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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Jun 26. 2024

버려진 글 모음

똥독과 경찰관

[5. 내 마음의 수챗구멍]-[제목: 똥독]
   지난 금요일 퇴근해서 누웠는데 천장에서 무너진 철골이 내 가슴 위로 떨어졌다. 종종 그런 이미지가 나를 압도한다. 목을 죄거나 가슴이 뚫리는 상상. 고통스럽지는 않다. 잠시 숨이 멎었다가 깊게 내쉰다. 후련하다. 파괴욕인지 배설욕인지 모르겠다. 내가 부서지는 꿈, 내 목이 한 줌 타이에 짓눌리는 꿈, 내가 아끼는 생명들이 물풍선처럼 터져버리는 꿈.
  금요일 퇴근하기 직전 전화를 한 통 받았다. 6개월 전 실종신고를 한 신고자였다. 그녀는 나보고 실종자가 죽기를 바라느냐 물은 것이 기분 나쁘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내가 정말 그렇게 말한 것이 맞냐고 물으니, 그건 아닌데 자기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고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그건 당신이 자꾸 전화해서 실종자 사망 사실을 확인해 달라고 해서 경찰 실종 수사는 국민이 살아있다는 전제로 안전을 확인하는 거라고 답한 거 아니냐고, 상속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사망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거라면 법원에서 실종선고를 받아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계속 소리를 질렀다. 경찰이 일을 안 한다, 국민이 다급하면 도와주는 게 경찰이다, 훈계도 잊지 않았다. 나는 화풀이 하려고 전화하셨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경찰이 국민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라고 또 소리를 질렀다.
  신고 내용은 이렇다. 신고자의 시누이는 30년 전 일본으로 떠났고 신고자는 10년 전에 시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런데 최근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상속 문제를 처리하려다 보니 시누이가 사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신고자는 시누이를 찾아 상속 재산을 처리하고 싶어 실종신고를 했다. 몇 차례 상담에서는 오래되고 불분명한 정보만 난무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정보를 확인해 외교부를 통해 일본에 협조를 요청한 지 6개월이 지났고 답은 오지 않았다. 신고자는 계속 사무실로 전화를 하거나 무작정 찾아왔다. 상속 재산 처리는 경찰이 처리할 사안이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신고자는 경찰관 친척을 앞세워 사망했다는 답이라도 빨리 달라고 재촉하기 일쑤였다.
 정작 일본 경찰과 중재 역할을 하는 외교부는 신고자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외교부와 주재 경찰관은 내가 보낸 정보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며 우리의 귀책사유로 돌렸고, 영사법 상 공조 요청할 합리적 사유가 부족하다며 신고자에게 직접 일본으로 와서 신고할 생각이 없는지 계속 물었다. 신고자는 외교부에 화가 난 상태로 꼬박꼬박 나에게 전화해서 불만을 토로했다.
  주말 내도록 열이 났다. 차라리 내가 부서져 산산조각났으면, 나풀거리는 먼지가 되어 날아다녔으면 했다. 풀이 보고 싶었다. 싱그러운 풋사과가 먹고 싶었다. 광활한 땅과 맞닿은 하늘을 보며 풀숲에서 똥을 싸는 개가 되고 싶었다. 가슴이 짓눌려 견디기 힘들었다. 두려움이 아니라 깨달음에 가까웠다. 조금의 희망도 가질 수 없다는 날카로운 인식이 천장을 망치질했다. 나는 그 아래에서 누워 있었다. 언제 깨어질까, 기다리며.
  똥독이 오른 것 같았다. ‘그 많던 싱아는 어디로 갔을까’에서 박완서는 오래전 시골에서는 똥을 싸는 것도 놀이의 일부였다고 회상한다. 어렸을 적 공중화장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엉덩이를 까고 쪼그리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똥을 쌌는데, 그것은 단지 찌꺼기를 배설하는 것이 아니라 밭에서 작물이 자라나게 할 거름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와 달리 현대의 배설행위는 칸칸이 분리되고 숨겨진다. 현대인은 행복을 소비하여 일상을 전시하고, 똥은 그들의 발아래 오물처리장으로 흘러가며 은폐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희노애락이 삶의 곳곳에 녹아 있었다면, 지금은 분노와 슬픔만 따로 떼어 한 곳으로만 흐른다. 아래로 아래로.
