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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Apr 15. 2019

초등학교 1학년 '합동 생일파티'에 대한 고찰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이 일기는 초등학교 1학년의 생일파티문화를 까기 위한 글도 찬양하기 위한 글도 아님을 밝히며... 신세계를 접한 초1 애미의 심경변화를 담은 기록 정도로 해두는 게 좋겠다.




원래는 첫 '반모임' 경험을 남겨두고 싶었다. 엄마들을 만나기 전의 왠지 모를 긴장감과 그 어색하면서도 시끌벅적할 분위기를 내가 꼭 기록해두겠다 했는데 하필 그날 아들의 독감 당첨으로 불참...


듣기로는, 초등 첫 반모임 때 자기소개(소개래봤자, 저는 누구 엄마입니다 밖에 없겠지만)와 아이들 생일파티에 관한 장대한 회의가 진행된다고 했다. 역시 우리 반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실 난, 어쩌다가 생일파티 안 하는 학교랑 반도 있다고 하길래, 그 반이 우리 반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유1. 귀찮다.(귀찮아서 애들 돌잔치도 안 했음)

이유2.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게 부담스럽다.(그래도 이 부분은 많~~~~이 나아졌다. 외향레벨1을 획득하셨습니다.)

이유3. 이 합동파티의 목적이 이해가 안 간다.(하루의 즐거움? 친구 만들어주기? 옆 반도 하고 옆 학교도 하고 옆 동네도 하니까?)



단톡방에는 그날 나눈 이야기들과 생일자 명단이 막 올라오기 시작했다. 태권도장 이야기도 나오길래 이건 뭔 소리지 할 때쯤, 도장 하나를 대관해서 거기서 레크리에이션 겸 생일파티를 진행하는 문화라는 걸 알게 됐다. 도장은 행사 진행과 장소 제공만 하는 거고 나머지 점심, 간식, 현수막 같은 각종 데코레이션, 사전 준비와 뒷정리 이 모~~~든 것은 해당 월 생일 주인공 엄마들 몫이라고 했다. 대관료를 포함한 일체의 비용도 물론이다. 형제자매 동반 여부도 반모임 때 이미 결정이 되었고, 생일자를 적당히 몰아서 나눠야 하기 때문에 몇 월에 파티를 할지, 도장은 어떻게 섭외를 할지(믿을 수 없지만 빨리 마감된다고 한다.) 이런 것들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부정 열매를 따 먹은 사람처럼 투덜투덜 댔다. 아우. 듣기만 해도 귀찮아 죽겠는 거 이걸 대체 왜 하는 거냐며!! 몇몇 사정을 들어보기도 했다. 옆집 언니네 반은 온라인 상에서 생일파티 찬반 투표도 했단다. 반대의견이 더 많이 나왔다는데, 결국 오프모임 때 반대표가 이 투표 없던 걸로 하자 했다고... 세상에!!

또 다른 언니는 반모임 때 아예 대놓고 생일파티 안 하면 안 되냐는 뉘앙스로 의견을 냈다가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것은 리얼 갑분싸였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언니들이 참 지혜롭고 마음이 넓다는 걸 곧 깨달았다. 우리는 교회에서 이미 애들이 친구를 좀 사귀었지만 아닌 애들은    이런 기회가 참 좋을 거라고, 친구는 지들이 사귀는 거지 뭐 엄마가 이렇게 개입해야 하냐고 말하지만 우리도 결국 우리가 친해졌기 때문에 애들도 친해질 수 있었던 거 아닐까- 라며 의견을 말하는데(이게 뭐라고 이렇게들 진지함) 우와! 역시 사람들의 조언, 생각... 하나도 허투루 들을 게 없구나 싶으면서, 좋은 사람들이 옆에 있음이 새삼 고맙고 감사했다.(간증이냐)


어차피 반모임 현장에 있었어도 나는 반대 목소리 1도 못 냈을 거.     '   .' 손 드는 거?    . 러면 뒤에서 불평만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모든 일엔 좋은 점도 있는 거 아니겠냐며. 갑자기 긍정 열매를 따 먹으면서 좀 중화가 됐다.






