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인권소식지 기고문 2023년 『고독사는 사회적 타살입니다』 라는 책을 낸 경찰관이 있다. 벚꽃잎이 비에 젖은 어느 봄날 권종호 경감님을 만나고 왔다.
[Q1] 언제부터 고독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답변) 제가 고독사 현장을 처음 보게 된 건 2005년입니다. 사람이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는데, 거인처럼 부풀어 올라서 구더기가 들끓고 있더라구요. 참혹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죽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국가유공자였어요. 국가를 위해서 헌신한 사람인데 혼자서 외로이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남 일 같지 않더라고요. 국가를 위해 자신을 바쳤는데 왜 국가는 이 사람을 보호해주지 못했는지, 그 질문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해가 갈수록 고독사 현장에 출동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어 2018년부터 자료수집을 시작했어요. 약 8개월간 변사 사건 중 3일 지나 발견된 162건의 현장을 모두 찾아갔습니다. 일단 가서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그 사람에 대해 듣고 또 들었습니다. 듣다 보니 점점 삶을 보게 된 거 같아요. 구더기, 체액, 악취 같은 현실이 아니라 그 사람이 두고 떠난 삶을 보게 되는 거죠. 삶이 보이니 죽은 사람도 친근감이 생기고, 더 나아가 우리의 죽음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p10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고독한 사람이든, 고독하지 않은 사람이든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Q2] 영국에는 고독부 장관이 있다고 들었어요. 한국에서도 2021년 4월1일부터 고독사예방법이 시행되었는데요, 고독사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 일인가요?
답변)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한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를 보면 고독사는 5년간 매년 8.8%씩 증가했다고 합니다. 부산의 최근 5년간 고독사 망인은 1,408명으로 전국 3위가 되었죠. 최근 2년간 인구 10만 명당 고독사 발생수는 부산이 1위입니다. 부산이 이렇게 고독사 비율이 높은 이유는 노인 비율이 높아서이기도 하지만, 1인 가구가 30년간 4배 가까이 증가한 것도 원인인 것 같습니다. 2021년 기준 부산에서는 329명이 고독하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매일 1명꼴로 사람이 외롭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고독사는 외로운 죽음이지만, 외로운 삶이기도 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가족들과 모여 살지 않습니다. 무연사회(無緣社會)의 개인들은 TV에서처럼 화려하지 않습니다. 외롭고, 가난합니다. 대한민국에는 복지 사각지대가 참 많습니다. 연락 두절 된 자식이라도 자식이 있어서 배제되고, 다 허물어져 가는 집이라도 집이 있어서 배제됩니다. 그런 분들은 밥값이 없어서, 병원비가 없어서 속앓이만 하시죠. 전생에 나라를 3번 구해야 생활보호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모두 고독사 위험군에 속합니다. 그 사람들이 잘못해서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게 아니에요. 차라리 열심히 살지 않았다면 억울하지는 않을 겁니다. 고독사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내 이웃일 수 있고, 내 가족일 수 있고, 나일 수도 있죠.
p26 고독사의 정의는 혼자 살다가 혼자 숨지고 일정 기간이 지나서 발견되는 외로운 죽음이다.
[Q3] 가장 기억에 남는 고독사 현장이 있나요?
답변) 저는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사랑이 눈에 들어와요. 제 아들이 예전에 특수청소 일을 할 때 도와준 적이 있거든요. 할아버지 한 분이 달력에 깨알 같은 글씨로 “여보. 사랑해. 조금만 기다려 곧 갈게.” 이렇게 적어두고 돌아가셨어요. 할머니는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장례를 치르고 할머니를 따라가셨대요. 눈물이 났어요. 아들도 울고, 나도 울고. 하도 울면서 청소를 해서 어떻게 청소가 끝났는지도 몰라요. 그때 손목에 상처를 입었는데 아직 흉터로 남아있어요.
영혼이 있을까요. 할머니가 혼자 있으면 무서울까 봐 저승길을 따라나서는 그 마음은 어떤 사랑일까요. 사람들이 두 분을 원앙이라 그랬대요. 자식은 없어도 항상 손을 잡고 다니셨대요. 할아버지는 마지막까지 할머니 가는 길에 입을 옷 좀 태워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청소를 마치고 작은 사찰에 가서 할머니 옷 한 벌도 태워 보내드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계약으로 할아버지 가족 역할을 해드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무연고 사망으로 처리됐거든요. 영락공원 캐비넷에 계시다가 10년이 지나면 화장되어 유골은 바다나 강에 뿌려지겠죠.
