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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행기 #1 어린 나의 꿈

by 변민욱
눈 앞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일도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내 운명의 눈에는 낯설기만 하다. 심지어 운명 자체도 이들을 모른다.
- 불안의 서-

이번 여행은 무박 5일에 가까웠다. 불면도 때때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배웠다. 카타르 라운지에서크리스마스를 이브를 보내며, 영국에서 보낼 일정을 짰다. 그 때 몰랐다. 나는 히드로 공항이 아니라 개트윅 공항 행을 예약했다는 것과 영국은 크리스마스에 대중교통을 거의 운행하지 않는다는 점을.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비행기를 탔다.

KakaoTalk_20250310_153812438_04.jpg 사실 잘 보이지는 않았다.

거의 뜬 눈으로 비행기에서 밤을 세웠다. 아직도 착륙 직전 새벽 하늘에서 영국을 보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내가 드디어 왔구나...' 풍경보다는 꿈을 이뤄가는 것에 대한 기분 좋은 설렘으로 잠에 들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나의 성격인데 나는극내향형이지만 새로운 환경에서의 도전 역시 매우 좋아한다. 한국어가 들리지 않으면? 더욱 좋다. 단 딱 시작하기 전까지. 여행의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원래 대중교통이 운행되지 않아서, 우버를 타려고 했다. 그러나 개트윅 공항은 런던과 멀어도 너무 멀었다. '이거 우버 타면 여행 예산 절반도 쓰겠는데...'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서 I(내향형)는 사치다. 여기서 사치는 비유가 아니다. 진짜 돈이 많이 필요해진다. 다행스럽게도 바로 앞에서 한국인처럼 보이는 분들이 공항 직원 분들에게 대중교통이 없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조심스럽게 '혹시 한국인이세요? 어디 가시는데요?'라고 여쭤보았다. 런던으로 행선지가 같아 다행스럽게 우버로 런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런던까지 가면서 여행에 대해서 나누니, 대학교 입학 전에 축구를 보기 위해서 친구 두 분이 여행을 오셨다고 한다. 스무 살 때의 내 모습이 보이고 어짜피 지출해야 했을 돈이라고 말씀드리며 돈은 받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DSC_2325.JPG 첫 날 가장 영국 같았던 모습(?). 물론 내 캐리어 보관은 아쉽게도 이런 서비스는 아니었다!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사진기를 꺼낼 수 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우중충한 특유의 날씨와 대비되는 빨간 버스(5일 째부터는 호객행위 때문에 질렸지만), 트렌치 코트와 함께 새벽에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 함께 조깅하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이들의 배경이 되어주는 고풍스러운 건문들까지. '이게 런던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 캐리어를 맡기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먹은 것이 기내식 뿐이라, 카페로 향했는데 그 때 런던의 아침 풍경 만큼이나 물가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침 택시비가 아른거려 결국 바게트 빵 두 개만 사고 버스에 올랐다.


'이럴거면 리버풀 근처로 예약할 걸.' 여행도, 인생도 남들의 꿀팁/조언도 겪어보기 전에는 모른다. 나의 바보스러움으로 인한 고생과 그들의 조언이 이후에 볼 세븐시스터즈의 일몰 모습 때처럼 찬란하게 대조를 이룰 때, 조언은 조언이 된다. 영국에서의 첫번째 날 대부분을 이동에 쓰고 리버풀에 도착했다. 원래 시간보다 4-5시간 지연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뉴이얼"로 기사님께 감사 인사를 하며 내렸다. '그래 오늘 원래는 나라 전체가 쉬고 저 분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었겠지' 생각하며 내렸다. 저녁 8시 즈음인데 이미 한국의 밤보다 어두웠다.


'오늘 운동도 못 했는데 숙소까지 가볍게 조깅하면서 가보자' 라는 마음은 정확히 10분 만에 사라졌다. 그나마 정거장 근처여서 가로등도 있고 가게들도 열어서 '빛이 있었다.' 근데 조금만 외각지로 벗어나니 정말 야광조끼를 입고 뛰어야 할 것 같은, 그리고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동네가 나와서 곱게 우버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거쳐 리버풀 박물관과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리버풀 선수들의 친필 사인과, 사진들까지 보니 내가 리버풀에 온 것이 실감났다. 중학교 때부터 마음 한 켠에 계속 간직하고 바라던 리버풀에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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