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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욱 Oct 09. 2022

[소셜섹터의 보람]#1 비행기는 날면서 만들어진다

나의 첫 프로젝트, 오픈이노베이션

    스타트업의 속도에 대해서, 한 전문가는 '스타트업의 비행기는 날면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자들의 혁신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라고 했다. 그렇다. 그럼 그곳에 합류한 주니어 역시 나는 비행기로 연착륙(soft-landing)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학창 시절 체육대회 때마다 계주 주자였던 나는 항상 친구들에게 바톤은 전속력으로 뛰면서 받으라고 했다. '못 받지 않을까?' 싶지만 정지해있던 사람이 제아무리 스타트가 좋아도 뛰어오던 사람보다 빠를 수는 없다. 그렇게 말했던 학창 시절의 나 역시 뛰면서 바톤을 받을 줄 알았을까?(그러니 말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나의 첫 사업이 전속력으로 나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출근 첫날, 정장을 갖춰 입고 (나중에야 알았지만) 입사 동기와 함께 잠시 1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내내 '체인지메이커'에 대한 영상이 머리 위로 재생되고 있었다. 잠시 후 인사담당자님이 내려와서 맞이해주시고 6층으로 이동했다.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도 출입문 바로 앞에 대표님의 자리가 있었다. 소셜벤처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는 낯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무척 낯선 광경이었다. 그 너머로 회사를 수놓고 있는 파타고니아 후드와 티셔츠 그리고 맥주까지. 불시착했지만 목적지는 근방으로는 착륙을 한 것 같았다.  


    자리에 도착해보니 포스트잇으로 모든 분들이 환영 메시지를 적어주셨다. 나는 말로만 듣던 '가족 같은 분위기'가 바로 이런 것인가, 하는 마음으로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안한 나의 자리 너머로 보이는 엄청나게 바쁜 모습들과 계속해서 울려오는 전화들(그 가운데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들). 군대에 있다 보면, 훈련 기간에 전입을 오는 신병들은 부산한 선임들의 훈련의 광경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있게 되는데 딱 그런 비슷한 상황이었다.


    '3월은 그렇게 적응을 하기에도 바쁜 기간이었다.'라고 썼으면 전형적인 전개였겠지만 출근한 지 3일 정도 뒤에 대표님으로부터 잔디(업무용 메신저)로 "E사 아세요?"라고 메시지가 왔다. 그렇게 나의 첫 사업이었던 'E사의 오픈이노베이션'이 시작되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외부의 기술력이나 아이디어, 서비스 등을 폭넓게 활용하여 새롭게 가치를 일궈내는 방법론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헨리 체스브로 박사가 처음으로 개념을 정립했다. 예를 들면, 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자본과 노하우에 스타트업의 혁신적인 제품 혹은 서비스를 접목하여 함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거나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일례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해당 서비스를 통해 삶이 개선될 수 있다.

(너무 어려우신가? 우리 PM님은 오픈이노베이션을 소개팅에 비유해주셨는데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나도 처음에는 '대기업이 왜..?'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점차 사업을 진행해보며 알게 되었다. 대기업 역시 모든 분야에 자본을 투입할 수는 없다. 특정 소재를 찾거나, 대중을 위한 CSR 사업을 할 때는 폭넓게 기존에 진행하고 있는 스타트업과의 협업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런 스타트업이 있나?' 싶지만 '와 여기서 이거 하면 대박 나겠다!' 싶은 창업 아이템은 한 블록 정도 앞에 꼭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정말 다양한 스타트업이 존재한다.(지난해 신설 스타트업만 11만 개다!) 우리가 흔히 '스타트업'이라고 떠올리는 곳들은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당근마켓, 토스, 배달의 민족 등등) 이렇게 사업을 하면 알게 되지만 정.말.로 다양한 스타트업이 국내에 존재한다.


