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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N페르소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by 김반장

< #젊은베르테르의슬픔 >, #괴테

**갈 곳 없는 에로스의 죽음**

일생은 한낱 꿈이고, 인간행동은 생존 욕구에 불과하다던 한 청년이 발견한 마음속의 세계가 있다. 문명의 위계와 역할극에서 한 걸음 멀어져 막연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곳, 세상의 감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 그곳에서 그는 사랑하는 로테를 만났다.
그녀를 향한 남편의 사소한 질책에도 그는 슬퍼했다. 그에게 그녀는 아내의 역할, 어머니의 역할로만 축소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속수무책으로 사랑의 열병에 빠져들었다. 그가 스스로를 놓을 때까지도 희망의 그림자는 그의 목을 죄었다.
베르테르의 사랑은 동일시의 욕망이자 자신에게서 확장된 무한대의 에로스다. 에로스는 결합의 욕구로 독점욕과 질투를 생산한다. 이토록 사랑은 미친 망아지와도 같아서 사람들의 멸시를 받는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고, 진정한 자존감을 찾아 건강하게 살아남는다고 한다. 분명 날뛰는 망아지에게 치여보지 않았으니 하는 말이겠지.
괴테는 자신의 경험을 담아 이 소설을 쓰고 자살충동에서 벗어났다. 어쩌면 괴테가 죽인 것은 베르테르가 아니라 젊은 날의 감상과 희망이었을 것이다. 희망을 죽이지 못하면 사람이 죽기도 한다. 아픔이 시절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은 아무래도 절망적이다. 그래서 뭇 청춘들이 베르테르와 함께 죽지 않았을까.
희망이 없었으면 절망도 없었을 테고, 희열이 없었다면 불행도 없었을 테다.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지만 이미 사랑해 버린 이상 출구는 없다. 희망 없이, 희열 없이,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날뛰는 정동에 이불을 덮어 까무룩 잠들게 할 수 있는 밤이 있다면 내게 왔으면 좋겠다.

요즘 사랑 때문에 죽는다는 신고가 그렇게 많다.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미워할 수도 없어 애꿎은 사랑 탓만 하지만, 어떤 부분은 오래 안타까워 마음 한편이 괴롭다. 사람에 대해 희망도 없고 기대도 없다 말은 해도 여전히, 누구보다 희망에 취약한 사람은 나인 것만 같다.



- 1771년 6월 16일 편지
(로테와의 첫 만남, 매혹적인 광경)
그녀의 암호와도 같은 이 한마디 말은 여러 가지 감상의 물결을 내 전신에 쏟아부었으며, 나는 그 속에 완전히 빠져버리고 말았다.

- 1771년 8월 18일 편지
인간에게 희열을 가져다주는 것이 오히려 불행함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과연 변할 수 없는 것일까?

- 1772년 10월 19일 편지
아, 이 공허함이여! 내 가슴속에서 뼈저리게 느껴지는 이 무시무시한 공허여! 자꾸만 생각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네. 단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이 가슴으로 그녀를 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이 공허는 완전히 메워질 거라고 나는 가끔 생각하네.

- 1772년 12월 6일 편지
어디를 가든 그녀의 모습이 따라다닌다네. 자나 깨나 그녀의 그림자가 내 마음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다네. 눈을 감으면 여기 이마 부근, 내면의 시력이 집중되는 꽃에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나타난다네. 바로 여기에! 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네. 눈을 감으면 언제나 그곳에 생생하게 살아 있지. 마치 바다처럼, 심연처럼, 두 눈동자는 내 앞에, 내 속에 편안히 깃들고 이 이마를 온갖 감각에 넘치게 한다네.

- 편집자가 독자에게
이렇게 해서 그는 타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느낌, 사고, 끝없는 정열에 몸을 맡기고, 언제나 제자리걸음일 뿐인 사랑하는 상냥한 여성과의 슬픈 교제만을 계속하면서 그녀의 평화로움까지도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거의 모든 정력을 목적도 없이, 전망도 없이 낭비하며 점점 슬픈 파국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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