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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May 01. 2024

영화 <밀양> 용서에 대하여

17년 전에 보고 3번 다시 쓰는 글

영화 <밀양>은 '진정한 용서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용서가 내적으로는 상처받은 자신을 수용하고, 외적으로는 타인과 화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내적인 관점에서 용서는 과거의 나와 화해하여 자신 안의 부정적 감정을 떠나보내는 과정이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않고,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했던 자신을 탓하지 않고, 과거의 고통스러운 이미지를 재현하는 굴레에서 벗어나, 변해버린 상황과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의 ‘잘못’을 시시콜콜 캐묻고 실체적 진실을 추궁하여 반성을 강요하는 건 처벌이지 용서가 아니다. 자신을 용서한다는 건,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상태에서 저절로 반성하고 성장하도록 만드는 힘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내 안의 진실에서 시작해 실체적 진실에 도달하려는 용기이다.
  마음으로 하는 용서는 스스로를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이지, 주고받을 수 있는 물체가 아니다. 타인을 용서한다고 그 타인에게 용서를 선물처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량화할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용서하려 애쓴다고 해서 무조건 용서에 이르지도 않고, 결국은 실패할지도 모른다. 용서하려는 마음은 용서를 향해 나아간다는 인식만을 가지고 허공을 응시하며 달려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외적인 관점에서 용서는 평화를 위해 맺은 공적인 합의의 영역이다. 생존하려면 아군이 필요하다. 그것이 연약한 육체로 지난 몇 만 년을 생존한 호모사피엔스 유전자의 법칙이기에 문명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본능의 아성이다. 피해자는 세계에 대한 불신과 수치심, 트라우마로 큰 상처를 받는다. 이 세계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은 그를 수렁으로 빠뜨린다. 그에게는 세계에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더 이상 공격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 작은 위안에서 피해자의 신체 반응이 회복되고, 시간을 들여 내적인 용서로 가는 길이 열린다.

  진정한 용서는 사회적 당위도 아니고, 교리에 의한 온정주의도 아니며, 비겁함이나 뻔뻔함도 아니다. 내 안의 진실과 공적 영역의 합리가 만나 지나간 운명을 받아들이는, 떳떳함이다. 내적인 수용과 외적인 화해 어느 것도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용서하려면 혼자일 수도 있어야 하고 함께일 수도 있어야 한다.

  용서는 영화 <밀양>의 마지막에서 신애의 삶에 드리우는 비밀스러운 햇볕이다.
  신애의 머리를 자르던 살인범 딸은 눈물을 흘리고, 신애는 미용실을 뛰쳐나와 마당에서 미처 다 자르지 못한 머리카락을 스스로 잘랐다. 오래된 머리카락이 떨어진 마당 위로 비밀스러운 햇빛 한 조각이 빛난다. 부서지기 쉬운 작은 인생에 신의 뜻이 비치자, 영화는 끝이 난다. 나는 영화의 저편에서 깊고 짙은 고통의 바다를 건너 마지막 한 걸음을 혼자서 내딛는 그녀를 본다. '둘이서 갈 수도, 셋이서 갈 수도 있다. //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 혼자서 가야만 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라는 헤르만 헤세의 시구처럼.
  혼자 내딛는 걸음일지라도 혼자만의 힘은 아니다. 그녀가 스스로 내딛는 걸음의 한 발은 살인범 딸의 눈물이고, 다른 한 발은 그녀 곁에서 거울을 비춰주는 타인이다.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구질구질한 마당 위의 삶을 살며 용서하라는 신의 창날은 비밀스럽다. 속죄의 눈물 한 방울은 소리가 없고, 스스로 구원하는 자의 ‘곁’은 소란스레 마음을 감춘다. 들리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삶은 불찰과 불운이 빚어내는 불행일지라도, 무언가가 비밀스럽게 우리를 관통하고 있어 죽지 않고 살아간다. '비밀스러운 햇볕(밀양)'이 우리를 비추고 있다.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고 양심의 죗값을 멋대로 사면해버린 살인자가 우리를 두 번 죽일지라도 다시 한 번 살아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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