  어쨌든 나는 한 번 더 현지 주재관에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의 입장을 전했다. 그리고 실종자는 안전하게 살아있으나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못한다는 답을 받았다. 민사 문제는 다른 경로를 통해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이제 그 사람은 실종자가 어딨는지 알려달라고 전화가 온다. 오늘은 신고자의 지인 연락이 왔다. 전직 지방경찰청장이라나 뭐라나. 일본 주재관에게 신고자의 입장을 다 전달했고, 명백히 민사적인 문제로 재차 연락하기는 어렵다고 했더니 주재관으로 있는 그 높으신 분들은 본인 후배들이니 직접 연락을 취하겠노라 했다.
  무슨 이런 개똥 같은 경우가 다 있나 싶어 하소연하다가 내가 이렇게 무의미한 고통을 받는 이유는 필시 내 계급이 낮아서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다. 승진을 준비하는 사람은 이렇게 스치는 인맥도 붙잡는다던데, 다시 한번 그 대단한 선배님께 전화를 드려 미처 알아보지 못한 나의 무례함을 사과하고 당신이 작년에 의원으로 출마한 그 지역구가 내 고향이라고 말을 해야 하나 싶었다. 우리 부모님이 거기서 25년째 장사를 하셨고, 동네 사람들과 계모임도 하고 있다고.
   똥독이 독하기는 독하다. 하다 하다 이제는 별생각을 다 한다. 안 그래도 경찰 업무가 ‘피지컬100’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시각에 매일 쪼그라드는 기분이 드는데, 욕받이가 되어서도 친절하지 않다고 비난하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나. 무료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공공재를 착취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웃으며 친절할 필요가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에게 몸을 낮추려고 경찰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탐욕스러운 사람의 도구까지 되어 줘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이 싫다. 한껏 오른 똥독이 도통 낫지를 않는다.



[쓰지 못한 글]

남편은 나보고 기가 약하다고 그런다. 내가 봐도 그런 것 같다. 나를 보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잘 없다. 거리감을 느낄 만큼 예쁘지도 혐오감을 느낄 만큼 못나지도 않은 것 같고, 다들 누군가를 닮았다거나 어디서 본 듯하다고 말하니 필시 만만한 인상임에 분명하다. 나는 대차게 화내거나 크게 용서하지도 못하는데, 감정은 곧잘 들키고 머리 써서 계산을 하거나 눈치를 고르지도 못해 그런 것 같다. 그저 작은 의리를 지키고 사사로운 굴욕을 견디며 애매한 웃음으로 바라거나 버리지도 못하고 살고 있다.
  기가 약한 사람 보고는 장례식장에도 함부로 가지 말라고들 한다. 귀신의 기운을 잘 탄다던가 뭐라던가. 경험상 무시할만한 말은 아닌 것 같다. 나는 타인의 고통에 무척 민감한 편이라 몇 번 보지 않은 사람의 죽음이라도 장례식장 가기 전부터 애통하고, 가서는 슬픔에 압도당하고, 다녀와서 한동안 서글퍼한다. 사람 안의 고통에 너무 민감해서 오히려 대중의 슬픔에는 둔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큰 고통에 깊이 체류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한계다.
  나는 사건 사고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편이다. 군대 총기 난사 사건도 그렇고, 세월호 사고도 그렇고, 지하철역에서 죽은 실습생과 이태원 사고, 각종 자살 사건이 내 일상을 짓누른다. 사람이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피하거나 싸워야 현실에 자그마한 변화라도 있을 텐데,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보기만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저 야멸찬 말들을 깨부술 수 있을까, 그런 날카로운 질문들은 공포로 얼어붙어 희미해지고 둔해진다.
  경찰관이 되기 전, 6개월간 합숙훈련을 받던 때가 기억난다. 아침 마다 조회를 하고 구보를 뛰고 사격이나 운전, 실무에 도움 되는 각종 수업을 들었다. 112 수업이었던가, 범죄 수사 수업이었던가. 교수님이 오원춘 사건의 현장을 사진으로 보여줬다. 오원춘은 일면식도 없었던 여성을 잡아다가 집에 감금하고 잔혹하게 토막내 살해했다. 여성은 오원춘의 집에 갇혀 112로 도움을 청했지만, 경찰관은 그녀가 있던 곳을 찾지 못했다. 그 뼈 아픈 사건을 계기로 ‘아’하고 전화가 끊어져도 신속하게 위치를 찾아 현장에 출동하여 상황을 파악하는 지금의 112시스템을 구축하게 됐다고 한다.  
