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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Sep 23. 2019

'나를 닮은 아이'에게 느끼는 양가감정

안쓰럽기도, 밉기도 한 너... 애증일까



** 이 글은 kbs 라디오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금희입니다'에 소개되었습니다.


나는 세 아이의 엄마다. 그중 여덟 살 난 첫째 아들은 나를 가장 많이 닮았다. 얼굴이 비슷하다는 게 아니라, 성격이나 행동이 나를 쏙 빼닮았다는 말이다.
 
어제저녁, 길에서 옆집 아이 엄마를 만났다. 아이에게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해주시는데 아들은 모기소리 만하게 아무도 못 듣는 인사를 했다. ‘어디 갔다 오니?’ 하는 질문에는 몸을 배배 꼬며 대답을 피했다.
“인사 좀 큰소리로 해!”
“어른이 물어보시면 대답 좀 하자.”
나는, 어렸을 적 엄마가 나한테 했던 잔소리를 그대로 내 아이에게 하고야 말았다.
 
아이는 입맛도 까다롭다. 보리차를 주면 생수를 달라하고, 미지근한 물을 주면 찬물을 달라 하고. 김치도 잎사귀를 주면 아삭한 줄기만 달라 하고, 목살을 구운 날엔 기름과 살코기의 비중이 적절한지 늘 확인한다. 많이 먹기라도 하면 내 노동이 아깝지나 않을 텐데, 아이는 늘 몇 조각 주워 먹다 만다. 엄마는 나한테, 나중에 꼭 너 같은 딸 낳으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 간절함이 통한 건지 나는 딸은 아니지만 나 같은 아들을 낳아버렸다!
 
문제는 나를 닮은 이 아이에게 유독 화가 많이 난다는 거다. 혼자서도 잘 노는 둘째와는 달리 늘 엄마를 찾고 사람에게 치대는 아이, 약을 먹을 때마다 무슨 향이냐 몇 밀리냐 물으면서 울며불며 먹는 예민한 이 아이를 볼 때마다, 안쓰러울 때도 있지만 미운 마음이 더 자주 드는 게 사실이다.
 
얼마 전 친정 아빠가 말했다.
“가만 보면 넌 둘째 때문에 힘들다 힘들다 해도, 둘째 보는 눈빛이 더 사랑스럽더라. 걔는 니가 하지 못한 걸 하니까 예쁜 거야. 잔뜩 화나게 해 놓고도 쪼르르 와서 알랑방귀를 뀌고 뽀뽀를 하고. 게다가 가리는 거 없이 밥 잘 먹고. 원래 자기를 닮은 자식이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거다. 내 친구들도 보니까 그렇더라고. 애증이랄까... 그래도 너무 티 내지는 말고.”
  
나이가 어리니까 더 귀여워서 그렇겠지 싶으면서도, 정말 아빠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왜일까. 자존감의 문제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러나저러나 내 첫사랑인 우리 첫째. 가장 많이 이해하면서도 무조건 따뜻하게 품기도 쉽지 않은 존재. 앞으로 나는 이 아이에게서 또 얼마나 많은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까. 그럴 때마다 내가 어떤 감정을 품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더 따뜻한 눈으로 아들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나를 닮은 이 아이가 잘 커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를 닮은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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