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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Mar 29. 2019

길바닥에서 낳을뻔한 셋째 출산기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2017년 10월 19일 한밤 중.

드디어 새로운(마지막) 아기를 만났다.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날 밤(예정일 +2일, 유도분만 하루 전)의 기억과 깨달음을 풀어본다.




담당 선생님은 후기 진료 때마다 말씀하셨다.

"택시에서 애 낳을 뻔했다는 소리 들어보셨죠? 셋째는 진통이 오면 무조건!! 빨리!! 병원으로 오는 게 중요해요!!"

나는 으레 '네~ 네~' 하고 대답만 했지,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그런 위급한 상황이 나한테 닥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AM 2:20

진통인가? 느낌이 싸했다. 잠에서 갑자기 깼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순간  쥐어짜는 듯이 아팠다. 남편과 아이들은 깊이 잠들어 있었고, 나는 그간의 노하우로(?) 진통 간격이나 체크해 봐야겠다며 누워서 버텼다.


AM 2:55

8~9분 간격이었던 진통이 급격하게 4~5분 간격으로 줄어들었다. 그제야 '아, 이거 너무 오래 참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자는 남편을 깨웠다. 화장실에 가서 확인하니 이미 피...피....피가!!!! 그때부터 오들오들 공포에 휩싸였다. 노하우는 개뿔... 진작 화장실부터 가볼 걸!!


AM 3:05

어쩌나. 내 옆엔, 애미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게 뭐냐 쿨쿨 자고 있는 '두 아이들'이 있었다. 남편은 애들이 여기서 자고 있는 게 제일 좋겠다며 장모님을 후다닥 모셔오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피를 보고도 남편을 그렇게 보냈다는 게 제정신은 확실히 아니었던 것 같다. 남편이 집을 나선 후 1분 만에 '이거 아니다' 하는 생각이 빡!!! 들었다. 남편한테 전화를 걸어 말했다. 그냥 애들 태워서 같이 병원으로 가자고, 엄마도 그쪽에 콜택시 불러드리고 병원으로 바로 오시라 하자고. 그렇게 우리는 자는 애를 한 명은 안고 한 명은 유모차에 태우고 출산 가방을 둘러맨 채 집을 나섰다. 진통이 멈출 때 유모차를 겨우겨우 밀면서 주차장까지 오만상을 쓰면서 갔다...


AM 3:15

병원에 도착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밀려오는 진통을 이를 악물고 참았다. '버텨냈다'라는 말이 더 맞겠다. 사실 가장 참기 힘들었던 건, 배가 아픈 진통 자체보다 금방이라도 아기가 쑤욱 하고 빠져나올 것 같은 그 느낌이었다!! 달리는 고속버스에서 급똥 신호를 참아내는 것이 더 쉬울 것만 같았다. 택시에서 애 낳는다는 선생님의 말이 뭔지 나는 그날 밤 온몸으로 체감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옆에서 나를 지켜보는 남편도 내가 굉장히 위태로워 보였다고 했다. 그는 두려움 속에서 시속140~150을 밟았다고 고백했다.(10분만에 올 거리가 아닌데...) 속도를 1도 느끼지 못했을 만큼 나는 그 길바닥 위에서 무서웠고 고통스러웠다. 딱 맞춰 병원에 도착해준 엄마한테 고마웠고, 차에서 자는 애들을 맡기고 분만실로 발을 질질 끌며 올라갔다.


AM 3:17

분만침대 위로 용을 써서 올라갔다. 내 입은 무통주사를 놔달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내 뇌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넌 이미 못 맞을 거란 걸!!! 그렇게 내진을 하자마자 '다 열려서 무통 못 맞아요. 바로 힘주기 할게요!!'라는 말이 들려왔고, 극한의 '생짜 분만' 고통이 찾아왔다.(제모가 뭐예요 관장이 뭐예요) 침대 손잡이를 잡으라는데 손잡이도 못 찾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남편이 들어온 줄도 몰랐는데, 남편분 산모 고개 드는 거 도와주시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낳은 거 같은데 아직도 안 나왔다 하고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AM 3:37

"어머, 어머, 애기 크다!"