  그때 수업에서 죽은 여자의 사진을 보고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그 발가벗겨지고 난자된 시신이 눈앞으로 달려왔다. 나는 처참한 그녀 앞에서 미안하다고 빌었다. 너무 아팠을 텐데, 너무 고통스러웠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빌고 또 빌었다. 아침이 되어 그녀가 떠나고 같은 방의 동료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동료는 참 별스럽다는 듯 말했다.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무섭지 않다고.
  내가 과연 경찰관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도 어디가서 떳떳하게 경찰관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경찰관이라면 고통의 숲에서 길을 찾을 줄 알아야 하는데, 나는 이제껏 처참한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일해본 적이 없다. 집회 시위 현장에서 온몸으로 타인의 울분을 막아낸 적도 없고, 세상에 화가난 주취자들의 침을 맞아본 적도 없다. 자살 사건을 매일 다루지만 자살한 시신을 눈앞에서 본 적은 없다. 매일 변사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형사들과 함께 일하면서도 나는 죽음을 모른다.
  36년 간 형사를 했다던 팀장님은 평생 100구가 넘는 시신을 봤다고 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신이 갓 돌 지난 아기의 시신이었다. 아기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죽어 있었던 그 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팀장님은 그토록 많은 술을 마셔댔는지도 모른다. 어둠에서 눈을 뜨면 안 된다. 그때의 나처럼 잊지 못할 시신들이 어둠 속에 둥둥 떠다닐 테니.
  나는 인간이었던 존재를 인간이 아닌 듯 볼 수도 없고, 술기운에 어둠을 지우고 살 수도 없다. 이왕 이렇게 태어난 바에 타인의 고통을 제 정신으로 똑바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기꺼이 그 자리에 체류하며 생각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강해져야 한다. 고통에 압도당해서는 안 된다. 고통의 기세에 눌리면 앓아눕게 되어있다. 누워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눕지 않으려고 글을 썼다. 정인이가 입양 가서 맞아 죽었을 때 엉엉 울고 글을 썼다. 왜 3번의 신고에도 경찰관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나, 묻고 또 물었다. 누군가의 자살 소식에도 글을 썼다. 하지만 아직 쓰지 못한 글이 많다. 세월호 사고, 이태원 사고, 실습생들의 죽음, 보호종료 아동들이 처한 현실과 난민들의 고통에 대해 쓰지 못했다.
  쓰이지 못한 고통이 귀신처럼 내게 씌였다.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사람, 그 영상을 보고 참으로 맞는 말이라고 동조하는 사람, 고통의 얼굴들을 지겨워하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 불운 없이 살 수 있는 통행권이라도 가진 것처럼 오만하게. 이것이 인간인가, 도대체 인간은 왜 사는가, 인간은 왜 그토록 잔인한가, 질문이 비처럼 내린다.
  그러나 거창한 질문에 어떤 유익이 있겠는가. 회의주의의 암막 뒤로 도망치는 것은 술에 취해 잊고 사는 것과 다를바 없다. 내가 이 거대한 불행을 구성하는 톱니바퀴에서 빠져나오려면 내 스스로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 적 이야기냐고, 지루하다고 입 다물라 비웃어도 나는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마 얼마간 더 아파야 할 운명이다. 쓰지 못한 것들을 다 쓸 때까지.



[11. 복권에 당첨되면 계획?]-[제목: 내가 복권에 당첨된다면]
  12년 전이었나. 수첩에 그린 그림이 있었다. 낮은 울타리를 두른 너른 마당과 지붕이 있는 단층집에서 4시간 일하고, 4시간 공부하고, 4시간 노는 하루. 그런 상상을 했었다. 요즘에는 정원에 심을 꽃나무를 고민한다. 가장 빨리 봄을 알리는 매화와 벚꽃, 4월쯤 피는 철쭉과 샛노란 개나리, 여름을 알리는 푸른 수국과 바람 따라 노란 물결 이는 금계국, 7월부터 늦가을 까지 붉은 꽃이 피는 배롱나무 생각을 한다.
