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드리셋 Jun 12. 2019

끼인 둘째, 다섯 살 아이의 절규

아이들은 저마다의 사랑을 갈구한다


둘째가 아빠랑 양치를 하다가 한바탕 혼이 났다. 밖에서 들어보니 또 말도 안 되는 고집을 피우는 것 같다. 요즘 둘째는, 한 번 뒤집어지면 누구의 어떤 소리도 듣지 않고 울만큼 울고 나서야 서서히 정신을 되찾는다. 가만히 있는 동생을 괴롭히는 정도도 심해져서 우리 부부의 스트레스 역시 높아진 상황이다. 양치를 겨우 마치고 나와 마음을 놓을 때쯤 내 눈에 들어온 장면. 둘째가 침대에 누워 동생을 발로 막 차고 있다!

"너! 동생한테 한 거 그대로 엄마가 해 줘?"
"어!!!"

저 뻔뻔한 '어!' 한 글자에 나는 '그래, 너도 한 번 당해봐라.' 하며 똑같은 부위를 한 대 때려주곤, 울고 있는 막내를 달래 거실로 내보냈다. 일이 벌어진 건 그때였다. 둘째는 설움에 복받친 듯 소리를 내질렀다.

"왜 다들 나만 안 좋아해!!!!"

왜 다들 나만 안 좋아해 라니...
몇 초간의 순간이었지만 방에는 적막이 흘렀다. 그건 '절규'였다. 혼나서, 화가 나서, 억울해서, 잠깐 기분이 나빠서 소리를 꽥 질러본 게 아니었다. 소리를 내지른 직후 아이는 바로 울지 않았다. 내가 누워있던 아이를 일으켜 앉혀 꽉 안아주고 나서야 내 품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서러운 감정이 잔뜩 쌓였다가 터져버린 사람처럼 그렇게 펑펑 울었다.

"아빠, 엄마, 형아, 동생 모두 너를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아이는 여전히 눈물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나는 원래 아이를 이렇게 바로 안아주거나 토닥토닥해주는 따뜻한 엄마가 아닌데 오늘은 아이를 안아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달래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아이가 우는 내내 같이 울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너를 좋아해. 미워하지 않아."

눈물이 줄줄 흘러서 더 길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하필 오늘 아침 등원 길엔 막내가 엄마 손만 잡겠다고 고집을 피우면서 둘째 형 손을 뿌리친 일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둘째 형 손 잡아봤자, 뛰어가거나 질질 끌려가게 될 것이 뻔하니 막내 입장에선 잡기 싫겠지. 동생이 손을 안 잡아주니 억지로 잡고 끄는 것인가, 형이 억지로 잡아 끄니까 형 손을 안 잡으려 하는 것인가!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급의 문제다. 오전의 이런 일까지 오버랩되면서 생각이 복잡해졌다.(물론 본인은 이 일까지 떠올리진 않았을 거다.)


둘째 임팩트가 좀 컸지만, 얼마 전에는 첫째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남편이 막내를 양치시키는 중이었고 그걸 방해하는 둘째를 내가 장난감으로 유인해 잡아두고 있었다. 자기 할 거 하고 있던 첫째가 그 모습을 보더니 볼멘소리로 말했다.

"엄마 아빠는 동생들만 좋아해!!"

미친다. 첫째가 짠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사실 그때 어이없다는 생각이 더 들었던 것 같다. 진짜 얘네랑만 재미나게 놀아주고 있었다면 억울하지나 않지. 우리도 애들 양치시키기 싫고 방해하는 놈 억지로 잡고 있기 싫다고 좋아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라고 오해하지 말라며 마무리를 짓긴 했다. 그래도 첫째의 그 말이 못내 마음에 걸린 우리는 아이에게 아빠와의 시간을 선물하기로 했고, 지난주 재량휴업 날 첫째는 아빠와 단둘이 등산데이트를 하고 왔다.



인증샷



이들은 모른다. 선택적으로 기억을 삭제하는 것 같다. 엄마 아빠가 형아 떼어놓고 자기만 동물원 데려간 거, 첫째 형이 오늘 아침 자기를 위해 특별히 기차놀이까지 해 준거. 이런 건 기억 안 나고 '가족 모두가' 자기를 미워한다고만 생각하는 거다. 첫째도, 아빠와의 일일 데이트나 엄마가 동생 몰래 사주는 간식은 기억 못 하고 이런 질문을 내뱉는다.


'아빠는 나보다 엄마를 좋아하지? 엄마도 나보다 아빠를 좋아하지? 엄마 아빠는 동생을 더 좋아하지? 다들 나를 더 좋아해야 내가 안심이 되는데.'


아무리 아이들은 '현재'를 사는 존재라고 해도 그렇지. 아이고 두야!!







어떻게 해야 알아줄까. 엄마 아빠는 너희들 모두를 똑같이 사랑한다는 것을.(물론 상황에 따라 안 똑같아질 때도 가끔 있다는 걸 부인하진 않겠다...)
나는, 부모가 어떻게 해도 자식은 결국 나중에 서운함을 느끼기 마련이니(부모탓은 쉽다) 너무 애쓰지 말자 주의인데, 그런 내가 고작 다섯 살 아들이 외친 이 한마디에 마음이 이토록 쓰릴 줄은 몰랐다. 첫째도 짠하지만 그 외침과는 느낌이 달랐다. 한이 맺혔달까. 끼인 둘째라는 것에 대한 편견일까.

아이들 모두가 저마다의 사랑을 갈구한다.

파도 파도 끝없는 사랑이 나오면 좋겠건만, 나는 그렇게 사랑 많은 애미가 아닌데 어쩌나. 오롯이 한 명한테만 사랑을 주는 것도 힘든 일인데 어쩌자고 둘셋을 낳았나, 고르게 사랑을 주지도 못하는 것 같고, 서로에게 성가신 존재만 만들어준 것 같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을 때도 종종 있다. 외동으로 키운다고 사랑의 문제가 온전히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 인원이 몇이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사는 동안, 너무 애쓰지는 않아도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는 거 아이들한테 알려주면서 살아야겠다. 그들은 금방 잊어버리겠지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으로 느끼는 때가 오겠지. 비교적 엄마 아빠 사랑을 한 몸에 받는(것 같은) 외동은 그른 인생들이지만, 형제들 사이에서 느끼는 또 다른 종류의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겠지. 그것 또한 너희의 몫 아니겠냐며 책임을 슬쩍 나눠본다.


(아침이 되면 내가 어젯밤 무슨 생각을 했나, 아이가 뭐라고 외쳤더라 아무 생각 안 나고 또 고집 피우는 둘째와 대치할 것을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이전 09화 아이한테 '화내지 말자' 다짐하는 결정적 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