[Q4] 책에서도‘계약가족’, ‘생전계약’에 대한 말씀을 하셨어요.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답변) 고독사를 예방하려면 사람이 고립되지 않도록 인간관계가 두터운 ‘유연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촘촘한 사회관계망의 끝판왕은 가족입니다. 하지만 이때의 가족은 예전처럼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정상 가족’의 개념 안에 갇혀 있으면 안 됩니다. 마음으로 통하는 사람, 의견이 맞는 사람이 공유 공간을 사이에 두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청년 고독사 현장에 가보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소리 없이 죽어간 그들의 유서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미안하고, 자신의 무능력을 탓합니다. 가난해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가난해서 취업 준비할 여력도 없고, 자신에 대한 한 톨의 가치감 없이 죽어간 그들을 보면 청년들에게 관계망을 만들어 주고 그들 스스로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평등한 개인들의 공동체, 새로운 의미의 가족을 만들어 주는 것이 ‘계약 가족’입니다.
‘생전계약’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사무를 위임하는 계약입니다. 요양 간호, 재산관리 등 생전사무와 장례식 등 사후사무에 대한 계약서를 꼼꼼하게 작성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 혹은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단체가 계약자의 뜻대로 사무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답게 죽을 수 있도록 그 권리를 보장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죠.
[Q5]‘계약가족’,‘생전계약’외에 고독사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답변) 몇 년 전에 제 퇴직금을 다 털어서 사회실험을 한 적이 있어요. 외로운 사람이 외로운 사람을 케어한다는 ‘고고(孤孤)케어’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고독사 예방을 주제로 상생하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 목표였어요. 먼저 저비용으로 어르신들을 고용해서 은둔형 생활자를 찾아가서 말동무를 하게 해줘요. 주요 활동 내용은 ‘경청’이었어요. 외로운 사람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고독 타파 돌격대 역할을 하는 거죠.
어르신뿐만 아니라 중장년층과 청년들도 할 일이 있어요. 청년들은 ‘고고케어’ 활동을 계획하고 중장년층은 고독사 위험 지역에 방치된 빈집 수리를 해서 생활공동체를 위한 공동공간을 만듭니다. 그렇게 청년, 중장년, 노인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웃의 삶도 보살피는데 제 계산으로는 1년에 15억이면 되더라고요. 저는 그럴 돈이 없지만, 제가 보고 경험한 것이 있으니 ‘이건 된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일본에서도 고독사 문제가 심각해서 다양한 사회적 대안을 내놓고 있는데요. 그 대안이라고 하는 게 로봇 케어처럼 기술을 활용해서 고독하게 돌아가신 고인을 빨리 발견하게 하는 그런 내용이더라고요. 저는 고독사 수치를 줄이는 것보다, 고독한 삶을 줄이는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사람 문제는 사람으로 풀어야 합니다. 제가 고독사 현장에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듣다 보면 필요한 것을 알게 돼요.
[Q6] ‘고고케어’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가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답변) 먼저 자료를 모아야죠. 우리 지역에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공부해야죠. 2021년 3378명, 2022년 4482명, 2023년에 5천여명의 고독사 망인들을 기억하고 추모해야죠. 그리고 지역별로 맞춤형 고독예방책을 만들기 위해 고독사 실사팀을 만들어 현장의 소리를 들어야죠. 고독사 당한 사람의 이웃도 고독사 위험군입니다. 실사팀이 고독사 현장에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면서 고독사 위험군도 케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독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경찰관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망인을 보고 ‘못 볼 걸 봤다.’며 외면할 수 있어도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처참한 현장을 보았고, 볼 걸 알면서도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고독사 예방이 우리의 업무는 아니지요. 하지만 고독사의 현장에는 우리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그 염원 하나로 저는 책을 썼습니다. 우리 동료들도 사람답게 존중받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국가가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Q7] 권종호 경감님은 어떤 경찰관인가요?
답변) 저는 또라이죠. 저처럼 살면 안 됩니다. 후회되는 순간들도 많아요. 고독사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퇴직금을 털 때도, 생전계약 사업 제안을 거절했을 때도 후회가 돼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사는 게 옳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저희 부모님이 그렇게 사셨어요. 어른들이 말없이 걸어가는 그 길이 젊은 사람의 길이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특별한 것을 가르치지 않더라도, 아이는 어른들의 뒷모습을 배웁니다. 제가 돌아가신 부모님의 길을 걷고 있어요. 아마 저의 아들들도 제 뒤를 걷고 있을 거예요.
인터뷰하는 내내 눈물을 꾹 참았다. 경찰과 사람 사이 그 무한한 공간에서 사람이자 경찰로서의 소명을 찾는다면 이런 모습일까. 우리 일은 사람 일이다. 인류가 미워지는 순간에도 내 앞에 있는 사람도 사람이라는 진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 10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되새기며, ‘사람, 경찰’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인권 경찰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한다. 강인한 겉모습으로 희망의 속살은 국민의 인권을 위해 질풍처럼 나아가는 국가를 꿈꾸는 권종호 경감님은 진정 ‘사람, 경찰’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