  그런 집에서 일주일에 3일은 정원을 가꾸고 텃밭을 손질하고 싶다. 내 손으로 키운 감자나 고구마, 당근을 캐 먹고 싶다. 삼키면 사라지는 허기 말고, 바람이 키우고 비가 가꾼 흙의 시간을 씹고 싶다. 텃밭에는 강아지 크림이가 뛰놀고, 가끔 배추를 뜯어 먹는다. 어렸을 적 고사리 꺾으러 다녔던 시어머니의 옛날 얘기를 들으며 함께 땅을 고른다. 벌레 먹은 채소를 정성껏 씻어 예쁜 것은 나누고, 울퉁불퉁 못생긴 것은  밥상에 올린다. 된장을 풀어 구수한 국에 잘 익은 시래기가 있으면 좋겠다. 밤이 오면 땀을 씻고 가족들과 드라마를 봐야지.
  일주일에 3일은 책방을 열고 싶다. 나무가 잘 보이는 책방에 앉아 손님을 맞이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일주일에 두 번쯤은 독서 모임을 하고,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책을 읽고 싶다. 미운 손님이 찾아오면 꼭 한 번 용서해주고, 잊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작은 선물을 하고 싶다. 삶에 지친 손님들을 위해 어두운 곳에 풀벌레 소리가 나는 작은 테이블을 둘 것이다. 커피를 팔지는 않을 테지만, 가끔 향긋한 티백을 갖다 둬도 좋을 것 같다. 오후에 문을 열고 저녁 7시면 문을 닫고 집으로 갈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밥을 사고 싶다.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허름한 옷을 입고. 남편과 손을 잡고 기차역 근처를 걷다가 길바닥에 퍼질러 앉은 한 사람에게 밥을 사줘야지.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길을 가다 길거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소리지르는 노숙자들을 미워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시민들은 저 무례한 인간들이 길거리를 더럽히고 관광객들을 불쾌하게 만든다며 읍소한다. 국가에서는 국민을 위해 노숙자들에게 무관용 법집행 지시를 하달한다. 출동 경찰들이 썩은내 나는 술상을 엎고, 길거리에는 상점에서 흘러나온 시끄러운 음악소리만 가득하다. 다음 날이면 갈곳 없는 노숙자들이 다시 모여든다. 각자 길바닥에 앉아 멍하니 행인들을 보고 있다가, 돈을 구해 술을 사온다. 운이 좋으면 토토도 사고, 로또도 산다.
  왜 저러고 사나. 물을 수도 없다. 불쌍하다고 혀를 차고 지나가려니 마음이 불편하다. 저들도 분명 보드라운 아기였을 때가 있었을 텐데, 호기로운 청춘일 때도 있었을 텐데,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받는 시절이 있었을 텐데. 아니면 내가 모르는 어둠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일 지도 모른다. 형제복지원에서 아이를 팔아먹던 시절 팔리지 않았던 아이였을지도 모르고, 전쟁에 치이고 빨갱이라 의심받던 국가폭력의 생존자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그들을 모른다.
  언젠가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찧은 남자를 본 적 있다. 더운 여름 선홍빛 핏물이 스며든 도심의 바닥에는 먹다 흘린 김칫국물도 있고 쉰 막걸리도 있었다. 아스팔트에 맺힌 온갖 얼룩은 결코 거론되지 않을 역사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가던 길을 갔다. 119에 신고를 하고 홀로 덩그러니 기다리고 있는데, 지나가던 여자 경찰관이 쓰러진 남자를 보고 양산으로 그늘을 만들어 부채질을 하고 물로 입을 적셨다. 그때 평생 처음으로 생각했었다. 경찰관이 되면 어떨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나이를 먹었다. 불쌍히 여긴다고 좋은 것도 아니요, 내 옷이 더러워질까 피하다가 가끔 생각나면 돈을 던져주는 것이 좋은 것도 아닌 줄은 안다. 그들에게 밥과 방을 내놓고 갱생을 돕다가 매번 서운해하던 성직자의 글을 읽은 적도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고 자신을 도와주던 사람을 잔인하게 죽여버린 사람도 본 적 있다. 아무리 돕고 싶어도 희망등대쉼터는 갑갑하다고 가지 않는 노숙자들도 많다는 걸 안다. 그들 대부분은 규칙을 지키는 일에 무능하다.
