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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Jul 16. 2019

특명, 엄마를 공격하라!!

정신을 들이받는 것보다 몸을 들이받는 게 낫겠지



아이들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내 몸뚱이를 공격할 때 나는 '사람이 이렇게 이기적이구나'라는 걸 느낀다. 내 몸이 일단 고통스럽고 아프면 눈에 뵈는 게 없는 거다. 그렇게까지 내 몸이 우선일 수 없다. 아픔을 느낀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야!!' 한 번 내뱉고 말면 되는데 그게 안 돼서 소리소리를 지르거나 애들을 잡고야 만다.




윗입술에 든 멍이 깨끗하게 사라진 지 일주일이 채 안 됐다. 2주 전인가, 선풍기 앞에 앉아서 땀을 식히고 있던 나를 막내가 머리로 들이받았다. 나는 이제 웬만한 공격, 특히 어디선가 쟤네들 중 누군가의 '머리'가 날아오는 느낌이 들면 본능적으로 탁 막거나 손으로 내 몸을 보호하는데 그날은 정말 손 쓸 새도 없이 당했다. 단단한 머리가 내 입을 퍽 하고 들이받았을 때, 거울은 보지 않았지만 이미 입질이 왔다. 비릿한 맛이 나는 게 피는 이미 나는 것 같았고 윗입술은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화장실로 가 불을 켰는데 거울 속 내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는 거다.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이 나왔다. 입술 안쪽은 터져서 피가 나고, 바깥쪽은 무슨 통통하게 살찐 애벌레처럼 하얗게 부풀어올라 있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입을 감싸 쥐고 화장실로 간 엄마를 아이는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두 돌도 안 된 미물이 무엇을 알겠냐며 막내는 그렇다고 치고 그럼 여덟 살 먹은 인간 아이는 나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는가? 지난주 어느 날, 친정 아파트 놀이터. 나는 다섯 살 둘째를 무릎에 앉혀 그네를 타고 있었다. 내 왼편 빈 그네에 앉아있다가 혼자 타는 게 잘 안 된 첫째가 갑자기 그네에서 내려왔다. 그러더니 옆쪽으로 가서 그네를 쪽 들어 올린다. 한껏 자기 쪽으로 그네를 잡아당긴 아이가 말했다.


"이거 손 놓으면 엄마한테 가서 부딪친다? 재밌겠지?"

"아니, 재미없어. 하지 마. 부딪치면 아플 거 같아."


(내 말이 귓구멍으로 안 들어감)

"엄마를 공격하라~~~"

"아니? 하지 말라 그랬......."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네는 그대로 내 쪽으로 떨어졌고 타이밍은 어찌나 그렇게 기가 막히는지 두 그네는 조금도 빗나가지 않고 정통으로 부딪쳤다. 대충 부딪친 게 아니라 뼈 밖에 없는 내 왼쪽 팔꿈치랑 그놈 아이가 떨어뜨린 그넷줄의 쇳덩어리 부분이 탁 부딪치면서 애미는 또 0.1초 만에 미친 여자로 둔갑했다.


"야아아아아아아아!!!!!!!!!!!!!!!! 너 내가 우습냐?????? 내가 분명히 그네 그거 떨어뜨리지 말라고 말라고 말라고 말을 했냐 안 했냐!!!!!!!!!!!!!"


어떤 사람들은 자기 아이한테 '야!'라고 부르는 것도 최대한 안 하려고 노력한다는데... 우리 애들은 특히 엄마를 화나게 하는 그 순간 자기들 이름이 '야'인 줄 알 거다. 내가 사는 이 구역의 미친년을 담당하는 것도 모자라 그렇게 그날 친정동네에서 마저도 미친 사람임을 입증하고 왔다. 음날까지도 나는 팔꿈치를 접을 때마다 통증 느껴야 했다.


