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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Jun 04. 2023

이 봄의 끝을 잡고

제철 아스파라거스 다양하게 즐기기

달력상 새해는 겨울의 한복판. 봄의 문턱에 들어서야 비로소 해가 바뀐 것 같다. 묵은 봄 옷을 꺼내듯 상점의 가판대도 분주해진다. 서울이었으면 냉이나 봄동, 두릅, 돌나물 같은 향긋한 봄나물을 즐기겠지. 런던에서 봄을 알리는 식재료는 조금 다르다. 그중 아스파라거스를 빼놓을 수 없지.   


해리포터의 마법봉 같은 길쭉한 채소. 죽순을 연상시키는 끄트머리. 사실 아스파라거스는 영국의 슈퍼마켓에서 연중 내내 찾아볼 있다. 남미에서 안정적으로 수입되기 때문이다. 5월이 되면 영국산 아스파라거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같은 식재료라도 제철을 맞은 것은 맛에서 차이가 있다. 영양소도 정점을 찍는다. 기간 한정이 주는 즐거움도 크다. 제철의 아스파라거스는 특유의 향긋함이 도드라진다. 시즌이 유독 짧은 점이 아쉽다. 5월에 시작해 6월 21일이면 전국적으로 수확을 중단한다. 그래서인지 5월이 되면 런던의 레스토랑들은 앞다투어 아스파라거스를 곁든 메뉴를 선보인다. 





아스파라거스 하면 보통 초록색을 떠올리지만 두 가지가 더 있다. 보라색과 하얀색이다. 보라색 아스파라거스는 특정 품종에서 나온다. 당분 함량이 다른 종류보다 높아 은은한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 초록색과 하얀색은 재배 방식의 차이에서 갈린다. 하얀 아스파라거스는 성장기간 동안 햇빛을 완전히 차단한다. 광합성을 통해 엽록소가 생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보다 섬세한 맛과 기분 좋은 쓴맛을 띄어 별미로 여겨진다.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아스파라거스를 생산하는 곳은 와이 밸리 Wye Valley다. 잉글랜드 서부의 시골 마을로 남쪽을 바라보는 경사진 구릉들과 높은 일조량, 모래질의 토양이 최적의 봄철 아스파라거스를 만들어낸다.  



색색의 아스파라거스 (이미지 크레디트: Rachael Nusbaum)



아스파라거스는 조리가 무척 간단하다. 그릴에 직화로 굽거나 올리브 오일, 버터를 두른 팬에 살살 돌려가며 익히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단순하지만 아스파라거스의 고소한 풍미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소금만 쳐도 맛있다. 노른자가 살아있는 수란을 곁들면 풍부함과 싱그러움이 어우러진다. 달걀노른자와 식초로 만든 홀렌데이즈(hollandaise) 소스를 뿌리면 고소함이 은은한 산미가 일품이다. 가자미의 일종인 털보트(turbot)니 농어 등 흰살생선과도 잘 어울린다. 올리브 오일에 볶은 파프리카(red pepper)를 올리고 레몬즙을 살짝 뿌려도 맛있다. 



홀렌데이즈 소스를 곁들인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이미지 크레디트: bite of beri)



봄을 상징하는 파스타 프리마베라(primavera)의 단골 재료이기도 하다. 사실 프리마베라는 이탈리아가 아닌 70년대 뉴욕에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길고 납작한 탈리아텔레(tagliatelle) 면과 잘 어울린다. 아주 살짝 데쳐 달걀찜에 넣어도 맛있다. 포슬포슬하고 아삭한 식감의 대비가 좋다. 일본식 달걀찜 차완무시(茶碗蒸し)를 만들 땐 생으로 넣는 편이다. 조리시간이 한국의 달걀찜보다 길기 때문.   


이것저것 귀찮으면 베이컨을 돌돌 감아 오븐이나 프라이팬에 구워버린다. 베이컨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아스파라거스를 살짝 튀겨낸다. 바삭함과 아삭함, 짭조름함과 고소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차갑게 먹으면 싱그러움이 도드라진다. 살짝 데친 아스파라거스를 바로 찬물에 식힌 뒤 토막 내어 샐러드에 넣는다. 데치는 물에 소금을 넣으면 푸르름을 끌어올릴 수 있다. 



다발로 감아도 되고 따로따로 감아도 된다



아스파라거스는 단단한 것이 신선하다. 물렁물렁하고 줄기에 주름이 잡혀 있으면 별로다. 봉오리 부분이 느슨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닫혀 있는 것들이 좋다. 꽃병에 꽃을 꽂듯 물컵에 아스파라거스를 꽃아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는 것을 추천한다. 공간도 적게 차지하고 신선함이 3-4일 유지된다. 아스파라거스를 요리할 때의 팁. 미리 씻어 놓지 않고 사용하기 직전 씻는다. 미리 씻으면 물러질 수 있다. 아스파라거스의 아랫부분은 질겨서 먹기에 나쁘다. 부드러운 부분이 시작되는 곳을 꺾으면 똑하고 부러진다. 이렇게 손질해 냉장보관하면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 건조한 단면보다 물을 더 잘 흡수하기 때문이다. 굽던 찌던 데치던 너무 익히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보다 빨리 익으니 부드러워질 때까지만 요리하자. 과하게 익은 아스파라거스는 슬픈 식감을 가진다. 이쑤시개 등으로 찔러 부드럽게 들어가면 적당하다. 양 끝을 잡고 꺾었을 때 바로 팍 하고 부러지면 덜 익은 것, 아삭하면서도 부드럽게 부러지면 적당한 것, 잡았을 때 버드나무처럼 휘어지면 너무 익은 것이다.    



그릴에 굽고 파프리카와 마늘을 볶아 올렸다



영국의 6월은 쌀쌀함과 따스함이 기분 좋게 공존한다. 늦봄 다운 날씨다. 달력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겠지. 밥을 먹으면서 늘 뉴스를 보는데, 이미 많은 곳들에서 봄은 지나간 듯하다. 민소매 차림의 사람들과 '평년 최고기온 갱신' 소식들. 매년 꾸준히 접하고 있어 놀랍지는 않지만 어딘가 씁쓸하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식탁의 풍경도 변하겠지, 생각하니 하나라도 더 먹어놔야 할 것 같다. 제철의 아스파라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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