    오픈이노베이션과 소개팅을 둘 다 경험해보면 대화 패턴도 유사한데, 한국 정서 상 처음부터 바로 비즈니스 이야기로 들어가지 않는다.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사옥이 정말 좋네요" 등으로 시작한 뒤에 "섬세하시네요. 혹시 어떤 일 하세요"처럼 서서히 안으로 들어오고 서로의 매력을 드러낸다. 이후에는 매력에 대한 검증(?)을 한다. 바이오 분야라면 임상은 진행했고 누구와 함께 진행했는지 등을 서로 확인한다. 그렇게 미팅을 몇 차례 진행한 후에 함께 협업을 진행한다. (생각해보니, 이 역시 많아도 삼프터를 넘어가지는 않았다)

보통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하는 대기업은 1) 수익성, 2) 확장성, 3) 지속가능성 세 가지 측면을 많이 고려하는데 이는 선악과 무관한 그들의 문법이다. 위 세 가지는 공교롭게도 모두 얽혀 있는데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런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했다가 지원이나 협업이 끝나면,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리는 스타트업에 대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말 동안 오픈이노베이션을 공부하고 다음 주에 출근하니, 함께 하게 된 PM 분이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을 말씀해주셨다. 바로 '마스터 시트'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후에 알게 되었지만 되게 중요하고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문서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BP를 찾기 위해서 구글 드라이브에 마스터시트를 검색했고 PM님께는 내일까지면 충분해요!라고 당차게 대답했지만(처음이어서 그랬다) 점점 그리 쉽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되었다.


    모집기간과 대강의 타임라인은 설계해주었지만 사실 사업이 크게 본다면 '모집-운영-결산'이지만 인간의 삶도 '아이-청년-장년'아닌가. 언제까지 포스터를 요청해서 컨펌을 받고, 파트너사에게 메일을 협력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고, 스타트업과-E사의 미팅은 언제로 하지? 그러면서도 이제 연간 프로젝트로 진행하게 될 J사업과 H사업도 인수인계를 받았다. 나는 PM님께 조심스럽게 예전에 진행했던 자료가 있는지 나의 어려움의 자초지종(?)을 여쭈었다.

모집 전(태아 상태)에도 이렇게 많은 과정이 있다. 클라이언트에 따라 순적하면 순적하게, 그렇지 않으면 위 내용으로 한 달이 갈 수도 있다.

    나는 종종 구글보다도 구글 드라이브를 더 신뢰하는데, 이전에 진행한 사례가 있어 열심히 INTJ 성향을 발휘하여 뚝딱뚝딱 만들었다. 이때 느꼈던 것이 바로 BP와 레퍼런스의 중요성이다. 나는 이후에 어떤 업무를 할 때면 내용을 가져갈 레퍼런스(시간 간격이 크지 않은 유사한 프로젝트의 사례)와 BP(제안서, 보고서 등을 만든다면 최근 가장 뛰어난 사례)를 찾아보는 습관을 들였다. 결코 내가 1부터 100까지 혼자서 & 새롭게 만들지 않는다.


    보통 주니어가, 특히나 무언가를 잘하려고 할 때 틀부터 새롭게 휘황찬란하게 만들려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분명히 유의미한 과정이고 누구나 한 번쯤 거쳐가는 과정이지만 실수라고 명확하게 워딩한 이유가 있다. 내가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 투입했던 시간이 나에게는 유의미하고 심지어 결과물도 (당신의 눈에는) 멋져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팀이 바빠서 1시간 내외로 진행되어야 할 업무를 내가 4시간 동안 붙잡고 있었다면 전체적으로는 비효율이 발생하고 자원의 낭비이다. 그리고 규칙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조직과 팀에서 익숙하던 '틀'이 있다. 비록 비효율적으로 보이더라도 그러한 내부의 틀과 어휘가 곧 이곳의 문법이자 언어이다.


    물론 신입이 처음부터 위와 같은 열정조차 없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 역시 범했던 실수이지만 위처럼 열심히 하려다 한 실수는 크게 질책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시야를 넓게 가져가 보자. 물론 어렵겠지만 말이다. (조언이 아니라 적으면서 나에게 하는 다짐이다) 조금만 더 커뮤니케이션을 해보고 살펴보면 조직과 팀 전체적으로는 그 일 말고도 '내가 해볼 만하고 PM이 맡겼으면 하는 업무'가 보일 것이다. 업무의 권한과 범위가 작고 좁을 때 이를 늘리는 방법은 그렇게 작은 업무를 효율적으로 해내는 모습을 보이며, 신뢰를 쌓아 가져오는 것이다. 나는 E 사업을 하면서 그렇게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렇게 'AHA 모먼트'를 거친 후 어느덧 안녕하세요 ㅇㅇㅇ님,으로 메일을 쓰며 클라이언트와 직접 소통도 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내가 개발을 하며 쓰던 '무소음 적축' 키보드와 더불어 버티컬 마우스가 놓여 있었고 목디스크를 방지하기 위해서 집에서 벽돌 책들을 가져와 모니터 밑에 쌓아두었다. (개인적으로 모니터 받침대보다 flexible 하고 갬성이 있어서 좋아한다) 그런데 모집을 시작했는데도 팀들이 많이 지원해주시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다. 모집 시작 일주일 뒤(마감까지 D-15), 매정하게 구글 폼 응답에 '1'이 적힌 것을 보고 누가 봐도 마스크 뒤로 몽크의 절규처럼 머리를 싸매고 있는 나에게 PM분이 다가와서 말씀해주셨다.