좋다. 세 살은 미물이고, 여덟 살은 원래 말을 안 들어먹는다 치고, 그럼 중간에 있는 다섯 살은 어떠냐. 걔는 원체부터 내가 공룡을 키우는 건지 사람을 키우는 건지 분간이 안 간다고 했던 애다. 덩치는 작지만(머리는 크고) 첫째랑은 다르게 기본적으로 깡다구와 근성이 좀 있는 아이다. 의도하지 않아도 행동이 과격한 편이고, 힘 조절이 잘 안 돼서 오해를 사기도 한다. 손도 야물고 맵다. 그 야무진 손으로 안마도 잘 하지만, 때리는 것도 세상 찰지게 때린다. 얘가 머리로 나를 몇 번 잘못 들이받았을 때 나는 엉엉 소리 내 운 적도 꽤 있다. 고작 네다섯 살 애가 갖다 박은 게 뭐 그렇게 아프냐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나는 이 친구를 이미 세 살 때부터 '파키케팔로사우르스' 라고 부르고 있다. 입방정은 과학인가. 이 아이의 박치기력은 나날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오늘은 박치기는 아니었고, 쇼파에 옆으로 누워있는 내 눈앞에서 스케치북 종이 한 장 찢은 걸 접어 자꾸 탁탁 치는 것이었다.


"왜 자꾸 종이로 엄마 얼굴 쳐~ 하지 마."

"엄마가 나빠서~~"


"엄마 가만히 있었는데 왜 나쁘...."


아이들이 참 빠르다. 또 말 한마디를 다 마무리짓기 전에 속수무책으로 공격당했다. 종이 끝 부분이 내 눈을 날카롭게 스쳐 지나가는데 나는 또 한 마리의 성난 짐승이 되어 아이를 밀치며 소리쳤다. 아이는 서럽게 울었다. 하긴 자기 입장에선 그냥 장난 좀 친 거고, 그러다 실수로 엄마가 잘 못 맞은 걸 텐데... 눈에서 피가 나는 것도 아닌데 나는 고작 다섯 살 된 아이가 나한테 한 행동에 왜 그렇게 화가 나는 걸까? 눈을 감싸 쥐기만도 모자란 손인데 그 와중에 애를 바로 응징한다는 게 참 부끄러운 일이다.






쓰지 않은 일이 더 많지만 이 정도 되니 이제, 아이의 발길질에 맞아서 쇄골에 금이 갔다지 하는 그런 전설의 동물 같은 엄마들 이야기가 나한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로 다가온다. 안구 뼈였나? 아무튼 애가 머리로 들이받아 무슨 뼈에 금이 갔다는 말을 듣고 '에이 말도 안 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했던 뼈 이야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렇다, 말이 되는 일일 수도 있겠다 싶다. 이것도 결국은 체력 싸움인가? 내 몸이 좀 더 튼튼하고 근육질이면 애들이 좀 들이받아도 승질(성질의 최상급)이 덜 날까? 아니 그런데 '헬로카봇 쿵'을 누워있는 내 얼굴 위에서 콧잔등으로 떨어뜨리는데, 그것이 근육질의 몸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몸으로 부대끼며 사는 시절이 끝나면 이것조차 그리워질 날이 오려나. 내 정신을 들이받는 것보다 몸을 들이받는 지금이 좀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우리 엄마 눈에는 흉터가 있다. 눈 주위 피부도 아니고 흰자위 어디쯤인데, 내가 어렸을 때 책받침을 갖고 놀다가 엄마 얼굴 앞에서 잘못 휘두르는 바람에 상처가 생겼다고 한다. 엄마는 그때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그리고 그 순간의 고통을 어떻게 견뎠을까. 딸아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실수로 그런 거니까 그냥 피하지 못한 본인 탓을 했을까? 그때의 엄마는 나를 어떻게 키웠을지 궁금해지는 순간이 참 의외의 곳에서 오는 요즘이다.


(엄마한테 내일 물어봐야지. 차라리 '나 그때 욕했는데?'라는 답변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파키케팔로 머리크기 발라버리는 20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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