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윤 Nov 13. 2018

완벽주의자들의 행복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존재 방식의 문제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스태프들을 압박하고 심지어 동료배우들에게는 '왜 더 열심히 하지 않느냐'고 힐난하기까지 했어요. 잘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연기하니 절 보면 지친다는 관객도 있었죠."


며칠 전 만난 배우 A 씨의 얘기다. 그는 몇해 전 무대를 떠났다 최근 복귀했다. 이게 다 완벽주의 때문이다. 스스로 완벽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그는 관객 앞에 서는 걸 몹시 창피해했고 결국 배우로서 자신의 역할마저 포기해버렸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는 완벽해야 했다. 더 이상 올라갈 곳 없는 정상에 선 이상, '완벽' 이외에 다른 목표는 없다.


'완벽주의'란 말은 사실 너무 쉽게 쓰인다. 하지만 완벽은 열심히 노력한 과정에 빗대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완벽에 가까울 만한 수행을 해냈을 때, 그 결과를 칭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진정한 완벽주의자들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냉정하고, 스스로에게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완벽이란 건 사실 존재하지 않는 지도 모른다. 그저 완벽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대 심리에 가깝다. 그래서 완벽을 기할수록 높아지는 기대 심리에 따라 완벽에서 멀어진다. 

수천년간 매일 부서지고 생성되기를 반복해 지금의 모습을 밎어낸 빙하를 보며 새해를 다짐했었지. 

내가 만난 정상에 오른 취재원들은 괴로워하고 고뇌했다. 새롭게 선보인 공연을 끝마친 B 씨는 "후련하지 않냐"는 질문에 "여태까지 너무 힘들었는데 다행"이라며 무사히 임무를 마친 것에 안도하는 것이 전부였다. 은퇴 후 자선 사업에 매진하는 왕년의 스타 C씨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 현역에 있을 때는 정상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으로 늘 위장약을 달고 살았다"고 했다. D 씨와 E씨, 그밖에 F,G,H 씨 등 많은 유명 스타들은 "더 이상 새로운 걸 도전하고 싶지 않다. 지금이 좋다"고 말했다. 이건 현재에 안주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간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쓴 시간의 괴로움을 대변하는 것에 가깝다. 


완벽주의자들은 대체로 예민하고 까칠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괴롭고 스스로도 괴롭다.  '적당히 하면 행복하다'는 말은 이 때문에 나온다. 하지만 적당히 수행하고 적당히 바랐기에 나름대로 행복했던 자신이 부끄러운 순간은 완벽주의자들을 만날 때마다 찾아왔다. 

A 씨가 무대로 돌아온 건 이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의 전환을 이뤄서가 아닐 것이다. 그는 무대에서 다시 행복을 느끼고 싶다고 했다. 적당히 즐겨서 갈등이 없는 행복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최선을 다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 그런 행복. 행복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인 것이다. 


돌아보면 내가 만난 취재원들은 하나 같이 분야의 최고 인물들이었다. 전혀 완벽하지 않은, 보통의 보통인 내가 그들을 참 쉽게도 만났다. 그들의 가열한 삶을 담아내는 것이 결국 내가 열중할 수 있는, 완벽을 기해 볼 수 있는 일이겠다. 하지만 그또한 지금까지는 결과적으로 별볼일 없는, 내 알량한 글이 서럽다. 








작가의 이전글 거꾸로 쓰는 남미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