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자히르> 읽고
<오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오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2009년도인가, 이 책을 읽고 친구에게
이런 게 진짜 사랑인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이해받지 못해도 상처받지 않는다.
당신이 운이 좋다면, 언젠가는 나의 말을 이해할 테니까.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는 힘이다. 사랑은 끊임없는 생성과 파괴를 몰고 온다.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고, 일상을 유지하던 관성을 뒤흔들고, 통제하고 싶은 욕망과 환멸-절망-낙담을 거쳐가서, 모든 기대와 환상을 포기하라고 명한다. 사랑의 결과를 예측하는 건 삶에 대한 오만이다. 기쁨만 있는 안온한 미래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한다.
혼란과 흔들림, 예측불가능, 상처받을 가능성, 일상의 균열.. 이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자신에게 가장 깊이 가 닿는 길이다.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고통스러운 속박에서 해방되는 마음의 순례길이다. 서로를 붙잡아두는 애착과 미망에서 벗어나 오로지 삶의 한가운데에서 삶을 음미하는 길이다.
사랑을 구속하여 안락함에 가두려 할 때, 존재는 생동의 빛을 잃는다. 대화는 사라지고, 동어반복이 계속된다. 엄밀히 말하면 위험을 무릅쓰지 않더라도 위험은 있다. 삶이 소진되고 빛바래는 위험, 영원히 자신을 모르고 살게 될 위험, 유약한 선택을 후회할 위험.
사랑하려는 자는 지금까지의 관습과 믿음이 깨지고 흔들리더라도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고통은 소망과 환상에서 오는 것임을 이해하고 원망해서는 안된다. 나의 수고로움을 보상받으려는 생각 말고 그의 존재가 무한한 잠재력으로 꽃 피우기를, 그리워하는 운명에도 절망하지 않고 내면의 순례길을 부지런히 걸어가기를, 사랑의 에너지가 흐르고 싶은 대로 흐르도록 아무것도 붙잡지 않기를, 원할 줄 알아야 한다.
자 이제 당신
사랑할 준비가 되었는가.
ㅡ
(57) 나는 예전에 연애나 결혼생활에서 겪었던 좌절이 상대 여자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오직 나 자신의 번민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에스테르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그녀에게 가 닿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한 유일한 여자였다.
(129)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는 신곡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인간이 진실한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는 날, 잘 짜여 있던 모든 것은 혼란에 빠지고 확고한 진실로 여겨졌던 것들은 모두 뒤흔들릴 것이다.'
인간이 사랑하는 법에 눈뜰 때, 비로소 참된 세상이 이루어집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사랑을 안다고 생각하면서 살겠지만, 사랑을 있는 그대로 대면할 용기는 갖지 못할 겁니다.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는 힘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통제하려 할 때, 그것은 우리를 파괴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가두려 할 때.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가 사랑을 이해하려 할 때, 사랑은 우리를 방황과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
(197)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가장 중요한 건 대화예요. 하지만 이젠 아무도 그런 것에 관심을 갖지 않아요. 마주 앉아 자기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 말이에요. 사람들은 극장에 가고, 영화관에 가고, 텔레비전을 보고,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죠. 하지만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아요.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전사들이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시대로 돌아가야 해요.'
(228) 모든 남자와 여자는 사랑이라는, 우주를 만든 최초의 질료인 그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다. 이 에너지는 조작될 수 없고, 우리를 부드럽게 이끌어가고, 우리가 삶에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 에너지의 방향을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바꾸려고 하면 우리는 끝내 절망하고, 낙담하고,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 에너지는 자유롭고 길들지 않는 야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나 사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실상은 사랑이라는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대신, 우리가 그럴 거라고 상상하는 세상에 끼워 맞추려고 그 에너지를 소진해 가며 고통스러운데도 말이다.
(417) 왜 선생의 수고가 사랑하는 사람의 복종과 감사, 혹은 인정으로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선생께서 이곳에 온 것은 아내의 사랑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선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442) 마지막으로 그는 말했어. 내가 상상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날 사랑해 주기를 원할 때, 사랑이 통제당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롭게 날 이끌어가도록 두지 않을 때 고통이 자라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