이런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이제 끝났구나. 다 이루었다..' 안도감이 들었다. 병원으로 가는 길부터 체감시간은 정말 길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 모든 게 새벽 3시부터 3시 37분에 일어난 일이었던 거다. 실화인가!!!                                                

그렇게 나는 말로만 듣던 '길바닥 출산'의 긴장감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본격 '아들 셋 엄마'로 등판하게 되었다.



어깨가 무거운 아빠


이번엔 후처치까지 유난히 더 아팠다. 덜덜 떨면서 모든 과정을 마치니 새벽 네시가 좀 넘었다. 분만침대에 누워서 끙끙 앓으며 남편과 시간을 좀 보낸 뒤, 남편과 엄마는 교대를 하고 나는 입원실로 옮겨갔다. 그 뒤로 2박 3일. 아이들하고 같이 입원실에 있거나 조리원에서 함께 잔다는 산모들을 나는 존경한다. 나는.. 못 하겠다!!!!!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인력을 총동원해서 천둥벌거숭이 두 놈을 잘 케어할 수 있었다.


입원실에서의 3일은 회음부 통증에 쏟아지는 오로, 훗배앓이, 수시로 간호사들이 들어와서 엉덩이 주사를 놓고 가는 바람에 마구 생기는 시퍼런 멍 자국까지, 두 번을 지나왔지만 여전히 견디기 쉽지 않은 과정이 남아있었다. 회음부 통증은 첫째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지나갔지만, 훗배앓이는 소문대로 낳을수록 심해지는 건지 참아내는데 머리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리고 조리원에 입성했다.

사람들은 나를 거의 '천연기념물' 보듯이 했다. 셋째 엄마라는데 1차 놀람, 신상을 털어 나이를 물어보곤 2차 놀람, 위에 애들 성별이 뭐냐는 질문에 대답하면 3차 놀람, 이 몸뚱이에서 자연분만이라 하면 4차 놀람 대잔치였다. 이 '마지막' 아기를 낳고 나선 나 스스로도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그래도 된다!!!!ㅠㅠ)                                                                                                                                                                                                                                                                                                                                                                                       

이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조리원에서 엄마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느끼지만, 세상에 참 당연한 건 없다. 아기가 막달이 됐다고 내려오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고, 자리를 잘 잡는 거 하나도 당연한 게 아니다. 둘째 셋째라고 진행이 빠른 것도, 유도분만에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첫째 자연분만했다고 그다음에도 자연분만을 할 수 있다는 것. 당연한 게 아니다. 천 번 만 번을 감사해도 모자랄 일들이다. 하나하나가 기적이다. 돈 없다 돈 없다 해도 어쨌든 조리원에 들어올 돈과 여건이 된다는 거, 이것도 기적이 아닌가. 조리원에 있을 때마다 마음 깊이 드는 생각이다.

                                           





두 아이를 키우며 한창 제대로 미쳐가다가 여기 들어와서인지, 둘째 낳고 조리원에 왔을 때는 좀 외롭기도 하고 우울감이 오락가락했었는데 셋째를 낳고 나서는 그저 개꿀.... 세 아이를 키우면서는(정확히는 세 아들) 좀 더 사랑스러운 아내와 엄마가 되고 다.(꿈은 꿔볼 수 있잖아ㅠㅠ)

어떻게 지낼지, 막내를 어디서 재울지 아무 계획이 없는 상태로 조리원 천국을 누렸다. 11월 3일이 퇴실이니 11월 2일에 고민해 보자며 미루고 미루는 나란 녀자. 대단하다!!!


마지막 아기와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 다섯 식구!(덜덜덜 사실은 떨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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