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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Aug 14. 2019

놀이터 멤버 찾아 삼만리

친구 한 명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한 엄마의 애씀은 어디까지?


첫째 아이가 방학을 한 뒤로 옆 동에 사는 친구를 부쩍 자주 찾는다.
“엄마, 나 지혁이랑 놀면 안 돼?”
“엄마, 지금 지혁이네 집에 가면 안 돼?”
“엄마, 지혁이 지금 놀이터에 나오라고 하면 안 돼?”

다행히 지혁이 엄마와도 불편한 사이는 아니라, ‘그래, 전화해서 물어보마’ 하고 거의 매일 아니 하루에도 두세 번 먼저 연락을 하고 있다.
“언니, 지혁이 지금 뭐 해?”
“언니, 지혁이 지금 놀이터 보낼래?”

그녀와 내가 재깍재깍 연락이 닿고 둘이(아니 정확히는 넷이) 시간과 마음이 맞으면 다행이었다. 곧장 아파트 놀이터로 출동만 하면 모든 상황은 종료된다. 문제는, 어른들끼리의 연락이 원활하지 않을 때다. 아이가 내 옆에서 끊임없이 성화인 것은 자명한 일이다.
“엄마, 연락 아직 안 왔어?”
“아니 그럼 전화해보면 되잖아.”
“지혁이 엄마가 지혁이한테 말하는 걸 까먹은 거 아닐까?”
또 뭔가를 구구절절 설명해줘야 하는 이런 상황. 나는 귀찮음이 잔뜩 묻은 말투로 입을 연다.
“친구가 지금은 혼자 놀고 싶을 수도 있고 지혁이 엄마가 지혁이를 땡볕에 안 내보내고 싶을 수도 있어. 그리고 지혁이 엄마가 다른 일로 바빠 핸드폰 확인을 못 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독촉하지 말고 일단 좀 기다릴래?”

지난주도 그랬다. 아들은 나랑 보드게임을 하고 난 뒤 또 지혁이 엄마한테 전화를 해보라며 나를 닦달했다. 나는 전화를 걸 수 없었다. ‘같이 놀고 싶다는 니 뜻을 아까 문자로 전달했고 지혁이 방과 후 갔다는 답장을 받았으니, 돌아와서 걔가 놀 생각 있으면 연락 올 거야’라고 말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우리는 지혁이가 그날 하교 후 집에서 내내 독후활동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오후 늦게야 알 수 있었다. 하마터면 요즘 말로 ‘눈새’가 될 뻔했다. 우리 애만 친구에 목을 매나? 언니는 내 연락이 부담스럽나? 죄 없는 아이에게 그만 좀 하라고 쏘아붙였다.

“너도 좀 혼자 놀거나 책도 좀 읽고 그래라 좀!”

나는 그날 무엇 때문에 속이 상했던 걸까. 나한테 연락 줄 의무도 없는 지혁이 엄마를 탓하고 싶었던 건지, 껌딱지처럼 내 옆에 붙어서 여기 연락해라 저기 연락해라 염불만 외는 내 아들에 질렸던 건지. 다른 애들은 독후활동까지 하는데 내 아들은 책이라곤 쳐다도 안 본다는 엄한 포인트에서였을까. '까짓 거 엄마랑 땅 파자’며 열 일 제치고 아이와 나가서 놀아주지 못하는 내 모습이 싫었을 수도 있겠다. 친구 한 명 만나게 해주는 게 뭐라고 이렇게 머리가 아플 일인가!






