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교 끝나고 태권도 차를 타고 도장에 바로 가기로 한 아이가, 하교시간 갑자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대체 왜 집으로 왔냐고 하니, 후문에 태권도 차도 없었고 오늘 있는 승급심사도 하기 싫어서 그냥 왔단다. 때마침 도장 차를 운전하시는 관장님께 전화가 왔고,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연신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정우야. 차량은 약속이니까 당장 차가 안 보여도 약속된 자리에서 니가 조금 기다려야지. 설령 태권도가 가기 싫어졌어도 차를 탄 후에 말씀드렸어야 해. 관장님이 너 기다리다가 다른 학교 친구도 태워야 돼서 거기 가셨다가 다시 너네 학교로 가셔서 너 기다리셨대. 계속 기다리다가 엄마한테 전화하신 거야." "응." "그러니까 이따가 태권도장 지나면서 관장님께 죄송합니다 하고 와. 알았지?" "응. 근데 엄마, 뭐가 죄송해??" ......... 2. 며칠 전, 집에 '집전화기'를 들여놓았다. 큰 애에게 사용법을 알려주고 엄마한테 전화 거는 법을 숙지시켰다.
혹시 니가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으면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말하고 보니, 받는 방법도 아이가 알아둬야 할 것 같았다. 그냥 들고 받으면 되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 처음 듣는 벨소리가 울리면 무서울 거 같아미리 설명을 해줬다. "벨소리가 갑자기 울리면 무서울 수 있으니까 미리 한 번 들어 봐 봐. 엄마가 핸드폰으로 지금 집전화에 전화 걸어볼게. 혼자 있을 때 이 소리 들려도 놀라지 말고 전화받으면 돼." "알았어. 근데 뭐라고???" 나 누구랑 말했냐..... 3. 어느 수요일이었다. "엄마는 수요일마다 가는 글쓰기 수업이 정말 좋아. 어떤 날은 막 뛰어가고 싶어. 수요일이 되면 행복해. 너도 나중에 니가 좋아하는 일, 재미있어하는 일을 꼭 찾아서 배우고 즐기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응. 근데 엄마, 사범님이 새 친구 데려오면 1만 포인트 주신댔어!!!!" 맥락도 없고 의미도 없는 대화 고마워 아들..
진상 짓에는 성별 없다 주의이고 아들 딸 구분 짓는 걸 별로 안 좋아하지만, 아들 키우는 데 이건 깨나 애로사항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막혀있는 귓구멍'...(400개월 넘게 산 남자도 자주 저러는 걸로 봐서 그냥 성별을 구분 지어 보기로 한다.) 맨날 싸움놀이 해대는 거, 자주 피가 터지는 거, 허구한 날 머리로 나를 들이받는 거 이런 것들보다 때론 이 귓구멍 문제가 나를 더 피곤하게 한다.아니, 귀가 막힌 게 아니라 양쪽이 필요 이상으로 뚫려있어서 내 말이 쫄쫄쫄 흘러 나가는 건가... 나 혼자 말하고 두 번 말하고 세 번 말해야 하는 이 고난이도 작업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이쯤에서 다시 보는 전설의 짤 '아들 키.. 딸 키..'.
아들 키.. 딸 키..
우리 아들들 쑥쑥 크면, 인격적인 대화 깊은 공감의 대화 맥락 있는 대화 경청의 대화 ... 세 명 중에 한 명은 가능하겠지 그렇겠지.
셋 중에 둘은 과욕인가
그래, 여덟 살이라서 그런 거야. 아들이라서가 아니야. ...라고 말도 안 되는 위로를 해본다.
덧) 현직 남고 교사인 친구가 말했다. 애들을 좀 '비꼬는 말'로 혼내면 애들이 못 알아듣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