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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May 07. 2022

말 좀 예쁘게 하라는 말에 폭발해버렸다

말좀예쁘무새를 놓아주세요


넌 말을 고쳐야 돼. 말 좀 예쁘게 해.




코로나 격리 3일째. 엄마가 내 상태를 궁금해할 거 같아 이 얘기 저 얘기할 겸 전활 걸었다. 밥은 잘 먹고 있냐길래 박서방이 정성스레 챙겨줘서 잘 먹고 있다고, 다음 주엔 내가 수발들게 될지 모르니 지금 먹고 잘 쉬어야 한다며 웃었더니 또또 설교가 날아들었다.


"넌 말이 문제야. 말 좀 예쁘게 해라."


성질이 확 났다. 내가 욕을 했어, 죽는 소릴 했어, 밥이 맛없다고 불평을 했어, 내가 뭐라고 했는데 또 말이 문제래? 맨날 있던 두통이 코로나 증상인 줄도 모른 채 남편이랑 저녁도 먹고 컵도 같이 쓴 하루가 있었으니까, 가족은 결국 90프로 이상이 옮는다고 들어왔으니까 다음 주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까지 가정해봤을 뿐인데. 내가 수발들 각오까지 하고 있고 혹여 그런 상황이 생기면 나도 이렇게 잘해줘야겠다고 다짐한 것뿐인데 또 그놈의 '말을 좀 잘' 하란다. 딸이 걱정되는 거면 그냥 "박서방은 안 걸리고 넘어가길" "니가 수발들 일은 안 생기길" 이 한 마디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아니 뭘 또 말을 예쁘게 하래??!!" 하고 큰 소리를 빡 내면 이제 남편도 엄마도 모두 왜 화를 내냐며 나를 몰아간다. 그래 내가 나쁜 년이지. 욕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한 개도 열 받지가 않어......






누적이 문제다. 듣기 싫은 소리도 한두 번일 땐 뭐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다. 세 번, 네 번, 삼십 번, 사십 번이 되면 이제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한다. 나는 이 '말 좀 예쁘게(긍정적으로) 하란' 소리에 이골이 났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여섯 살 막내가 할머니랑 영상통화를 하고 싶대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신호음만 계속 울리고 받지 않는 상황. 아이가 말했다.

"할무니 교회 갔나? 씻으러 갔나? 운동하러 한강 갔나?"

아니, 할머니가 전화 안 받는 이유를 자기 나름껏 떠올려서 이렇게 읊는 아이가 얼마나 귀엽고 웃겨. 엄마한테 이걸 말해줬더니 갑자기 엄마가 한숨을 팍 쉬며 말했다.

"참 뻔하네. 애도 아는 거야. 교회 아니면 한강 밖에 갈 데가 없는 이런 삶 너무 싫으네."

이런 종류의 말도 너무 많이 들와서 솔직히 듣기가 싫었던 나는, 서둘러 정색하고 을 막았다.

"아니, 그냥 좀 웃자. 그런 말 좀 그만해."

Guess what? 글쎄, 나보고 또 넌 말 좀 예쁘게 하래...... 이쯤 되면 친정집에 내가 모르는 '말좀예쁘무새'가 비밀 새장에서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한번 생각을 해보자고. 여기서 말을 고쳐야 될 사람이 날까 엄말까. 엄마가 더 안 예쁜 말을 했을까 내가 더 안 예쁜 말을 했을까....



물론 내가 정말로 말을 안 예쁘게 할 때도 있지. 지나고 나면 후회할 말을 하기도 한다. 뱉자마자 후회하는 말도 있다. 그때 누가 제동 걸어주면 다행이고 고맙지. 근데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다. 흔한 걱정 한 마디에, 노파심에 나오는 한 마디에, 육아에 지쳐서 토로하는 고민과 불평 한 마디에, 정색 한 마디에, 말이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피드백이 자꾸 돌아온다. 그렇다고 내가 욕과 불평을 달고 사는가? 욕하고 싶어도 불평하고 싶어도 오히려 부모 앞에선 하지 않는다. 한 번을 같이 욕 해주지 않은 걸 (않을 걸) 알기 때문에 나는 입을 닫는다. 내 부모가 누구보다 내 편인 건 아주 잘 알고 있지만, 내 괴로움과 화에 말로 공감해주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아니까. 오죽하면 나는 이게, 교회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늘 감사해라, 복된 말을 해라, 긍정적인 말을 해라... '좋은 말'에 대한 설교를 너무너무 오랜 시간 당연하게 들어왔기에 나오게 되는 자동적인 판단과 반응 같은 거. 그치만 스스로에게는 적용하지 못하고 타인 특히 가족에게는 꼭 적용시키고 싶은 거. 나도 그 가르침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꼭 기독교에만 국한된 얘기도 아니다. <말하는 대로> 라는 노래의 가사가 괜히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겠는가?! 알지. 말이 씨가 되고 좋은 말을 하고 살아야 하는 거 나도 아는데, 엄마가 예쁜 말에 대한 설교를 듣고 온 어떤 날마다 "오늘 목사님 말씀을 니가 좀 들어야 했는데!" 이 얘길 듣기는 정말 싫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은 그러셨지. "그 설교를 니가 좀 들었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의 80프로는 그 설교가 자기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거란 걸 잘 모른다고.....(크.. 명언 아닐 리 없음)



그래서 뭐 "엄마! 말로 날 훈계하려 하지 말고 직접 삶으로 보여줘야지!!" "나한테 뭐라 하기 전에 엄마부터 잘하셔야죠!!" 이런 얘길 하려는  아니다. 자식이 부정적인 말 한마디 할까, 말이 씨가 될 텐데 쟤가 왜 저러나, 사람들한테 미움받을라 말투가 왜 저러나 노심초사하지 말고 그냥 자식은(나는) 알아서 잘 살 테니까 엄마야말로 자신의 하루하루를 부정하고 하찮게 취급하는 시선지우면 좋겠다. 나는 왜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할까, 나는 왜 이렇게 잠이 많고 게으를까 같은, 오래 들어온 각종 자기비하의 말들을 멈추고.  그냥 내가 웃자고 던지는 말 말좀예쁘무새 데려오지 말고 웃고 넘길 수 있으면 좋겠다. 때론 내 폭주 기관차에 같이 탑승해줘도 좋을 거 같다. 실컷 같이 타주면 나는 또 그 공감에 힘입어 정신 차리고 알아서 내 자리로 돌아갈 테니. 예쁜 말 좋은 말 자체에 얽매이는 것보다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 스스로를 향한 시선이 곱고 긍정적인 것이 아무렴 낫다. 



이대로 무탈하게 격리가 끝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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