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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Sep 03. 2019

아들 키우기가 힘든 진짜 이유

싸움놀이보다, 피 터지는 것보다 무서운 것


1. 학교 끝나고 태권도 차를 타고 도장에 바로 가기로 한 아이가, 하교시간 갑자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대체 왜 집으로 왔냐고 하니, 후문에 태권도 차도 없었고 오늘 있는 승급심사도 기 싫어서 그냥 왔단다. 때마침 도장 차를 운전하시는 관장님께 전화가 왔고,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연신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정우야. 차량은 약속이니까 당장 차가 안 보여도 약속된 자리에서 니가 조금 기다려야지. 설령 태권도가 가기 싫어졌어도 차를 탄 후에 말씀드렸어야 해. 관장님이 너 기다리다가 다른 학교 친구도 태워야 돼서 거기 가셨다가 다시 너네 학교로 가셔서 너 기다리셨대. 계속 기다리다엄마한테 전화하신 거야."
"응."
"그러니까 이따가 태권도장 지나서 관장님께 죄송합니다 하고 와. 알았지?"
"응. 근데 엄마, 뭐가 죄송해??"


.........



2. 며칠 전, 집에 '집전화기'를 들여놓았다. 큰 애에게 사용법을 알려주고 엄마한테 전화 거는 법을 숙지시켰다.




혹시 니가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으면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말하고 보니, 받는 방법도 아이가 알아둬야 할  같았다. 그냥 들고 받으면 되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 처음 듣는 벨소리가 울리면 무서울 거 같아 미리 설명을 해줬다.

"벨소리가 갑자기 울리면 무서울 수 있으니까 미리 한 번 들어 봐 봐. 엄마가 핸드폰으로 지금 집전화에 전화 걸어볼게. 혼자 있을 때 이 소리 들려도 놀라지 말고 전화받으면 돼."
"알았어. 근데 뭐라고???"



나 누구랑 말했냐.....




3. 어느 수요일이었다.

"엄마는 수요일마다 가는 글쓰기 수업이 정말 좋아. 어떤 날은 막 뛰어가고 싶어. 수요일이 되면 행복해. 너도 나중에 니가 좋아하는 일, 재미있어하는 일을 꼭 찾아서 배우고 즐기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응. 근데 엄마, 사범님이 새 친구 데려오면 1만 포인트 주신댔어!!!!"


맥락도 없고 의미도 없는 대화 고마워 아들..






진상 짓에는 성별 없다 주의이고 아들 딸 구분 짓는 걸 별로 안 좋아하지만, 아들 키우는 데 이건 깨나 애로사항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막혀있는 귓구멍'...(400개월 넘게 산 남자도 자주 저러는 걸로 봐서 그냥 성별을 구분 지어 보기로 한다.)

맨날 싸움놀이 해대는 거, 자주 피가 터지는 거, 허구한 날 머리로 나를 들이받는 거 이런 것들보다 때론 이 귓구멍 문제가 나를 더 피곤하게 한다. 아니, 귀가 막힌 게 아니라 양쪽이 필요 이상으로 뚫려있어서 내 말이 쫄쫄쫄 흘러 나가는 건가... 나 혼자 말하고 두 번 말하고 세 번 말해야 하는 이 고난이도 작업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이쯤에서 다시 보는 전설의 짤 '아들 키.. 딸 키..'.


아들 키.. 딸 키..



우리 아들들 쑥쑥 크면,
인격적인 대화
깊은 공감의 대화
맥락 있는 대화
경청의 대화
...
세 명 중에 한 명은 가능하겠지 그렇겠지.


셋 중에 둘은 과욕인가



그래, 여덟 살이라서 그런 거야.
아들이라서가 아니야.
...라고 말도 안 되는 위로를 해본다.


덧) 현직 남고 교사인 친구가 말했다. 애들을 좀 '비꼬는 말'로 혼내면 애들이 못 알아듣는다고...


그렇다.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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