  그래도 길바닥에 퍼질러 앉은 그들의 텅 빈 눈을 보면 그들을 지나쳐 안전한 집으로 가는 내가 싫다. 언제까지 안전할 거라고.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지 못하고 궁상스럽게 살아가다가, 운 좋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닥쳐오는 죽음을 맞이할 텐데. 내게 오지 않을 고통이란 없다. 지금 겪는 고통이 내 인생에 가장 작은 고통일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의 삶이 나와 무관할 리가 없다.
  그래서 하루는, 일주일에 꼭 하루는 시궁창에 몸을 던지리라. 멀찍이 서서 불쌍히만 여기는 건 교만하다. 타인의 때를 묻히지 않고 불쌍히만 여기는 자는 자신 안에 갇혀 열망으로 타죽을 것이다. 괜한 미움도 받고, 서운해하고, 아무것도 소용없다 회의하다가 그래도 산 사람 밥은 먹여야지, 하며 살다가 가장 쓸쓸하고 버려진 순간에 닥치면 사는 게 별것 있더나, 하며 죽어가야지.
  남편도 그랬다. 길을 가다가 불쌍한 사람이 보이면 돈을 주는 독지가가 꿈이라고. 생활비가 쪼들리는 달이면 이놈의 팔자 하다가도, 밥 먹고 밥 사주는 삶을 최고로 여기는 우리가 천생연분인가 싶다. 그러니 일주일에 하루는 더러운 도심지에서 손을 잡고 산책하다가 밥 한 끼 사자는 내 부탁을 안 들어줄 리 없다.   
  이상 내가 복권에 당첨된다면 살고 싶은 삶이다. 나는 거창한 꿈을 바란 적도 없고, 소거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도 없다. 다만 내가 살고 싶은 하루가 있다. 그 하루를 어떻게 살지 그림을 꾸준히 그려 넣는다. 그림에는 12년 전에는 집이었지만, 점점 꽃도 생기고 텃밭도 생기고 사람도 생겼다.
  내가 꿈꾸는 하루는 획득해야 할 아이템이 아니라 내가 잊지 말고 살아야 할 가치이다. 나는 그 가치들을 매일 치열한 삶 속에 녹여내고 있다. 크림이와 산책 할 때, 가족과 주말을 보낼 때, 민원인을 대할 때 그렇다. 오늘의 내가 꿈꾸는 미래가 다시 오늘이 된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이루어지면 기쁠 것이고 못 이룬다 해서 아쉬울 것 없다. 매일 나는 미래를 산다.





宜爾置之 丘壑之中 (네가 죽어 버려질 곳은 저 개굴창이라.) -김시습-

  높은 분들을 모시고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실무자들은 서울 손님의 방문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분주해졌고 격에 맞는 식당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식당은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적당한 사회적 거리를 지키며 대화를 나누기에 불편함이 없는 곳으로 정해졌다. 미리 세팅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정해진 자리에 미리 앉아서 손님을 기다렸다. 혹시나 실수하지는 않을까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진솔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러 온다는 명분이 무색하게도 솔직한 대화를 나눌 것이라 기대할 만큼 순진한 사람은 없다. 실무자들은 완벽하게 정돈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부지런히 높은 분의 동선을 파악했고, 그가 마땅히 들어야 할 말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
  손님이 들어왔다. 우리는 일동 기립했다. 높은 분은 천천히 악수를 청하며 인간 바리케이드를 지나 정해진 자리로 안내받았다. 잠시 안부를 나누고 환담을 나누다가 손님은 빈 물 잔을 들었다.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잽싸게 물병을 쥐고 몸을 앞으로 굽혀 물 잔에 물을 따랐다. 손님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의전을 너무 잘하시네요.”
