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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 Oct 11. 2018

거꾸로 쓰는 남미 여행

여행이 끝난 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볼리비아 우유니사막의 일몰                                                               

남미여행은 대망의 30시간 버스(에콰도르 과야낄➡페루 리마)로 막을 내렸다.

대장정을 시작한 버스의 차창 밖에선 초록색의 잎이 파라솔처럼 대지에 빽빽이 꽂힌 바나나밭이 족히 서너 시간은 펼쳐졌다. 그러고 나서 또 몇 시간은 푸른 해변의 향연. 다시, 황량한 황토빛 사막으로 극적 장면 전환. 지치지도 않는 버스는 다시 고산을 향해 빙글빙글 올라간다. 유리의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끝없는 파노라마 중에서도 압권은 하늘에 솜뭉치를 죽죽 늘여놓은 듯한 구름. 아메리카 대륙에서 '손에 닿을 듯한 하늘' 이란 은유는 단순한 문학적 표현 이상의 것이다. 


하지만 두 달간 수없이 절경을 마주했음에도 간간이 읽은 문장들 가운데 나를 가장 격렬히 내리친 것은


"여행은 언제나 나태한 지식과 감정의 상징이다(쉬즈위안)"라는 것.


통찰의 힘이 부족해 피상적 신선함에 사로잡혀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착각하지 말라는 지적이다. 분명 내가 본 것은 그간 내 세계에선 보지 못한 자연의 마술이었으되 그것이 이 여행의 전부거나 결말이 되어선 안 된다고, 문장을 본 뒤 생각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금세 구석에 쳐박히는 현지의 조악한 기념품마냥, 여행을 순간의 시각적 요깃거리에 불과한 한낱 추억으로 남게 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예쁜 것, 아름다운 것 그 이상의 것을 보고 느껴야 한단 생각을 여행이 절반쯤 지났을 무렵 했더랬다.


에콰도르 과야낄에서 페루 리마로 가는 버스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

쓰레기로 가득 찬 거리, 그보다 더 더러운 걸인, 약에 취한 영혼들, 무법의 자동차들... 당장 범죄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그 아슬아슬한 분위기에 휩싸인 순간 외려 이상한 쾌감을 느꼈던 건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지옥을 보고 싶은 뒤틀린 욕망'이었음을 30시간의 버스에서야 알았다. 그들의 고통은 내 인생의 액자 밖 타인의 고통일 뿐이었기에 오는 쾌감이었다.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외팔로 축구공 묘기를 선보이는 청년을 봤을 때, 피 흘리는 들개를 도와달란 낯선 동양인의 호소에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았을 때, 2000원짜리 팔찌를 고르는 동안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도하는 관광지의 소년을 보았을 때 난 마냥 괴롭기만 했다. 나의 액자 안으로 들어온 타인의 고통은 어떤 일말의 쾌감일 수 없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주변의고통을 액자 밖에서 바라보고 있는가.  

 

세계 최악의 치안 상태를 보이는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인적이 드문 거리


엄청난 대자연, 풍족한 식량 및 광물 자원, 유구한 문화유산을 가졌음에도 가난과 불안한 정치와 치안, 미비한 교육수준을 면치 못하는 대륙. 그들이 가진 것에 감탄하는 동시에 가지지 못한 것의 연유를 묻고 해답을 찾아가는 일은 그래서 여행이 남긴 교훈이자 숙제이자 의미다.


여행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에 감사하고 아름답지 못함에 가슴아파할 줄 아는 태도를 배워야 할 것.

여행이 끝난 뒤 결의는 쉽게 나태함으로 바뀌었지만 잊지 않기 위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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