그렇게 4월 13일(어제)이 되었다. 3월 4월 생일자들의 첫 합동파티 날!!


단톡방에는 그 전날 밤부터 '놀이터 2차' 얘기부터 너무 설렌다는 말 등이 꽤 오갔다. 놀이터 2차라니...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예전의 내성적인 내가 아니라며(예전의 너는 대체 뭔데..) 셀프 주문도 걸었다. 반 엄마들이 어떤 사람일지도 궁금했고 은근히 설레는 마음도 절반 이상 있었다.


당일엔 언제나 그렇듯 21명 중에 20등으로 도착했다. 예상대로 나는 빠르게 신상이 털렸다. 어떤 엄마는 내가 들어오자마자 '젊음의 기운'이 느껴졌다고 표현했다. 다들 내 나이를 말하자 1차로 놀랐다. '막내니까 이제 뭐 좀 시켜야겠네요, 하하하' 하길래, '아유~ 얘 말고 영유아가 두 명이나 더 있으니 좀 봐주세여^^*' 했더니 2차로 놀랐다. 여동생들이냐 하셔서 남동생들이라 했더니 마지막 3차로 놀랐다. 셋 다 자연분만했다는 말만 추가했다면 딱 4차로 놀라는 조리원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각이다. 


주인공들이 케이크 후~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어진 본격 점심시간! 주인공 엄마들이 성의껏 준비한 도시락과 각종 간식이 상에 올라왔다.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옆방으로 관장님과 함께 사라지고, 식탁엔 엄마들 상이 펼쳐졌다. 김밥, 떡볶이, 순대, 닭강정, 과일... 커피까지 완벽한 세팅이다. 손도 빠르게 얼마나 착착착 진행을 하는지, 막내 주제에 너무 놀고먹고 대접받아서(떡볶이를 급하게 퍼먹었더니 천천히 먹으라며 내 앞으로 몰아주셨다) 황송하기까지 했다.


주변에 앉은 엄마들과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아까 내 말을 제대로 못 들은 엄마들이 다시 물어봐서 신상을 셀프로 새로 털기도 했다. 사람이 역시 쉽게 변하는 건 아닌지, 아무리 좀 나아졌다 해도 여전히 수다에 적극적으로 끼거나 하기는 좀 어려웠다. 듣고만 있었던 지분이 훨씬 많다. 그래도 그 자리가 체할 것 같이 불편하지 않았고, 편하게 앉아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진짜 나 장족의 발전을 했다며 스스로 칭찬해본다.



수고의 손길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거워해서 다행이었다. 나 역시 내 아이와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친구들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각자 다른 방과 후 수업이다, 태권도다, 미술이다 해서 얼굴들을 제대로 볼 기회가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사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스무 명의 엄마들 얼굴 기억하기+아이 얼굴과 매칭 시키기 미션은 아직 첫 만남이라 실패한 것 같다. 길에서 만나면 인사라도 해야 하는데, 정말 이놈의 안면인식 장애는 언제까지 달고 다닐 건지. 세네 번은 만나야 어느 정도 기억할 것 같은데 그러다 보면 2학년 되겠음.


놀이터 2차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았고, 엄마들 사이에선 애들 빼고 저녁 3차로 맥주 한 잔 하자는 말들이 오고 갔다.(3차엔 안 간다고 했다.) 미세먼지도 적었고, 나 혼자 살짝 외톨이처럼 앉아있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11월이 되면(내 아들 생일달) 또 귀찮은 준비과정에 부정 열매를 거하게 따먹고 투덜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2학년, 3학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문화라고 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야겠다. 과하지만 않다면(그 기준이 뭘까, 금액으론 얼마일까 이런 생각도 해봤다.)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다음 생일파티는 어떨지, 생일상은 어떨지 묘하게 궁금해진다. 초등학교 1학년 합동 생일파티에 대한 고찰 및 후기는 이것으로 마친다!(대체 이 긴 글을 누가 읽겠냐!! 해도 나는 꼭 기록하겠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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