  그것이 ‘의전’이라는 단어를 처음 인지한 순간이었다. 그전까지는 각을 맞춰 진열해 놓은 회의 서류와 검은색 펜대, 그 위에 가지런히 놓인 삼 색의 플러스펜과 새로 깎은 반듯한 연필과 깨끗한 지우개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틀에 박힌 순서에 따라 격을 갖춘 행사를 진행하면서도 왜 꼭 높은 분이 제일 먼저 주례사 같은 한 말씀을 해야 하는지, 그 한 말씀을 위해 왜 실무자는 밤을 새워 인사말을 작성해야 하는지, 높은 분이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정해진 자리에 앉기까지 왜 다 그를 보좌하는 네댓 명의 사람이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의전’이란 넓게 말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개개인이 지켜야 할 건전한 상식에 입각한 예의범절(사교 의례)이라고 한다.(출처: 외교부 홈페이지) 상식이 변하듯, 의전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서울시 의전 실무 편람에 따르면 의전의 양상은 간소화되고, 시민 참여를 장려하여 행사가 내실화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국가 내외의 공식행사에서의 격을 맞출 때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하는 것은 법령에서 정한 직위에 따른 의전서열이다. 일반 국민이 직관적으로 알고 있듯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재소장, 국무총리 등의 순서로 서열이 정해져 있고, 그 외에 공무원들은 계급과 직위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행사를 진행하다 보면 현실적으로 높은 공적 지위는 대부분이 남성들이 점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비슷한 지위라면 여성이 높은 예우를 받겠지만 이는 여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신사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라 실제 행사에서 여성이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여성 중에서도 미혼자는 미망인보다 낮고, 미망인은 기혼자보다 낮다. 그리고 기혼 부인 간의 서열은 남편을 따른다. 결과적으로 공직의 낮은 곳에는 언제나, 미혼의, 여성이 있다.
  직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공직의 가장 낮은 계급인 9급, 10급에 수많은 남성들이 있다. 다만 의전서열은 실제로는 국민이 상식적이라고 합의한 정서가 반영된 것이고, 아직도 공직사회에서는 여성이 더 낮은 위치에 있다는 사회적 함의가 드러나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는 말이다.
  나는 미혼 여성으로서 가장 낮은 계급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고, 미혼 여성으로서 겪어야 할 장애물들이 적지 않았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내용으로 보고를 해도 계급이 높은 남성은 결재를 해주고 나에게는 소리를 버럭 지른다던가, 내가 성과를 내면 기어코 못한 점을 찾아내어 회의시간에 혼을 내고 동료 남성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않아도 칭찬일색 이라던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학벌로 잘난 척하지 말라며 무안을 준다던가, 여성과 함께 일하기 힘든 점을 토로하며 여직원에게 대놓고 싫은 티를 낸다거나, 여자 직원을 팀원으로 받기 싫어 인사철에 다른 남자 직원이 오도록 손을 쓴다거나.. 내가 겪은 것만 말해도 무수히 많은 사례가 떠오른다.
  여성으로서 가장 힘든 점은 단연 성인식 문제이다. 기관마다, 지역마다 성인지 감수성의 수준은 사뭇 다르다. 어떤 곳에서는 하위 직원에게 연인과의 잠자리 문제나 성적 농담을 던지고도 동료들의 침묵으로 무사히 공직생활을 이어가는 남성들이 있고, 어떤 곳에서는 반가운 마음에 여직원의 손목 한 번 잡았다가도 국가적 비난에 시달리는 남성도 있다. 어떤 곳에서는 여성 상사가 남성 하급자에게 한 성희롱 발언도 공론화되어 법의 처분을 받고, 어떤 곳에서는 같은 여성이 피해자 여성을 따돌리고 괴롭히기도 한다.
  공직사회의 성인식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리 잘 봐주어도 아직은 멀었다. 어느 공식행사를 빙자한 회식 자리에서 어린 여직원들이 관서장을 둘러싸고 앉아 애교스럽고, 활기차게 분위기를 띄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다음날 팀장은 여직원들에게 ‘너희들 덕분에 서장님이 기분이 좋아 보였다.’며 고생했다는 말을 전했고, 낮은 계급으로 팀장직을 꿰찼던 그는 그 해 승진했다. 여성 후배들의 웃음소리가 그의 승진에 얼마나 일조했겠냐만 승진을 앞두고 있는 입장에서 인사권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고 싶어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더 나아가 성 비위라도 일어나면 피해자는 그의 존재를 불편해하는 공직사회에서 완전히 분리된다. 가, 피해자의 이분법이라면 차라리 나을 것이다. 사람들은 피해자를 지켜보고 말을 옮기는 감시망을 만들어내 끊임없이 진의를 파헤치는 방식으로 그를 처벌한다.