90년대 초반, 나의 여덟 살 언저리 그 시절. 지금의 친정집 아파트 놀이터는 초록색 우레탄 바닥이 아닌 모래 바닥 놀이터였다. 나는 그곳에서 파브르 곤충기 그림책에서 봤던 쇠똥구리를 떠올리며 흙을 둥글게 뭉치고 또 뭉쳤다. 바닥 표면의 모래는 하얗고 큰 알갱이라 잘 뭉쳐지지 않았지만, 땅을 좀 파다 보면 물기를 머금어 촉촉하고 잘 뭉쳐지는 흙이 나왔다. 부족하다 싶으면 경비실 옆 수돗가에서 물을 담아와 부으면 그만이었다. 동글동글하게 뭉쳐진 작은 흙덩이는 한 번은 책 속 쇠똥구리의 것이었다가 어느 순간 근사한 요리로 변하기도 했다. 흰모래를 설탕 가루라며 동그란 덩어리 위에 살살살 뿌려줄 때의 진지함은, 최현석 셰프가 허세를 담아 소금을 치는 모습에 뒤지지 않았다. 흙놀이를 안 하는 날에는 아스팔트 바닥으로 나가 분필로 그림을 그려 땅따먹기를 자주 했다. 위험한 지상 주차장이었지만, 비교적 차가 적게 다니는 아파트 뒤편의 주차장에서 알아서 차를 피해 가며 놀이를 즐겼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 옆에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가끔은 서로의 집에 놀러 오고 놀러 가기도 했다. 사전에 엄마들끼리 어떤 연락이 있었는지는 글쎄, 모르겠다. 엄마들끼리 더 친하고, 같은 통로처럼 거리가 아주 가까운 친구 집일 경우 더 자주 편하게 오고 갔던 면은 있다. 집에 혼자 있는 걸 무서워해 엄마가 잠깐 시장 갈 시간조차 내주지 않았던 나 때문에 엄마는 9층에 사는 유경이를 자주 우리 집에 불렀다. 나 또한 유경이 집에 종종 내려갔고, 어떤 날은 아줌마가 맛있게 차려주신 저녁까지 얻어먹고 느지막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낮에 놀이터에 나가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었다. 가끔은 전화예절을 숙지한 후 집전화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친구의 부모님 그리고 친구와 직접 통화하는 일은 늘 설렜다. 한 명을 만나면 그 친구 손을 잡고 ‘우리 유진이 불러올까?’ 그렇게 부르고 데려가며 알아서 살길과 놀길을 찾아갔다. 그때의 우리 엄마와 친구들 엄마는 어땠을까. 지금처럼 카카오톡으로 바로, ‘저희 애 때문에 죄송해요. 폐를 끼치네요.’ 하고 간편하게 사과를 주고받을 수도 없던 시절, 혹여 표현은 못 하고 속으로만 서로 볼멘소리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가 말했다.
“엄마, 지혁이 안 되면 은성이네 엄마한테 전화해 줄 수 있어?”

나는 은성이 엄마와 친하지도 않고 전화번호도 모른다. 이래서 애들 친구 만들어주려면 엄마들끼리 친해져야 한다고 하는 건가? 학기초부터 엄마들 번호를 열심히 따고 커피 모임에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하던 건영이 엄마가 최후 승리자인 걸까? 오늘도 지혁이 엄마한테 먼저 연락하자니 눈치가 보이고, 은성이 엄마 전화번호는 아직 물어보지도 못했다. 건너편 사는 건영이 엄마는 건영이가 아직 혼자 다니는 게 못 미더워 아이 혼자 놀이터에 못 보낸다고 했다. 민호 엄마는 우리 집에 민호 보내주면 애들끼리 놀게 하고 밥 먹여 보내겠다고 해도, 미안해서 그럴 수 없다며 절대 보내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 납득가지 않는 이유가 없다. 30년 전의 엄마들 중에서도 분명 걱정인형이 있었을 거고, 성격이나 시간 때문에 커피 모임에 안 나가는 엄마가 있었을 텐데. 그때도 아파트 지상엔 차가 있었을 거고, 거리엔 나쁜 사람이 돌아다녔을 거고,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분명 있었을 텐데 놀이터 모임이 '자연스럽게' 성사되었던 것이 새삼 신기하다.

말은 이렇게 해도, 나도 실상은 아이들이 서로를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아줌마일 뿐이다. 모래 같은 건 집에 달고 오는 거 아니라고 잔소리를 해대고, 밖에서 지저분하게 놀다가 남의 집 가는 거 아니라고 그건 ‘우리의 약속’이라며 벽에 막 써 붙인다. 엄마들도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너희끼리 약속 마구 잡지 말라고 설명하고 말이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제, 아들은 운 좋게도 시간이 잘 맞아 지혁이와 지혁이의 연년생 형까지 무려 두 명이랑 놀이터에서 실컷 놀 수 있었다. 비를 피하며 또 비를 맞으며 한참을 놀다 온 아이가 내게 한 말이 묘하게 가슴에 남는다.

“엄마, 오늘 논 게 여태 놀이터에서 논 것 중에 제일 재미있었어!”

오늘 니 꼴이 여태 논 것 중에 가장 더럽다는 걸 나만 알고 있겠지만 그래 괜찮다, 친구랑 즐거웠다는데 까짓 거 씻으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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