"아~ 저도 재작년에 해보니까 거의 마지막 날에 다 들어와요. 모집 랜딩 페이지만 꾸준하게 노출되고 있으면 괜찮을 거예요."


    그렇다. 사업을 한 번 해보면 조금 여유를 갖게 되는데(한 번 인생을 살아본 것처럼) 대학도, 입사지원서도 그렇듯 대부분의 사업의 모집은 마지막 날에 몰린다. (적어도 모집 2주 전에 지원율이 적다고 응답 수로 판별해서는 안 된다) 보통 서버보다는 회사 유선 전화로 문의전화가 많이 온다. (오히려 마지막 날은 문의가 안 오면 조금 불안해해야 한다. 불길한 징조이니) 요즘은 그래서 '랜딩페이지의 클릭 수 + 마감 즈음의 문의전화'로 모집의 성과를 예측한다. 마감 시간 전에는 마지막으로 자격이나 서류에 대한, 마감 직후에는 잘 접수되었는지 문의가 많이 몰린다. 나 역시 지원서를 쓰고 제대로 들어갔는지 늘 궁금해서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해봤기에 내가 운영하는 사업에 이렇게 열정을 가져주셔서 감사했다.


    그렇게 모인 스타트업 하나하나를 보니, 나도 스타트업 유관 분야에 종사하는데 정말 몰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 소개 자료로 제출해주신 것들을 보면서 물음표와 느낌표를 오가며, 그 너머로의 보이는 대표님들의 열정에 감동했다. 특히나 E사와의 미팅 때 무거운 제품을 직접 들고 와서 설명을 해주시는 대표님, 당일 부산에서 올라와서 사투리와 억양에 양해를 구하시면서도 개인의 스토리와 사회적 가치를 결부시켜 열정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해주시는 대표님. 그분들을 보며 최선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나는 너무 추상적으로 그리고 멀리서 찾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모든 대표님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대표님들이 계시다. 그러나 어떤 대표님들에게는 멋진 투수와 같은 느낌이 있었다. 회사의 서비스 소개처럼 하나의 말에도 신경을 쓰며, 한 구 한 구를 사력을 다해서 이어나가셨다. 그리고 비록 홈런을 맞을 지라도 에둘러 볼을 던지지는 않았고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구속과 팀원들이라는 구질을 믿고 스트라이크 존에 예리하게 꽂아 넣으셨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정직한 대표님들이 좋았다.

   

    그렇게 미팅이 끝나고 단기 사업이 하나 끝이 났다. 실제 오픈이노베이션은 이후에 비즈니스 모델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까지 진행하지만 이번 사업은 특성상 연계 미팅까지였다. 이렇게 단기 사업을 경험해본 것은 돌이켜 보니 큰 행운이었는데 그 이유는 위의 '모집-운영-결산'의 과정을 빠르게 한 번 경험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린(lean)하게 한 번 인생을 경험해본 것과 유사했다.


인생을 두 번째 산다고 쉬울까? 사업(프로젝트) 역시 그렇다. 매사업이 전복죽이다.


그렇게 전체적인 '감'을 잡을 수 있었고 E사의 이사님과 부장님 앞에서 기획과 성과 발표를 해보며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모델로 계속해서 사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와 같이 후속 사업을 유치하는 것이 '내가 해냄'의 증표가 아닐까. (물론 더 정확히는 '팀이 해냄'이 맞다) 그렇게 E사와의 오픈이노베이션은 '일하는 방법' 중 누구와 함께 일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지를 시켜준 사업이었다.  


    글의 흐름은 매끄럽지만 사실 중간에 미스한 부분들도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떠오른다. 글의 특성상 E 사와의 사업만을 적었지만 실제로를 세 개의 사업이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J(로컬 사업), H(해외 사업)이라는 바톤을 들고 열심히 뛰어야 했다. 그리고 저기 멀리서 그러나 확실히 K사업이 "보람~~"하면서 바톤을 넘겨주려 뛰어오고 있었다.

     



다음 주에는 로컬 사업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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