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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May 09. 2019

인격수양은 놀이터에서

이번 생에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을까



맘카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게시글 제목 중 하나가 이런 거다.

'제가 예민한 건가요?'
'누가 잘못한 건가요?'
'가정교육 잘 시켜야 할 것 같아요.'

이런 글의 8할은 거의 '놀이터'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답정너 형태의 글일 때가 많고, 댓글도 줄줄이 달린다. 읽어보면 어느 한쪽이 대체로 잘못했다고 느껴지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글쓴이의 입장이라 정확하게 잘못을 따지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글이야 제삼 입장에서 쓱 보고 넘기면 그만인데, 문제는 그런 일들이 나한테 닥쳤을 때다.






미끄럼틀을 사정없이 거꾸로 막 올라가는 아이들.

놀이터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게임기만 하는 아이들.

플라스틱 딱지 수 십장으로 갑질 하는 아이들.

그네에서 절대 내려오지 않는 아이들.

새치기하는 아이들.

욕으로 대화하는 아이들.

잘못된 행동에 대해 주의를 줬는데 아주 버릇없이 대꾸하는 아이들.


영유아 세 명을 데리고 다니며 놀이터 출퇴근을 할 때 나는 이런 모습들에 자주 화가 났다. 특히 좀 알만한 나이 아닌가 라고 생각되는 큰 아이들이 저러고 있을 때 더욱 그랬다. 아이가 위험하게 노는데 엄마는 안 보이는 경우, 그리고 자기 아이가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고 있는 걸 뻔히 보면서도(혹은 보지 않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경우) 말리지 않는 보호자들을 볼 때도 기분이 나빴다.


그렇게 놀이터 사역을 하면서 어느덧 아들은 여덟 살이 되었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된 아이를 데리고 여전히 놀이터에 나가 내 아이와 또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삼 깨닫는 게 많았다.


엄마가 잔소리해도 안 되는 거구나.

주의를 안 줘서가 아니구나.

저들은 몸이 말을 안 듣는 거네.

내 아들 욕 쓰는 거 나만 모른다더니..

눈빛이며 말투며 점점 반항적으로 변하는 시기가 있네.

애가 개차반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럴 수 있는 시기구나.

1학년이면 가까운 놀이터쯤은 잠깐씩 보호자 없이 보낼 수도 있구나.

남의 자식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지.

아이가 잘못했다면 부드럽게 타일러야지.


내 아이와 친구들을 변호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몇 년 전의 내 생각이 부끄러워진 건 사실이다. 긴 세월은 아니지만 아이를 키워보니, 내 아이가 어릴수록 놀이터에서 화 나는 빈도가 더 많았던 것 같다. 큰 아이들이 어린 내 아이한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더불어 큰 아이들에 대한 이해 부족도 한몫을 했을 거다. 이전에 가끔 머리로는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절실하게 마음으로 다가오게 됐다. 물론 마음으로 느껴서 나의 인격수양이 완성됐다는 글이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나는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아는 거구나.'

'놀이터에서 어떤 아이를 만나든 좀 이해해야겠다.'

'초등학생들을 너무 고까운 시선으로 보지 않아야지.'

'고학년도 다 큰 것 같지만 고작 초등학생이다.'


나는 이제 초저, 영아, 유아 다 데리고 있는 엄마니까 무엇이든 폭넓게 포용할 수 있다, 그렇다!!!

근자감이 려왔다.





다음날, 아이들을 데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놀이터에 갔다. 딱 보니 한 일곱 살. 초등학생은 아닌 것 같았다. 우리 세 살 막내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려는데 그 아이가 자꾸 거꾸로 올라온다!

"아기가 내려가야 하는데 좀 비켜줄래?^.^"
(안 비킨다.)

"아기가 내려가다가 부딪히면 니가 다칠 수도 있어서 그래~ 좀 비켜줄래?^.^"

(안 비킨다.)

"비켜 줘. 아기 내려간다!"
(안 비킨다.)

이를 악물고 심호흡을 했다. 3은 완전수랬나. 내 한계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세 번인가!! 막내 등을 쓱 밀었다. 아기야 힘껏 내려가라. 나는 더 기다려 줄 수 없다!! 일곱 살 아이는 그제야 그 자리를 피했고 막내는 다시 미끄럼틀을 타러 올라갔다. 어? 그런데 그 아이가 보란 듯이 또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오는 것 아닌가.

"야, 너 몇 살이니?"

(말풍선: 너 대체 몇 살인데 그렇게 말을 안 듣냐? 응?)


"아줌마는 몇 살인데요?"

"뭐? 아줌마는 몇 살이냐고? 너 엄마 어딨어. 엄마!!"

깨달음은 어디 갔나 근자감은 어디 갔나. 엄마 어디 계시면 뭐 어쩌려고... 고자질하고 싸우기라도 하려고?

"엄마랑 같이 안 왔거든요?!"
한 마디를 던지고 아이는 제 갈길을 갔다.



포용이 뭔가요, 이해가 뭔가요, 먹는 건가요. 남의 아이에게 따뜻하게 타이르자던 지난날의 다짐은 온데간데없고 처음 만난 꼬마애랑 말싸움하고 있는 나를 보니 자괴감이 몰려왔다. 인격수양은 진짜 멀었구나. 잘 가르치기는커녕 뚜껑부터 열리는 거다.




위(미끄럼틀 통)에 올라가서 "야, 너 몇 살 때부터 이거 했냐? 난 일곱 살!" "난 여섯 살!" 허세 작렬하는 초딩들을 보니 참 웃기기도 하고 어이도 없고 지들만 있는 놀이터인데 올라가지 말라고 뜯어말리기도 뭐 하고. 당장 형아들 따라 하려는 우리 집 5세를 보니 깝깝하기도 하고. 1학년이지만 아직 몸집이 작고 겁이 많아서 올라가고 싶어도 못 올라가는 우리 첫째를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그러나 곧 올라가겠지) 그저 다른 아이들 있을 때는 피해 안 가게 놀고, 어른들로부터 주의를 받았을 때는 예의 바르게 대답하는 아이로만 자라주었으면 좋겠는데. 욕심일까!

어제 놀이터에서 '아갈머리를 찢어버릴라!' 아갈머리 타령을 하고 다녔던 1-2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한테도 이거 말을 해줘야 하나... 하다가 시간도 됐고 해서 첫째랑 그냥 집에 왔는데, 옆에 앉아있던 엄마가 뭐라고 말해주시는 것 같았다. 부디 나처럼 욱 하지 않는 좋은 가르침 주셨기를 오지랖 넓게 바라본다. 이해의 폭이 넓어져야 하는데 이번 생에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인격수양 하기에는 놀이터만 한 곳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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