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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는 너에게

누구보다 너의 마음을 알아서

by 아드리셋 Mar 13. 2025


회장선거라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 큰애의 마음속을 여전히 잘 모른다. 모르지만 안다. 정말로 하기 싫어서 싫다는 게 아니라, 하고는 싶은데 떨어지는 게 걱정되고 싫어서 스스로 밀어내는 이 아이. 걱정핑은 걱정핑을 낳았다.






5학년 때 처음으로 학급 부회장에 당선되었던 날. 아이는 설레는 맘을 숨기지 못할 정도로 기뻐했다. 본인은 숨긴다고 숨긴 거 같은데 엄마는 다 알지! 하교 후 그냥도 아니고 반드시 '서프라이즈'로 내게 알려주려고 소식을 꼭꼭 숨기고 있었던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도 알려드리자 했더니 아주 은근히 어깨뽕이 잔뜩 들어갔던 아이를 기억한다. 그날 아침만 해도 절대 싫다더니 무슨 심경의 변화였던지 후보자로 나갔던 아이의 용기를 기억한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첫 회장선거를 앞둔 아이에게 한번 나가보지 않겠냐 권유했더니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이 나갈 사람 손 들어보라 하셨는데, 세 명 뽑는데 하겠다는 애가 딱 세 명 있더라고. 한 명은 글씨도 엄청 잘 쓰고 딱 봐도 이미지가 회장 하게 생겼어. 또 한 명은 여자앤데, 요즘 거의 여자는 여자 뽑고 남자는 남자 뽑아서. 우리반이 여자가 더 많아서 어차피 걔가 회장 될걸."


하...... 이놈의 자식이 회장선거 한번 나가보랬더니 뭔 계산기를 두들기고 앉아있네?

그럼 또 기어이 잔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 글씨랑 회장이 뭔 상관이야? 너도 생긴 건 회장 하게 생겼잖아. 그리고 여자애가 남자애 뽑을지 그걸 어찌 알겠어!"


듣는 둥 마는 둥, 아 몰라 간다~~ 하고 쿨하게 학원으로 떠나는 내 아들놈........

태연하게 잔소리를 퍼부었지만 사실 생각했다.


'나도 왕년에 계산기 좀 두들겼지.....'


교실을 스캔하고 인기 좀 있을만한 애가 있으면 선거에 안 나가고, 쟤는 내가 이기겠다 판단이 서면 나가고. 몇 명이나 후보로 나갈지 조사도 좀 하고. 떨어지면 쪽팔리겠지 걱정을 열 번 정도 하고. 자체적으로 2학기에 나가는 게 유리할까를 혼자 막 고민하며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던 학창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아쉽다.

얘는 나처럼 안 그랬으면, 하는 바람.

아이는 나보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지더라도 쪽팔리더라도 일단 한번 도전해 보는 교과서 같은 인생을 살길 바라는 꼰대의 마음.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 성향을 인정해 주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자식을 볼 때마다 제일 크게 느낀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드는 첫째에게 마음을 전했다.


"아까 너한테 계산기 두들긴다고 잔소리했지만 사실 엄마도 그랬거든. 너는 후회가 적은 인생을 살길 바래서 자꾸 말하게 돼. 너무너무 그럴 수 있다는 걸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 사실은."


다정하진 못한 엄마라 무심한 듯, 쑥스럽게, 대충, 진지하지 않게 던진 말이지만 조심히 눌러 담은 나의 진심. 너를 다그치지만 널 이해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 나의 굿나잇인사.



등교 전, 간단한 아침등교 전, 간단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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