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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Mar 28. 2022

덕질의 맛, 솥밥의 맛

인생 첫 연어솥밥이 시작된 곳은



<나혼자 산다>봤다. 평소라면 출연자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뭘 먹거나 말거나 나랑은 하등 상관없는 일회성 재미로 지나치고 말았을 것을 그 회차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C가 냄비까지 싸들고 와서 W에게 해주는 연어솥밥을, 생선도 별로 안 좋아하는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건... 나의 최애였기 때문이다!





물론 꼭 최애가 아니더라도 <편스토랑>을 보면서 맛있어 보이는 건 따라 해보기도 하고, 양한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러 셀럽의 레시피를 캡처하고 해 어본 적은 종 있다. 근데 그건

'요리'를 좋아하는 마음 좀 더 가까웠다면 이번 건은 요리를 기본에 깔고 '최애'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씨게 작용했달까...

아니 너네 둘이 그걸 만들어 먹었어?

아니 이 요리하는 남자 너무 멋있잖아?

아니 너도 하는 요릴 가 못 할 순 없어!

아니 무슨 맛인데 너네 그렇게 예쁘 웃니?

아니 대체 뭔데, 내가 먹어봐야겠어... 라며 눈에 광기를 품은 채 나는 인생 첫 프랑스산 주물냄비 검색에 들어가 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스로약간 미친것 같았지만 요리는 어차피 장비빨이랬고, 내가 이 비싼 걸 사서 연어솥밥 한 번 해 먹고 요리에 손 뗄 정도로 엉망인 사람 아니니까! 이거 사면 나는 어쨌든 잘 쓸 거니까!


케이문화와 케이팝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나마 좀 나아졌다곤 하지만 연예인 덕질 특히 아이돌 덕질을 향한 시선은 여전히 좀 곱지가 않다. 같은 맥락에서 연예인이 밥 먹여주냐, 덕질이 밥 먹여주냐는 소리를 20년도 더 전부터 들어왔다. 애초부터 밥 먹으려고 덕질하는  아니라고 대꾸하며 살아왔는데 살다 보니 덕질이 밥을 먹여주는(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고 할 때의 ''이 아니라, 진짜 리얼 '밥'이라니) 순간경험하게 된 것이다... 덕질 밥 먹여준다는 걸 입증할 기회가 왔군. 니가 만든 저 연어솥밥 나도 한 번 똑같이 만들어볼게! 그렇게 최애의 연어솥밥 한 냄비 덕에 생전 처음 한 들이 생겨버렸다. 전기밥솥으로만 10년을 밥 하다가 '솥밥 하는 법'을 샅샅이 검색하고 공부한 것. 저렴한 코팅 냄비만 쓰다가 커피 한 잔 값의 대략 50배 정도 되는 비싼 주물냄비를 주문한 것. 내 손으로 고등어 삼치가 아닌 연어살 300그람짜리 한 팩을 사 온 것. 내가 진짜 별 걸 다 하는구나 하면서도 내 손은 이미 쌀을 불리고, 얼음물과 맛간장에 재어놓은 연어살을 꺼내 버터 녹인 팬에 지글지글 굽고 있었다. 저 둘이 먹은 솥밥처럼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을 만들어보자! 약간 까실하게 그으른듯하지만 윤기나게 연어를 굽고, 초록 쪽파도 송송 뿌려야지. 뜸을 들이는 동안 양념장을 만들면서, 최애의 예능 한 편에 연어솥밥 양념장을 만드는 이 단계까지 온 내가 웃긴 건지 기특한 건지 웃음이 실실 났다.


완성된 연어솥밥눈으로 먼저 먹는다. 아, 먹음직의 표본이구나. 삼치, 고등어만 구워 먹을 줄 알았지 연어를 이렇게 내 손으로 구워 먹어 보는 날이 오다니. 새로웠다. 첫술은 밥 한 숟가락에 연어살을 그대로 떠서 먹고 그다음엔 슥슥 살을 으깨서 양념장을 넣고 비벼 먹으라는 C의 말대로 그렇게 식구들과 한 냄비를 싹 비웠다. 냄비 벽에 눌어붙은 누룽지에서도 구운 연어의 풍미가 느껴졌다. 연어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친구가 놀러 오면 꼭 이 밥을 해줘야지, 속으로 생각할 정도의 확신의 맛!


이 연어솥밥을 시작으로 나는 솥밥의 세계로 솥며들기 시작했다. 콩나물, 가지, 표고버섯, 소고기, 돼지고기, 오징어, 차돌...  좋아하는 재료를 재량껏 넣어 조합해보기도 하고, 똑같은 냄비가 있는 친구들과 솥밥 메뉴를 공유하기도 했다. 내 솥밥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덕후의 마음과 음식, 이 두 가지가 이런 식으로 만나기도 하는구나. 나를 새로운 세계, 생각해보지 않았던 솥밥의 세계로 떡하니 데려다 놓은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또 어떤 메뉴로 이끌까? 또 모르지. 같이 채식 해보자는 너의 말에 언제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될지(물론 지금은 아니야...), 팬심 이야기를 쓰고 그 글로 밥값을 벌어(갈 길이 멀다...) 식당의 신메뉴 한 끼를 사 먹 '덕질이 또 이렇게 밥을 먹여주네' 할 날이 올지 누가 알아?가 됐든 이 마음을 통해 언젠가 또 만나게 될 새로운 맛을 기대한다.




연어솥밥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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