면 접시에 담을 때 최적의 타이밍이 된다.   






여담이지만, 스크램블 에그는 달걀의 충격적인 생명력을 떠올린다. 출근하고 없는 친구의 집에서 눈을 뜬 아침. 무시무시한 숙취가 전신을 짓눌렀다. 힘겹게 냉장고를 열었더니 우유, 달걀, 버터, 그리고 몇 가지 소스가 전부였다. 스크램블 에그나 해 먹자. 달걀을 꺼내려는데 두 판이 쌓여 있었다. 밑쪽에 있는 달걀이 오래된 거겠군, 배려심에 그걸 꺼내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어 먹었다. 까맣게 잊고 지내다 몇 달이 지난 후 뜬금없는 질문. "혹시 예전 내 신촌 아파트에서 냉장고의 달걀 꺼내 먹은 적 있어?"

그렇다고 하니 묘한 표정을 짓는다. 웃음을 참지 못하는 그를 추궁했다. "사실 그 달걀, 당시 반년도 더 된 거였어." 귀찮아서 내다 버리지 않고 새 달걀을 사다 먹고 있었는데, 내가 오래된 달걀을 먹은 걸 알고 깜짝 놀랐다는 고백. 말을 못 하고 내 상태를 살폈지만 아무 이상 없어 자신도 잊어버렸다고 했다. "내가 달걀 먹은 건 어떻게 알았어?" "쓰레기통 비우는데 달걀 껍데기가 보이더라고. 냉장고를 봤더니 새 건 그대로더라." 아무리 냉장보관이라 해도 반년을 넘은 달걀. 먹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상했으면 대번에 알아차렸을 텐데. 여전히 미스터리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을 책임지는 냉장고 필수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