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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Jun 26. 2023

보라색 브로콜리를 아시나요

예쁘면서 맛도 좋은 브로콜리 사촌

음식을 먹어보기도 전에 메뉴를 훑다 '아, 이 레스토랑 괜찮네!'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요리의 구성요소나 사이드 디시로 퍼플 스프라우팅 브로콜리(purple sprouting broccoli)가 있을 때. 사실 제대로 추위가 가시기도 전인 2월에서 4월 사이가 제철인 식재료로, 이맘때쯤이면 슈퍼마켓의 매대를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나에겐 봄의 신호탄 같은 존재. 모두 함께 생일 주인공을 기다리던 와중에 혼자 터져버린 폭죽 마냥 이르긴 하지만. 좋아하는 이유는 물론 맛이다.



'퍼플(보라색) 스프라우팅(피어나는) 브로콜리'라는 이름은 생김새를 담고 있다. 흔히 브로콜리 하면 짜리 몽땅하고 풍성한 나무 모양의 채소가 떠오른다. 스프라우팅 브로콜리는 줄기가 얇고 길게 뻗었다. 끝 부분에 브로콜리 특유의 촘촘하고 몽글몽글한 알맹이들이 있다. 어린 꽃 부분(floret)이다. 사실 우리가 먹는 브로콜리도 이 부분이다. 일반 브로콜리에 비해 스프라우팅 브로콜리는 꽃 부분이 작고 긴 줄기가 특징이다.



퍼플 스프라우팅 브로콜리



케일과 브로콜리를 교배해 만든 텐터스템(tenderstem)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꽃 부분이 보라색인 게 다르다. 녹색이 아닌 채소는 일단 눈이 간다. 맛도 조금 다르다. 텐더스템이 고소한 쪽이라면, 퍼플 스프라우팅 브로콜리는 보다 달콤하고 입체적인 맛을 가진다. 처음 먹었을 때 깜짝 놀랐다. 이게 브로콜리 맛이라고? 줄기는 아스파라거스와 비슷한 맛과 식감이라고 표현하지만 미세한 킥이 있다. 아스파라거스처럼 완만하지 않고 기분 좋은 날카로움과 연한 단맛이 난다. 꽃 부분은 고소하고 씹히는 맛이 즐겁다.



텐터스템



퍼플 스프라우팅 브로콜리는 일반적인 녹색 브로콜리보다 쓰임새가 훨씬 다양하다. 녹색 브로콜리는 꽃 부분을 칼로 떼어내고 먹기 좋게 손질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퍼플 스프라우팅 그럴 필요가 없다. 한 입 크기로 뚝뚝 썰면 그만이다. 난 보통 줄기 끝을 다듬고 여러 갈래로 난 가지들을 칼로 분리한 다음 통째로 조리한다. 생김새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랄까. 포크와 나이프로 한 입씩 베어 먹는다.




대부분 쪄내거나 기름에 살짝 볶는다. 본연의 맛과 식감을 최대한으로 느끼기 위해서다. 아스파라거스처럼 노른자가 살아있는 달걀에 곁들어도 좋고, 볶음 요리에도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최고의 궁합은 마늘이다. 질 좋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에 편을 썬 마늘을 살짝 튀겨 향을 뽑고,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물기를 털어낸 퍼플 스프라우팅 브로콜리를 투하한다. 앞 뒤로 노릇노릇하게 익히면 정말 맛있다. 마늘의 풍미가 골고루 입혀져 소금간만 살짝 하면 다른 게 필요 없다. 파르마쟈노 치즈와도 잘 어울린다. 오일 파스타와 궁합이 잘 맞는 지점이다. 마지막에 간장을 살짝 넣고 흰쌀밥 위에 턱 올리면 초간단 반찬이 된다. 담백한 흰 살 생선의 살코기와도 잘 어울려 도미나 농어를 사다가 함께 구워 먹기도 한다. 백미는 이파리다. 먹어도 되는거야? 싶지만 식용이다. 얇은 이파리가 기름에 살짝 튀겨져 바삭해지는데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청과물 가게에서 이파리가 많이 붙은 줄기들을 고르는 이유다.





요리할 때의 팁. 일반 브로콜리 보다 훨씬 빠르게 익으므로 조리 시간에 주의한다. 너무 푹 익히면 특유의 아삭한 식감과 꽃 부분의 아름다운 보라색이 사라진다. 끓이는 것보다 찌는 것이 좋은 이유다. 고열로 빠르게 익히는 구이에 적합한 장점이기도 하다.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 꽤 오래간다. 나는 키친타월로 살짝 감싸서 용기 안의 수분을 조절한다. 보라색이 검은색으로 변하기 전에 먹어야 맛있다.

 




퍼플 스프라우팅 브로콜리를 보면 <매거진 F>의 정소정 디렉터님이 떠오른다.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신 스승이자 누나 같은 분이다. 몇 해 전 런던에 오셨을 때 어느 레스토랑에 사이드 디시로 있길래 간략한 설명을 곁들어 함께 먹었었다. 독특한 생김새와 맛에 감탄하시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한국의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나온 사이지만 그때 이후로 함께 먹은 적은 없다. 일 년 중 잠깐 만나볼 수 있는 한정판 식재료라 타이밍이 안 맞았다. 한 해의 첫 퍼플 스프라우팅 브로콜리를 사 와 요리하기 전 예쁜 뭉치를 손에 쥐고 사진을 찍어 보내는 버릇이 생겼다. 좋은 경치를 혼자 볼 때 느끼는 아쉬움과 비슷한 마음을 담아.



올해 보낸 사진. 다른 것들에 비해 짧고 풍성한 꽃다발 같다.



무더운 여름이나 혹독한 겨울이 없는 곳에서 자란다고 하는데 딱 영국의 기후다. 텐터스템 처럼 늘 있는 품목은 아니지만 제철이 되면 대형 슈퍼마켓에도 가뭄에 콩 나듯 보인다. 우리나라의 기후와 안 맞을 것 같았는데, 찾아보니 '자색 스틱 브로콜리'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것 같다. '스틱'이란 표현이 보다 직관적이라 꽤 잘 지은 이름이다. 사실 이 녀석을 꼭 넣어 만드는 나만의 요리가 있는데, 다음 기회에 다뤄 보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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