  나는 조직의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여성이었고, 성희롱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보이는 비난과 보이지 않는 공격을 받았다. 진실은 의혹들로 오염되었고, 나는 가해자의 앞길을 막은 악랄한 인간이 되어있었다. 어떤 여자 선배는 가해자가 힘이 없었기 때문에 드러나지 말아야 할 것이 드러났다며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결계 친 듯 나를 피했다. ‘나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라며 조직 내 이질적 존재에 대한 공감대가 무르익었을 때 더 침묵하지 못한 것에 대해 비난이 일었고, ‘가해자가 불쌍하다’며 탄원서를 써내어 자신들은 ‘동지애가 없는’ 나와는 다르다는 선언을 한 후 종국에는 나와 전혀 관련 없는 일들도 나의 이름으로 채색되었다. 주홍글씨는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내 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맥락 없이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다’라며 위로하거나, 섣불리 내게 있었던 일을 변명하며 뒤에서 들리는 소문들을 악의 없이 전해주었다.
  비단 성 비위만의 문제는 아니다. 조직 내에서 부당함을 주장하는 모든 목소리는 축소되고, 비틀리고, 짓밟힌다. 여기에는 법과 규칙보다 더 상위의 도덕이 있다. 바로 ‘다수’라는 도덕이다. 두 달간 근무시간에 독서실에서 승진 시험 공부를 하는 건 허용된다. 허위로 초과근무수당을 받아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동료의 비위는 알아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의식적으로 말하지 않는 행위는 기표의 한 형식이다. 다시 말해, 직무유기를 문제 삼는 것은 직무유기보다 더 나쁘고 성 비위를 문제 삼는 것은 성 비위보다 더 나쁘다.
  세평은 언제나 능력치보다 우선한다. 인사 공고는 형식적으로 게시판에 올렸다가 금방 내린다. 자기소개서와 업무추진계획서를 내도 인사권자는 읽지 않는다.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인사권자는 팀원들과의 화합을 빌미로 알음알음 술자리에서, 흡연실에서 추천받은 사람을 뽑는다. 막판에 더 높은 인사권자가 손을 대지 않는다면, 즉 그가 꽂아 넣는 사람만 없다면 자리는 그렇게 정해진다. 철저히 조직의 일원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평가에서 밀리고, 자리에서 밀린다. ‘다수’의 도덕은 이렇게 작동한다. 그리고 이 조직에서 ‘다수’는 단연 군필 남성들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오랜 고민 끝에 복직했다. 팀원으로 나를 받지 않겠다고 버티던 사람들과 인사는 하고 지낸다. 나를 피해자로 조사하던 사람과는 데면데면하게 지낸다. 몇몇과는 말도 섞지 않고 서로 없는 듯 산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들과 마주치면 나는 내가 버려졌던 그때의 감각을 느낀다. 심장이 조여오고 내 존재가 쪼그라들고 다시 버려진다. 내가 감각으로 경험한 순간들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과는 별개로 감각은 지긋지긋하게 오래 남아 이름 없는 울분이 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악의보다 더 큰 악은 무지이고,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 사람은 곧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동료애로 무장하여 아무것도 보지 않은 척 텅 빈말만 반복하면 무사히 살아남은 사람은 무심코 미사일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과 같다. 승승장구하고 저 잘났다고 떠들어대며 어디에 손가락을 올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울분이 송곳이 되어 그들의 손가락을 응징하기를 바란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다시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나와 같은 선택을 하고자 한다면 소수자가 되는 선택은 감내해야 할 것이 많다고 말해 줄 것이다. 내가 느꼈던 솔직한 감정과 다시 일어서기 위해 싸워왔던 그 요약할 수 없는 지질함을 구구절절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목소리를 내기로 한 선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타인들의 동조와 응원’도 아니고 ‘시원섭섭한 복수’도 아니라고. 세상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이 없고 상식적으로 명약관화한 일도 지지부진하게 처리될 것이며 헝겊을 덧대어 구멍을 막듯 타인의 성급한 위로는 자신을 더 외롭게 할 것이라고. ‘진실’로 나아가는 길은 무진장 고독할 것이지만 그래도 그 선택을 하겠다면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떳떳함’ 뿐이라고. 당신은 허위를 적발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던 진실한 감정을 발견할 것이고, 비로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구별하게 될 거라고. 타인에게 쉬이 주눅 들고 자신에게 모질었던 과거와 화해하게 될 것이라고.
  희망이 없다,는 기분을 자주 느낀다. ‘어차피 내가 죽어 버려질 곳은 저 개굴창’이라 망가지고 훼손된 채 살아도 살만하다는 그 희망이 보고 싶어 나는 아직 여기 있다. 그 희망이 없다면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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